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누해의 <창작자를 위한 지브리 스토리텔링>외 2권
<창작자를 위한 지브리 스토리텔링>을 읽었다. 인레 님의 끝없는 미야자키 하야오 사랑에 대해 잘 알 수 있었고, 지브리 창작 비화가 계속 나오는 것이 킥이 되었다. 작법서를 많이 읽어보면 알겠지만 작법서란 것에서 크게 눈에 밟히는 내용을 하는 경우가 잘 없고, 그런 걸 잘 기대하지도 않는다. 그래서 결국에는 작법서에서 작법 외의 내용에서 재미를 찾기 마련인데(이쯤 읽으면 작법서를 읽는 목적도 이미 ‘소설을 잘 쓰겠다’ 이런 게 아니라 그냥 작법서라는 형태의 소설가/창작자 공감 에세이 또는 자기 계발서에 가깝다), 지브리 스토리텔링의 경우 지브리의 근간이 되는 레퍼런스 등을 언급하는 등 지브리 창작이 어디에서 비롯되는 것인지 알 수 있어서 좋았다. 그리고 이런 것을 아는 것이 창작에 도움이 되기도 한다. 그런 것을 찾아볼 수도 있고(따로 메모하진 않지만 기억은 해둔다) 꼭 찾아보진 않더라도 간접적으로 그러한 것을 체험하는 것이 각자가 창작을 할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에 대해서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 그러니까 많은 창작자들이 글을 쓸 때 ‘이게 맞나’ 하면서 글을 쓰게 되는데, 보통 작법서도 안 읽고 동료 작가도 없어서 그렇다. 하다못해 유튜브에서 웹소설 작가 브이로그라도 보면 ‘아 다들 이렇게 쓰는구나’ 하게 되는데, 이게 도움이 된다. 자신이 제대로 가고 있는지 이해하는 과정이 늘 필요한 것이다. 덤이지만 다른 영화 시나리오 작법서나 소설 작법서에서 자주 쓰이는 용어가 통일되어 있다는 게 의미가 있었다. 모티프와 모티브의 구분이라던가(모티프는 반복되는 이야기 구조를 말하고 모티브는 아이디어의 근거를 말함). 없는 용어는 당연히 새로 만들어야겠지만 있는 개념을 자의적으로 새 용어를 만들어 쓰는 경우에는 헷갈리기 시작한다.
해도연 작가의 도 읽었다. 지브리 스토리텔링이 특정한 스타일을 활용하는 창작법이라면 SF 쓰는 법 쪽은 특정한 장르쪽으로 치우쳐서 창작을 하는 법에 가깝다. SF에 대한 정의 파트라던가 고증에 대한 파트라던가 여러모로 SF팬이라면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부분들이 배치되어 있어 작법서라는 목적 외에도 즐겁게 읽을 수 있는 책이었다. 여러 SF소설을 예시로 들면서 소설 창작을 따라갈 수 있는 책이라서 그야말로 처음 SF을 쓰는 작가나 꼭 SF가 아니더라도 소설을 써보고 싶다하는 작가에게 길라잡이가 되어줄 수 있을듯 하다. 개인적으로는 작법서를 도구 상자로 본다는 정의가 재미있어서 좋았다. 나 같은 경우에는 작법서를 이야기하자면 작법서 이전에 스타일, 그러니까 문체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한다. 작가의 문체라는 건 문장 단위에서는 작가가 어떤 단어들을 선호하고, 어떤 어투를 좋아하고, 문장의 길이는 어떻게 정하고, 쉼표는 언제 찍을 것이며 등등을 통해 정해진다. 반면에 소설 단위에서는 어떤 구성을 선호하는지, 주로 작품을 어떻게 끝내는지, 그리고 주제를 설정할 때는 어떻게하는지, 그리고 소설을 쓰기 시작하고 끝낼 때는 또 어떤 방식을 택하는지도 포함된다. 그러니까 소설과 관련한 무수한 무의식적 습관과 의식적인 양식들이 작가의 문체를 정하게 된다. 이러한 문체가 없는 작가라는 건 존재하지 않는다고 봐야할 것이다(서로 비슷한 작가는 있겠지만). 그리고 이런 문체를 스스로 정의하고 설명할 수 있는 작가에게 작법이 있다고 할 수 있으며, 이런 작법을 책으로 엮으면 작법서가 된다고 본다. 그러니까 작법서를 읽는다는 것은 서로 다른 집의 공구함 구성을 들여다보는 것과 닮아있다고 본다. 어떤 작가는 제대로 된 공구함도 없이 나이프 하나로 일을 처리하는가하면 단출하지만 제대로된 멀티툴로 작업을 하는 사람도 있고, 시중에 파는 단정한 공구 세트를 구입한 사람, 그리고 디월트나 밀워키처럼 하이엔드 장비로 무장한 사람 등등이 있다. 작법서를 본다는 건 다른 사람의 공구함에서 좋아하는 장비를 슬쩍해올 수 있는 좋은 기회기도 하다.
