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명의 독서 중독자들, 이창현/유희
경찰이자 폭력조직의 첩자로 간부 생활 중인 주인공이 독서 모임에 가입하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주인공의 캐릭터 설정은 후반부 대단원에서만 의미가 있고 별로 중요한 요소는 아니다. 이 작품이 어떤 작품이 될 것인지는 주인공과 함께 독서 모임에 가입하는 노마드 캐릭터에서 드러난다. 어떤 책을 즐겨 읽냐는 이야기에 노마드는 ‘자기계발서’를 즐겨 읽는다고 말한다. 다음 컷에서 노마드는 추방 당한다. 독서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통용되는 농담이 페이지마다 나온다.
여러가지 독서가의 미덕(?)이 나오는데, 그래도 완독은 하는 게 좋고 메모는 할 생각이 들지 않는다. 사실 완독 욕심은 없어서 읽다가 만 책이 제법 있는데, 사실 이런 책은 앞으로도 읽을 생각이 딱히 없으니 읽었다고 치기는 민망하다. 옛날에 사두고 안 읽은 책들이 많이 인용 되어 있어서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율리시스도. 굳이 정독을 하지는 않겠지만.
내 생각에 어떤 책은 독자 스스로 정독하게끔 만든다. 그러지 않는 책이라면 굳이 정독할 필요는 없다. 그래도 어떻게든 꼼꼼하게 읽어보려고 노력은 하는 편이지만, 뭐랄까. 글이라는 걸 읽어보면 알겠지만 작가들은 어떻게든 이해하기 쉬운 글을 쓰기 위해 노력하는 편이라서, 대충 읽어도 대충 이해할 수 있게 쓰는 편이다. 이런 평균적인 글쓰기를 고려했을 대 사실 정독을 해야만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글은 독자를 배려하지 않는 글쓰기를 하고 있다고도 할 수 있다. 그렇게 말할 생각은 없긴 하지만.
독자를 배려하지 않는 글쓰기가 결과적으로 더 좋은 글이긴 하다. 중언부언은 아름답지 않다. 중언부언이 아름다우려면 시적인 요소를 차용해야되는데, 이건 쉽지 않고, 보통은 아름답지 않게 만들어진 실수에 가깝다. 정독을 했을 때만 제대로 이해할 수 있게 쓰여진 글들은 그렇게 읽어냈을 때 큰 쾌감을 준다. 아름다울뿐만 아니라 즐겁기까지하다. 다만 모든 독자를 수용하지는 못한다. 그냥 꼼꼼하게 글을 읽을 생각이 없는 독자나, 글의 주제에 관심이 없는 독자나, 덜컹거리는 버스에서 책을 읽는 독자에게는 그냥 읽기 어려운 글이 된다.
그래서 많은 좋은 글들은 예상 독자에게만 좋은 글로 성립한다. 좋은 것도 항상 상대적인 것이다.
딴소리를 좀 했는데. 아무튼 책을 좋아하는 여러 인간군상을 그려내고 그걸 지켜보는 건 재미있었다. 개인적으로는 소설 이야기가 많았으면 했는데 없어서 아쉽다. 나만의 장르소설 버전을 상상했는데 이쪽이 좀더 내 취향인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