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에 대한 저주
<긴키 지방의 어느 장소에 대하여> 영화를 봤다. 감독의 다른 영화는 안 본 것 같은데 모큐멘터리에 대한 확고한 철학이 보여서 그런 요소는 좋았다. 모큐멘터리, 민속 호러를 좋아한다면 추천해볼 수 있겠다. ※이하 원작과의 비교.
원작과 차이점이 꽤 많다. 가짜 취재 자료를 대폭 생략하고, 각 자료 사이를 간결하게 이은 다음 오리지날 스토리를 삽입했다. 상당히 건조한 톤을 유지하는 원작과 다르게 일본 영상적인 호러블(낮고 울리는 목소리, 깊이를 모르는 동공, 찢어지는 비명 등)을 강조해서 각색이 강하단 생각이 든다. 후반부의 CG는 분명 원작의 대단원을 대신하는 요소인데, 이제는 식상하다고 볼 수 있으므로 오히려 비틀고자한 의도도 보인다. 다만 감독의 의도 안에서 만들어진 작품인 것과 별개로 개인적으론 원작 쪽이 더 나았다. ※이하 스포일러 및 원작 이야기.
개인적으로는 원작의 결말은 층위가 깊고 복잡하고 풍부하다고 보았다. 작중에서 가장 미스터리한 존재는 다름 아닌 바위다. 암석숭배는 석기시대부터 내려오는 가장 오래된 신앙 중 하나고, 이 작품이 민속 호러라는 점에서 그 근원까지 타고 내려가는 게 좋았다. 개인적으로 스티븐 킹의 을 비롯해 <높은 풀 속에서>와 같은 작품을 좋아하는데 기원을 타고 내려가서 도달하게 되는 그 돌이 주는 어떤 원형의 모습이 마음에 들기 때문이다. 돌은 대지와 같으며 동시에 대지와 구분 되는 존재고(그러니까 작은 대지, 작은 세계다) 그 어떤 존재로도 볼 수 있고(마치 구름처럼 부르는대로 이름지어진다) 인간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불변성과 세상 만물이 움직일 때도 자리를 지키는 영속성의 존재다. 원작에서 이상 현상의 연원을 찾는 와중에 흰 원숭이며 마을의 마사루라는 남자 따위가 이야기되지만 결국 그 모든 건 그 선대에게 들은 이야기에 불과하고("…나야 모르지. 부친에게 들은 이야기를 했을 뿐이니까.") 최후까지 알 수 없는 존재로 남아있다. 단지 드러나보이는 공포의 현상들은 시대에 금기로서 규합하고 있을 뿐(변태 남자, 흰 원숭이 괴물, 마사루) 그야말로 실체적 진실에는 조금도 접근하지 못하고 돌에 처박힌 계란들처럼 속절없이 으깨진다. 그리고 이 무력함은 작중 인물을 넘어서 독자에게 전달된다. ※이하 저주 없음.
작품의 함의가 메타적으로 소설을 읽는 독자를 상정하고 전달되는, ‘읽는 이에게 저주를 거는’ 소설의 결말(난 신본격 소설의 ‘독자와의 대결’에 빗대어 ‘독자에 대한 저주’라고 부를까 싶다)은 <주온>을 레퍼런스로해서 대만 영화인 <주>와 같은 작품은 물론, 원작자인 세스지가 영향을 받았을 배의 소설에서도 많이 볼 수 있다. 이것은 이러한 모큐멘터리 작품이 호러소설과 괴담 사이에 위치하길 희망하고 있기 때문이다. 호러소설과 괴담의 차이에 대한 많은 의견이 있지만 가장 극적인 부분은 호러소설은 허구라고 주장되는 반면, 괴담은 진짜라고 주장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2ch에 올라오는 괴담 중 ‘이것이 가짜’라고 주장되는 경우는 없다. 반대로 호러소설은 어디까지나 소설이 가지는 허구성에 기대고 있다. 소설은 물론 읽는 동안은 불신의 유예를 통해 진실로서 통용된다. 하지만 그 진실도 소설을 읽는 동안 뿐이다. 소설을 덮으면 허구는 허구에 불과해진다. 이런 한계를 돌파하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하는가? 많은 소설들과 달리 호러소설은 공포와 불안과 긴장이라는 편도체가 주도하는 생리적 무기를 쥐고 있다. 이런 생존과 관련된 감정 또는 감각은 일시적인 효과를 발휘하는 다른 감정 또는 감각과 달리 좀더 길고 지연된다. 호러소설은 자신이 진짜라고 주장하기 위해 이것을 거침없이 휘두른다. ‘독자에 대한 저주’는 그래서 시도되는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 독자들이 책을 덮고도 두려워하면 소설 속의 진실은 그만큼 연장되는 셈이다.
개인적으로 세스지의 입에 대한 앙케트도 좋았다. 시험 형식을 통해 독자를 텍스트에 참여 시키고 강렬한 이미지를 통해 시적인 요소가 있어 실험적인 것으면서도 동시에 ‘설명하지만 여지를 두는 것’으로 호러소설의 양식미도 갖춘 좋은 단편이다. 물론 배의 소설들도 추천해야할 것이다. SCP 재단에서 단편소설집 한 권 분량의 소설이 있는데 아무도 읽지 않는다. 세스지의 소설을 재미있게 읽었다면 필히 읽어야 한다. 내가 왜 두 작가를 함께 묶어 이야기하는지 알 것이다(사실 이 이야기를 하기 위해 이 글을 썼다). ※이하 링크 있음(저작/이야기 탭에서 골라 읽기).
https://scpko.wikidot.com/author:pear-qu
배(梨)의 저자 페이지 - SCP 재단
이야기-JP 『무無연縁』
「배(梨)」라는 명의로 처음 쓴 작품입니다.
사물에서 연관성을 읽어내 연결하는 것이 반드시 의미를 이룬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이 글을 처음으로 써놓길 잘했다는 생각이 새삼 들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