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은충 팬픽: A의 수집
A가 산 속으로 여행을 떠난다고 했을 때, 나는 언제나 그랬던 것 처럼 여러 망상을 펼칠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가장 그럴듯한 망상 하나를 끄집어내 A에게 비꼬듯 말했다. 아니, 사실은 비꼬는 게 맞았다.
“왜? 이번엔 산삼이라도 캐러가나 봐.”
A는 가방에 이것저것 바쁘게 챙겨넣으며 말했다.
“아냐. 벌레야.”
“벌레?”
“수은충.”
“그게 뭐야?”
“벌레야.”
그러니까 그게 뭐냐고.
입밖으로 내고 싶었지만, A의 무심한 말을 또 다시 듣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에 관두기로 했다. A는 수집을 하러 나설 때면 별다른 설명을 해주지 않았다. A는 수집광이었다. 뭔가 수집할 것이 생기면 수집할 물건 말고는 주위의 아무 것에도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래도 알아두어야 할 것은 알아야했다.
“그럼 너 어디로 가는데?”
“수은충이 있는 곳으로 가야지.”
“거기가 어딘데?”
그제서야 A는 동작을 멈추고 나를 바라봤다. 빤히 바라봤다. 이 초에서 삼 초 사이. 아주 잠깐이었고 A는 다시 물건을 챙기기 시작했다. 분명 뭔가가 있었다.
“잠깐. 어디로 가는지 이야긴 해줘야 할 거 아냐.”
“거기 없을지도 몰라.”
“그러니까 거기가 어디냐고.”
“없으면 금방 돌아올게.”
“그러니까 거기가,” 하고 말했을 때 A가 고개를 들어 입을 맞추어왔다. 얼굴을 돌려 피했다. 잠시 그대로 있자 A가 짐을 싸더니 밖으로 나섰다. 이대로 보내줄 수는 없었다. 나는 현관으로 나서는 A의 손목을 붙잡았다. A가 돌아봤다.
내가 말했다.
“어디로 가는지만 말해주고 가. 어디야? 북한산이야? 지리산이야? 도대체 어딜 가는데 말을 안 하는데? 설마 백두산이야? 천지에 괴물이라도 나왔데?”
“안데스 산맥이야.”
어, 하고 뱉을 틈도 없었다. 손에 스르르 힘이 빠졌다. 머릿속이 새하얗게 되서 현관문을 열고 나서는 A를 다시 붙잡을 생각도 못했다. 안데스 산맥이라니. 도대체 거길 왜 가는 건데? 지구 반대편이라고. 안데스 산맥이 어디 있는지는 알아? 그게 몇 미터인지는 알아?
A의 취미는 결혼 전 부터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나 유난을 떤다는 사실도, 너무나 유명했기 때문에 알고 있었다. A의 수집욕은, 일단 생기기만 한다면 A에게 그 어떠한 것들 보다도 그 우위에 섰다. 돈이나 일은 말할 것도 없고, 친구와 부모 조차 앞섰다. 어쩌면 사회 윤리나 물리 법칙 보다 앞설지도 몰랐다. 그래도. 그래도…….
A의 수집목록의 공통점은 희귀한 것들이었다. 화석도 있고 유명인의 물품, 종종은 살아 있는 생물도 포함되었다. 중요한 점은 그것들이 희귀하다는 사실이었다. 세상에 단 하나 밖에 없거나, 가진 사람들이 많아도 열 손가락을 넘지 않았다. A는 그런 것들을 원했다. 그리고 대개 그러한 희귀한 물건들은 희귀함에 비례해 구하기 어려웠다. 구하기 어려움에 비례해 많은 시간이 들었다. 많은 시간에 비례해, A와 내가 떨어져 있는 시간 또한 길었다.
이제는 참기가 힘들었다. 나는 단단히 벼르며 A가 돌아오길 기다렸다.
A는 3주가 지나서야 돌아왔다.
A가 말했다.
“없더라고.”
면전에 대고 욕을 퍼부어줄 작정이었던 나는 A의 초췌한 모습에 힘이 빠졌다. 얼굴은 시커멓게 탔고 몸에서도 냄새가 심했다. 그래도 A가 씻고 한 숨 잔 다음에 이야기를 꺼내는 게 좋겠다고 생각할 쯤에, A가 옷장을 뒤적일 때 의아해졌다.
