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즈를 기다리지 말자 / 하이어드4 / 그레이브야드 북 / 모두 다 예쁜 말들 / 파프리카1, 2 / 민들레 와인 / 멸종 / 여우와 둔갑설계도 / 한국 공포 문학 단편선4 / 한국 환상문학 단편선2 / 모든 것이 F가 된다
로버트 마셀로: 뮤즈를 기다리지 말자 / 김상혁: 하이어드4 / 닐 게이먼: 그레이브야드 북 / 코맥 매카시: 모두 다 예쁜 말들 / 츠츠이 야스타카: 파프리카1, 2 / 레이 브래드버리: 민들레 와인 / 로버트 소여: 멸종 / 김주영: 여우와 둔갑설계도 / 이종호 외 9인: 한국 공포 문학 단편선4 / 배명훈 외 12인: 한국 환상문학 단편선2 / 모리 히로시: 모든 것이 F가 된다
내 생각엔 사람들이 작법서를 보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눠진다고 생각한다. 하나는 작법서답게 글 쓰는데에 도움을 얻기 위해서이고, 둘은 ‘과연 나는 똑바로 글을 쓰고 있는걸까’ 생각하면서 공감을 얻기 위해서, 라고 생각한다. ……아니라고? 적어도 난 맞으니까 꼭 아닌건 아니겠지.
이 책은 기사나 수필도 언급하고는 있지만 아무래도 장르 작법에 가깝다. 일단 제목인 ‘뮤즈를 기다리지 말자’ 부터. 아무래도 본격문학이나 기타 다른 장르의 글 보다 장르문학 쪽이 발상이나 아이디어에 더 기대는 편이니까. 근데 번역이 잘못된건지 읽기가 영 버겁거나 이해가 잘 되지 않는 부분이 종종 보였다.
하이어드의 배경은 한국을 은유하고 있다. 이영도의 해설에도 나와있지만 못봤다 하더라도 가끔 노골적이다 싶을 정도로 드러나기도 한다. 이런 부분은 조금 불편하게 느껴지는데 아마 유도했으리라 생각된다. 불편한 점은 등장인물의 묘사에서도 느껴진다. 등장인물들은 정주기 어려운 대사나 행동을 막 던진다. 그치만 이야기 구조는 몹시도 깔끔하다. 결과적으로 김상혁은 하고 싶은 말 다 했겠지만 다수 독자층의 지지를 받기는 어려웠지 않나 싶다(하이어드는 눈마새 만큼 잘 쓴 글인데 왜 인기를 못끌었나, 하는 소릴 판갤에서 들어서 하는 말).
그레이브야드 북은 성장소설이다. 줄거리? 닐 게이먼이 했던 말을 옮기자면 정글북 묘지 버전이다. 한 소년이 묘지의 유령들에 의해 길러지는 이야기다. 별 것 없을 것 같지만 이야기와 소재는 두근두근 거리게 만든다. 모험도 있고 위기도 있다. 그러면서 장르 판타지의 느낌을 그대로 녹여냈다. 이 소설은 아주 멋진 판타지 소설이다.
코맥 매카시의 서부 소설이라는데, 서부 소설 아닌거 같다. 미국과 멕시코 국경이니까 남부 소설 아닌가? ……농담. 이 소설은 성장소설이자 모험소설이다. 소년과 친구는 함께 모험을 떠난다. 모험을 겪는다. 다시 돌아온다. 리얼한 묘사 때문에 더 몰입된다. 그치만 선험되는 지식이 없으면 놓치는 부분이 생긴다. 이야기 자체가 주는 즐거움과는 별개지만.
파프리카가 이능력배틀물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2권 중반부 까지도 이해하지 못했다. -라는 건 아무래도 좋은 이야기고. 주인공은 박사인데 꿈을 볼 수 있는 기기로 정신병을 치료한다. 이게 효과가 아주 좋아서, 박사랑 그 기계만든 또 다른 박사랑 노벨상 후보에 오르게 된다. 근데 누가 잘 나가면 배아파하는 놈들이 있는 법. 주인공이 인식못하는 사이 위기가 닥쳐온다. 이야기의 전체적인 그림은 대강 이렇다.
1권 끝까지는 주인공이 속수무책인 모습을 보이는데 2권 부터는 주인공도 반격을 시작한다. 2권 중반부 부터 좀 막나가는게 아닌가 싶기도 했지만 1권 초반부 부터 어느정도 암시가 있기도 해서 괜찮았다. 재미있는 소설.
미국인들이 책의 이름을 따 달 분화구에 이름을 붙일 정도의 소설. 미국 그네들에겐 그렇게나 깊이 와닿았나보다. 나는 아니었지만.
민들레 와인은 열 두살의 ‘나’와 여름 한 동안 벌어지는 기묘한 사건들의 합이다. 민들레 와인은 황금빛의 아름다운 옛날로 돌아갈 수 있는 힘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이런 소설 나오기 힘들지 않을까 생각해봤다.
SF의 로망으로 가득 찬 소설이다. 타임머신과 공룡의 멸종. 이게 얼마나 로망이냐면, 예전에 웹에서 공룡 나오는 소설하면 전부 다 이거였다. 타임머신 타고 공룡 보러가기. 잘 알려지진 않았지만 거의 클리셰나 다름없다. 게다가 이 소설은 로망이 하나 더 더해진다. -말하면 스포일링이니까 참아본다.
