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솔로지 감상
#용솔로지
텀블벅 프로젝트 drag-on을 통해 출간된 “hi there dragon─안녕, 드래곤"과 “way to dragon─드래곤에게 가는 길” 두 권의 단편집은 드래곤(또는 용)을 소재로 하고 있다. 첫 번째 단편집의 경우 현대에서 미래에 이르는 여러 시간대로부터, 두 번째 단편집의 경우 장르 판타지에 근거한 드래곤을 주인공으로 삼는 것을 제외한다면 각 단편은 장르와 주제가 상이한 편이다. 이를 통해 오래전부터 수 많은 함의를 가져온 드래곤에 대한 창작자의 태도들을 엿볼 수 있었다. (이하의 감상은 작품을 모두 읽기 전 까지는 알아차리기 힘든 정도의 다소의 미리니름이 있다.)
“hi there dragon─안녕, 드래곤"의 경우 그 배경이 장르 판타가 아닌 장소에 있기 때문에 작중 인물들은 드래곤의 존재를 믿지 않거나 부정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따라서 이 단편집의 작품들은 신화, 설화, 옛 이야기를 믿지 않는 이들을 내세운 다음, 드래곤의 존재를 드러내 그 부정을 부정하는 이중부정의 이야기들이다.
이경희의 ‘마음 여린 땅꾼과 산에 깔린 이무기 설화’의 경우 한 땅꾼이 돌에 깔린 이무기와 그 이무기를 살리려는 여인을 발견하면서 이야기가 시작되는데, 그는 전혀 알지 못했던 거대한 이야기에 휩쓸릴 위기에 처한다. 남세오의 ‘제131드래곤비행대대’의 경우 작중 주인공인 드래곤들은 현대화된 병기를 가진 인간에게 패배하여 굴종한 상태에서 이야기가 시작한다. 하지만 어떤 용은 인간의 강점이 곧 약점임을 알아차린다. 포송의 ‘백일홍이 피었습니다’의 주인공은 작중 옛 이야기의 답을 골몰한다. 하지만 그 이야기가 어머니와 누이들을 거쳐 곧 자신의 이야기임을 알아 차릴 때 용이 나타난다. 이시우의 ‘진언과 용’ 속 주인공은 양고기 요리를 주문하는 기이한 손님에 대해 믿지 않는다. 하지만 자신이 오래된 이야기 속 싸움의 복판에 놓인 것을 알게 되자 곧 자신의 역할도 알아차린다. 미르비의 ‘2020년 1월 25일에 저장된 글입니다’의 주인공은 자신이 드래곤이지만 자신의 존재에 대해 회의하고 있다. 때문에 이 글은 곧 자신의 존재증명이 된다. amrita의 ‘울트라마린 엑소티카’에선 인공 달을 배경으로 비참하게 살아가는 주인공이 그 무엇에도 의지하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잊힌 이야기를 알아차릴 때 각성한다.
이중부정이 곧 강한 긍정인 것처럼, 각 소설은 숨겨지거나 잊혀지거나 침잠된 신비를 들추어내고, 드래곤을 과거의 존재가 아닌 현재의 존재로 되살려 숨을 불어넣는다.
“way to dragon─드래곤에게 가는 길"의 경우 모두 장르 판타지의 이차세계를 이루고 있으며 드래곤의 존재를 모르는 이들은 없다. 하지만 작품 속 드래곤들은 어딘가 모자라거나, 손상되어 있으며, 고통스러워한다. 따라서 이 단편집의 작품들은 불충한 신화를 회복시키는 이야기들로 이루어져 있다.
송한별의 ‘용과 편의점과 모험가’의 주인공 용은 고독한 존재이나 산책 중 둥지 가까이 놓인 편의점과 그 주인을 발견한다. 반월웅의 ‘용을 훔친 도마뱀’의 경우 도마뱀이라고 불리는 도둑은 자신의 모습을 흉내내는 기이한 존재를 발견한다. 그 존재는 어딘가 어리숙하고 미련하기에 도둑은 그것을 살갑게 보살피고 애정을 준다. 반도의 ‘조금 오래된 소원’ 속 주인공은 어느 날 용을 만나서 술친구가 되지만, 그 용은 인간 세계를 위협하는 강대한 적이기도 하다. 주인공은 일그러진 관계를 회복하는 것으로 세계를 구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된다. 재은하늘의 ‘바닐라&크림’은 마녀와 어린 드래곤이 친구를 맺으며 시작한다. 왕의 명령으로 마녀가 붙잡혀가자 드래곤은 마녀를 구하러 가지만, 예상 밖의 결과를 맞이한다. 연여름의 ‘론다’ 또한 마법사와 어린 드래곤이 친구를 맺는데, 마법사는 마법사답지 못하고 드래곤 또한 드래곤답지 못하다. 하지만 이 둘은 자신이 정해진 틀 밖의 존재가 될 수 있는 용기를 가지고 있다.
상상 속의 존재이기에 일견 완벽해보이는 생물인 드래곤이지만, 고독한 절대자의 존재는 이야깃거리로 삼을 수 없다. 때문에 드래곤은 필연적으로 이야기 속에서 보다 나은 존재가 되기 위한 성장담의 주인공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