뭐하냐고 물으니 A가 말했다.
“수은충 아직 못 찾아서. 이번엔 중국 구이저구성에 가려고. 거기에도 수은 오염이 심각하다네. 수은충에 대한 자료가 확실히 없다보니까, 수은오염 지역으로 돌아다니는 거지. 다녀온 안데스 산맥도 그랬어. 그런데 거기는 없더라. 수은충.”
“야,” 하고 말하는데 목소리가 잘 나오지 않았다. 목 뒤로 살을 파고 나오는 뜨거운 감각이 느껴졌다. 다른 감각이 아니었다. 마치 벌레가 기어나오고 있는 듯한 착각. 그때 A가 날 덥썩 끌어안았다. 그리고 목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농담이야. 왜 그렇게 화를 내려고 그래.” 어쩐지 그 손가락 끝이 차가웠다. A의 정강이를 걷어찼다. A는 미안하다고 했다. 나는 A의 정강이를 부숴져라 찼다. A가 다시는 여행을 떠나지 않겠다는 거짓말을 하고나서야 그만두었다.
A가 돌아오고 모든 게 잘된 것 처럼 보였다. 그렇지만 미묘한 불안감이 들었다. 그 감각은 A와 함께 잠자리에 들 때까지 계속되었고 한밤중에 이내 A가 자고 있는 침대에서 벗어나 A가 가져온 짐들을 살펴보게 되었다.
잡다한 물품 속에서 유난히 특이한 물건이 두 개 있었다. 나무 목갑과 곤충이라는 한자만 겨우 읽을 수 있는 낡은 서적이었다. A는 돌아온 뒤, 늘 그랬던 것 처럼 가져온 희귀품을 보여주지 않았다. 사실 보여줄 시간이 없었을지도 몰랐다. 나에게 열심히 차였던 A는 씻고 밥을 먹고 바로 침대에서 곯아떨어졌다. 하지만 평소와는 다른 행동은 불안감을 자아냈다. 왜 그랬을까? 별로 의미가 없을지도 몰랐다. 그래도 확인해보고 싶었다. 그가 무엇을 가져왔는지.
예상이 맞다면 목갑안에 그 수은충이 있어야 했다. 뭔가 위험한 것일지도 몰랐다. 그래서 A가 보여주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름대로 벌레라면, 딱히 위험하지는 않을 것이다. 게다가 잠깐만, 잠시만 확인을 하고 원래자리에 놔둘테니까.
나는 목갑을 열어보았다. 목갑 안에는 아무 것도 없었다.
이상한 일이었다. 이럴리가 없을텐데. A가 다시 떠난다고 했을 때, 화가 났던 것은 A가 정말 떠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A는 원하는 것을 찾지 못하면 언제든 떠날 준비가 되어 있었다. 저렇게, 곤히 잠들리가 없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목갑과 책을 들고 A의 창고로 향했다. A가 수집품을 모아두는 창고였다. 형광등을 켜다 온갖 잡다한 것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눈에 이채를 띄는 상자가 있었다. 그리고 그 안에 들어있는 은빛 벌레. 창고에서 보지 못했던 벌레이니, 분명 수은충이 맞을 것이다. 나는 더이상 자세히 살펴보지않고 방을 나섰다.
모두 잘된 것이다. 한숨을 쉬었다. 나는 방으로 돌아와 목갑과 책을 가방에 넣어두려고 했다. 문득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A는 목갑에서 수은충을 언제 꺼낸걸까. 목갑은 분명 다른 물건들 사이, 깊숙하게 들어 있었다. 꺼내어진 적 없다는 듯이.
목갑을 집어넣고 이제 책이 손에 들려 있었다. 뭔가 뻣뻣한 종이로 보강이된 책이었다. 착착착 넘겼다. 갖가지 벌레들이 나왔다. 이름도 들어보지 못한이상한 벌레들이 많았다. 수은충은 책의 가운데 쯤 있었다.
그리고 어두운 조명 아래에서 수은충에 대한 항목을 읽어내리자 다시금 뒷덜미가 뜨겁게……
─
수은충 감상은 이것으로 대체.
읽은지는 오래되었는데 글쓰기를 좀 미루었네요.
참고로 수은충 안 읽으면 이해가 안 될 소설.
사실 읽은 사람도 안 될지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