RHK로부터 받고 리뷰를 쓰기로 한 <합리적인 미스터리를 쓰는 법>도 읽었다. 일본 작가인 나카야마 시치리의 작법서다. 미스터리를 쓰는 법이라는 제목이지만 미스터리 외에도 미스터리 작가의 삶에 대한 이야기가 가득해서 재미있다. 인상적인 것은 책에서 작가의 캐릭터가 잘 드러나있고, 이런 부분 때문에 작법서를 지향한다기보다는 작법-에세이 장르에 가깝다. 형식적으로 좀더 단속적, 그러니까 SNS 게시물 같이 짧은 글이 이어져있긴 하지만 스티븐 킹의 <유혹하는 글쓰기>나 존 스칼지의 <슬기로운 작가 생활> 같은 작품이 떠오르는 면모가 없지 않다. 개인적으로는 미스터리를 다루는 초중반부도 재미있지만 아무래도 완전히 처음 미스터리를 쓰는 작가를 대상으로 하고 있으므로 약간은 심심한 구석이 없지 않고(그러니까 가위로 치면 안전가위 같은 것을 다루고 있으므로) 중간중간 드러나는 작가의 성격이나 후반부의 작가의 SNS 사용법 따위의 단락들이 즐거웠다. 아무래도 작가라는 직종은 다른 직종보다도 국가간 편차가 크게 나기 때문에 일본에서의 작가, 특히나 일본에서의 미스터리 작가라는 속성을 알 수 있어 좋았다. 일본 같은 경우에는 작가가 따로 홍보를 하지 않아도 출판사가 홍보를 해주고 이런 홍보가 잘 되지 않으면 작가 스스로 부끄러워할 줄 알아야된다는데, 내 생각엔 한국에서는 잘 되는 작가도 그 작가가 만족할만큼 홍보가 되고 있는가 싶은 구석이 없지 않다. 물론 시장 상황이 어려우므로 다 이해를 하고 있지만 분기마다 늘 보던 그 작가만 매대에 오르는 상황에서 작가가 나서서 홍보를 하지 않으면(독자가 짜치던가 말던가) 그냥 존재조차 모르고 사라지는 경우가 더 많이 보았다. 한국의 경우엔 돌아보면 소위 ‘나댄 작가’들이 조금이라도 더 읽히는 경향이 있기도 하다. 그 외에도 작가가 다소 작가가 정치성을 드러내는 것에 냉소적인 경향이 있는듯 보여서 이것도 한국 작가와는 달라보여 재밌었다. 아마 이런 부분은 장르작가이므로 어느 정도 정치적으로 중립을 지키는 것/혹은 정치성을 숨기는 것이 독자에게 선호받는다 따위의 일종의 처세를 이야기하는 것 같기도 했다. 여기서부턴 사실 이 책이랑 아무 관련도 없는 이야기인데. 나는 처세술을 자랑한다는 건 한심하다고 생각한다. 처세가 뛰어난 사람은 잘 봐줘도 ‘사람이 좋다’라고 인정받는 것이고 못 보면 중립적인 사람이란 것이다. 알다시피 중립적이라는 것은 정치적으로 다수에 순응하는 태도다. 그건 원만한 삶을 위한 태도이지 어떤 정의나 윤리에 근거하는 것이 아니다. 올곧지도 않고 바르지도 않고 멋있지도 않다. ‘내게는 소설 밖에 없다’라고 해봤자다. 그냥 현실을 외면한 은둔자가 어떻게 광장에 나가 목소리 높이는 사람을 나무랄 수 있겠나? 아무튼 다시 책 이야기로 돌아오자면. 다른 작가들이 해도 좋고, 안 해도 좋다 황희 정승식 답변을 하기 마련이다. 이건 이해가 되는 편이다. 실제로 창작과 관련한 많은 일들이 정답이랄 것이 정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작법서의 경우에는 해라, 하지마라 등이 비교적 명확하다. 구체적인 명령투는 아니지만 명확하게 좋은 건 좋고 나쁜 건 나쁘다고 말하는 게 전체적으로 안정감을 주는 구석이 있었다. 개인적으로 작법서에서 좋아하는 태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