공룡의 묘사가 상당히 세밀하게 그려지는데 그런 부분에서 작가의 공룡에 대한 애정이 느껴진다. 그리고 끝에서 결국 보여지는, 이 소설에서 말하는 공룡의 멸망은 아주 경이적이다. 그리고 타임머신이라는 소재를 껍데기만 썼느냐? 하면 아니다. 멸종은 아주 멋진 소설이다.
나는 라이트노벨도 좋아한다. 좋은 라이트노벨이라면 역시 ‘삽화’가 어울리냐, 같은게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삽화가 예쁜가? 도 중요하지만 그 다음이다), 여우와 둔갑설계도는 좋은 라이트노벨이다. 그리고 라이트노벨이라고 삽화만 중요한게 아니다. 역시 주가 되는건 글이다. 이게 알맹이다. 좋은 라이트노벨은 좋은 소설이기도 해야한다. 그런 의미에서 여우와 둔갑설계도는 역시 좋은 라이트노벨이다. 그치만 결말의 반전 아닌 반전은 조금 섭섭했다. 아닌 편이 더 좋았을텐데.
한국 공포 문학 단편선 4는 3 보다 나은 듯 하다가 후반부 작품들이 그저그랬다. 장은호의 ‘첫 출근’은 은유하지만 잘 와닿지 않는 부분이 있다. 발상의 비약일까. 위기 부분은 좀 그랬지만 재미는 있었다. 김종일의 ‘도둑놈의 갈고리’는 이제는 흔한 패턴이지만 글 솜씨가 좋아서 괜찮았다. 이종호의 ‘플루토의 후예’는 다 읽고 나서 일본의 귀에 대한 무언가가 자꾸 떠올라서…… 황태환의 ‘폭주’는 출판 이전에 읽은 기억이 있다. 결말 부분이 바뀌었는데 바뀌기 전이 더 제목에 어울리지 않나 싶다. 우명희의 ‘불귀’는 마지막에 가서 이게 도대체 뭔가 싶었다. 아직도 이해가 안된다. 유선형의 ‘도축장에서 일하는 남자’의 경우엔, 작가가 꿈에서 소재를 따온다는 작가의 소개가 자꾸 떠올랐다. 너무 뛰어든 것 같다. 최민호의 ‘더블’은 이제는 흔한 도플갱어 이야기. 김유라의 ‘배심원’은 괜찮긴 했지만 이야기가 그려져서 큰 충격을 주진 못한거 같다. 권정은의 ‘행복한 우리집에 어서오세요’는 이제 흔한 좀비 이야기. 전건우의 ‘배수관은 알고 있다’는 이제 지루해지기 시작하는, 한국 공포 문학 단편선에서 자꾸 시도했던 한국형 공포 소설이 아닐까.
영화 시리즈는 갈 수록 재미 없는 경우가 태반인데 소설 단편집의 경우엔 그렇지 않은 것 같다. 강지영의 ‘브라보, 청춘!‘은 조금 흔한 이야기. 나쁘진 않지만. 배명훈의 ‘얼굴이 커졌다’는 배명훈식 로맨스 소설. 은림의 ‘낙오자’는 약간 얼떨떨했다. 나는 아직도 남자와 여자를 생물학적 구분법 말고는 구분하지 못한다. 김이환의 ‘버지나아 울프는 없었다’는 깔끔하다. 별로 할 말이 없다. 김주영의 ‘지구의 중력은 안녕하시니?‘는 나 혼자 읽다가 눈물이 핑 돌았다. 연인들은 암만 헤어져도 안 슬픈데 이런건 슬프다. 임태운의 ‘이빨에 끼인 돌개바람’은 임태운식 SF. 재미있다. 권민정의 ‘나하의 거울’은 고전적이지만 감성적이다 좋다. 김지현의 ‘방문자’는 조금 더 단순했음 더 좋았을 것 같다. 정지원의 ‘시간을 팝니다’는 그냥저냥. 사고파는 시간이라는 소재를 너무 단순하게 풀었다. 김두흠의 ‘1억 원’은 분량을 좀더 줄였어도 상관없지 않나 싶다. 이수현의 ‘쓰레기들의 왕’은 본격 판타지 단편. 나쁘진않다. 양미현의 ‘파랑새’는 잘 모르겠다. 뭐지? 이상민의 ‘댁의 아내는 안녕하십니까?‘도 잘 모르겠다. 뭘까?
제목 보고 빌리려다가 추리라서 포기하다가 파우스트상 수상작에 관심이 가서 빌린 ‘모든 것이 F가 된다.’ 제목 참 좋다. 내 학점 이야기하는 거 같아서 공감도 가고.
분류하면 신본격 미스테리, 그러니까 밀실에서 쟤가 어떻게 죽었나? 추리하는 이야긴데, 다 보고 나면 참 파우스트스럽다 싶다. 생각해보면 그렇게까지 특이한 것도 아니지만(일단 설정부터 특이하니까). 근데 조금 된 소설이라 그런지 소설의 배경이 조금 덜 최첨단스럽다. 작가의 의도에 못미친 것 같다. 옥스타칼니스의 아이들에서 팔란티어로 개정판 낸 것 처럼 이 소설도 그렇게 해야되지 않나 생각도 들었다. 여튼 매력적으로 보이는 등장인물도 나오고 추리도 억지까지는 아닌 것 같다. 재미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