김보영, 당신을 기다리고 있어
김보영의 ‘당신을 기다리고 있어’를 샀다. 한 손에 잡히는 작은 판형으로 중편이라 페이지 수도 얼마 없었다. 가격도 5천원 밖에 하지 않았다. 대구 교보문고에서 지하철을 타고 돌아오는 길에 거의 다 읽었고, 버스 환승을 하고 기다리면서 나머지를 읽을 수 있었다. 딱 마지막 장을 읽고 나니 내가 내려야할 정류장이 지나 있었다. 어쩔 수 없이 다음 정류장에서 내린 다음, 자리에 앉아서 ‘이야기 밖의 이야기’를 마저 다 읽었다.
소설은 ‘프로포즈를 위한 소설’이라는 독특한 배경 안에 쓰여졌기에 더 강한 아우라를 지니고 있었다. 주인공은 다른 성계에서 오고 있는 연인과 같은 시간대를 맞추기 위해 광속 우주선에 오르지만, 사고를 겪는 바람에 그 만남이 틀어지고 만다. 연인과 시간대를 맞추기 위한 노력을 계속 하지만 역시나 문제는 끊이지 않는다. ‘사랑하는 이를 기다린다’는 모티프는 간결해보이지만, 상대성의 우주 안에서 장대한 스케일의 모험이 된다. 더 커져가는 문제와 다시 덮쳐오는 다른 문제 앞에 연인과의 만남이 어긋나는 주인공의 심경은 편지 형식의 소설 안에서 담백하고 진솔하게 드러난다. 이런 극적인 모험이 ‘담백하고 진솔하게’ 느껴지는 것은 놀랍게도 그런 모험이 우리와 동떨어진 별세계의 것이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는 소설을 읽으면서 사실 그런 모험이 똑같은 우주를 살아가는 우리 개개인의 삶에서도 이루어지고 있다는 걸 알아차린다. 일상에서 누군가를 기다리는 시간이 온전히 그 누군가를 위한 시간이라는 걸 깨닫게 될 때, 우리는 이 잘못 전달된 편지를 무시할 수 없게 된다. 김보영은 서로가 서로의 시간을 온전히 보탤 때의 순간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때문에 소설은 종장에 이르러서도 끝나지 않는다. 소설은 ‘이야기 밖’으로 나간다. 지구의 연인 간에 있었던 프로포즈는 이 소설 외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소설 안에 위치하게 된다. 이야기 세계에서 시작된 연인 간의 기다림은 현실 세계에 이르러 매듭을 묶고, 작가는 이야기가, SF가 머나먼 저 심우주의 고독한 자리가 아니라 바로 여기, 지금 함께 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소설을 모두 읽고 한 정거장을 걸어오는 길에 이 자그마한 판본의 책을 손에 쥐고 걸었다. 한 세계를 집어들고 있는 실감이 느껴졌다. 소설을 읽는다는 건 이런 것이라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