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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기로운 작가 생활

존 스칼지의 소설이라면 전반적으로 재미있게 읽었다. 전부가 아니고 전반적인 이유는 순전히 내가 아직 한국에 출간된 소설 전부를 안 읽었기 때문인데, 아마 다 좋아할 거라고 생각한다. 이 책도 꽤나 즐겁게 읽었지만 전반부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읽은 반면 중반부는 다소 성의 없이 읽었다. 이미 한 번 재미있는 부분을 골라 훑어 읽기를 했었는데 사실 그때와 지금의 재미가 큰 차이가 없다. 그래도 후반부는 여전히 재미있다. 다시 보니 더 재미있는 거 같다.

중반부의 문제는 일단 2005년도 미국 작가인 존 스칼지와 현대 한국 독자(또는 작가)가 공유하는 부분이 많지 않다는 것이다. 존 스칼지는 글쓰기 일감을 구할 수 있는 ‘라이터스 마켓’을 몇 번이나 인용하면서 글을 쓸 줄만 안다면 여기에서 일을 따내 글을 써서 돈을 벌기 시작할 수 있다고하는데, 한국엔 ‘라이터스 마켓’과 비슷한 플랫폼이 존재하지 않는다. 일반적인 비문학 글쓰기는 사보 회사에 소속된 저자들, 기존 출판사 연락처에서, 대학 교수들에게 알음알음 돌아간다. 한국에선 전혀 알려지지 않은 사람에게 글쓰기를 맡기는 경우가 거의 없다. 애초에 저술이 필요한 경우가 많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 외에도 에이전트(or 에이전시)를 반드시 둬야한다던가 하는 팁이나, 출판 계약시의 고료 수준에 대한 것도 한국의 상황과는 다르다. 존 스칼지는 단편소설 쓰기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는데(했나? 안 한 거같다) 아마 미국에서 그런 일감이 없는 게 아니라 스칼지 자신이 무관한 커리어이기 때문일 것이다. 반면 한국에선 작가, 특히 소설가라면 단편소설쓰기는 웹소설과 청소년 소설을 제외하면 여전히 주류 글쓰기에 속한다. 비슷한 종류의 글을 쓰면서 한국 독자를 대상으로 한다면 단편소설쓰기에 대해서 말하지 않을 수 없다. 계약금과 고료 수준도 한국과는 조금 차이가 난다. 아마 2005년도 미국을 기준으로도 2023년 한국의 고료 수준은 꽤 낮은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이 모든 것과 별개로 지적하고 싶은 부분이 있다. 2005년도의 존 스칼지가 너무 젊다는 것이다.

이 책에 실린 존 스칼지의 글은 개인 홈페이지의 글들을 장을 구분하여 옮긴 것인데, 크게 세 가지 분류로 나뉜다. 하나는 그냥 생각나서 쓰는 글, 두 번째는 누군가 남긴 질문에 답하는 글, 세 번째는 최근 일어난 사건에 대한 공격이다. 세 번째의 글이 보통 문제인데 상황에 대한 설명이 만족할만큼은 나오지 않는다는 것(친근한듯 말하는 그 인물에 대해 어느 정도 설명이나 주석이 달려 있어도 존 스칼지가 그 사람을 친근하게 느끼는만큼은 아니므로)을 제외하더라도, 스칼지의 공격성은 좀 부담스러운 구석이 있다. 911테러로부터 겨우 몇 년이 지났을뿐인데다, 전쟁은 한창이었고, 웹 생태계는 이제 형성되고 있었다. 혼란하고 편향된 세계에서 스칼지는 밀리터리 SF를 썼고 그 소설을 군인들에게 무상 제공 중이었다. 그리고 스칼지는 전업 작가로서의 입지를 굳혔고, SF 작가로서 이름을 널리 알리고 있었다. 자신에 대한 자부심은 물론 이러한 자부심을 근거로 자신의 생각과 태도가 틀리지 않았을 거라는 믿음이 그 공격성에 묻어 있다. 정치적으로 편향되었거나 논리적으로 틀린 말을 한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다만 자신과 일치하지 않는 의견에 대해 여지를 최소한으로 두고 있으며, 이러한 뉘앙스가 페이지를 넘기는 동안 계속해서 생각의 앙금을 남긴다. 즉, 반론을 하고 싶지만 책의 저자는 내 반론을 듣지 못한다. 그러면 불편해진다.

책의 전반부에서 나오는 글쓰기, 그리고 작가에 대한 팁은 도움이 될 수 있지만 이 책을 특별히 작법서처럼 만들지는 않는다. 팁끼리 중복되는 건 물론 존 스칼지만의 특별한 작법이 정돈되어 있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다시쓰기’에 대한 생각도 좀 그런 편인데, 존 스칼지는 자신이 다시쓰기 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서 길게 적어두었지만, 사실 한국만해도 다시쓰기를 하지 않는 작가가 훨씬 더 많다. 아마 다시쓰기를 하는 작가의 비율은 문화 차이에 비롯될 것이다(유감스럽지만 스칼지가 특별해서는 아니다).

책의 후반부는 좀더 재미있다. 짧지만 SF에 대한 이야기들이 나오고 SF작가들에 대한 이야기도 나온다. 읽다보면 존 스칼지가 2005년도 최고의 SF라는 찰스 스트로스의 “아첼레란도"를 꼭 읽고 싶어진다. 한국엔 나오지 않았다. 한국에선 찰스 스트로스가 영 인기가 없다. 한국에서도 찰스 스트로스가 인기 많아서 잘 팔리면 좋겠다. 누가 안 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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