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스텔라 감상2, 낙관주의자의 우주
인터스텔라에서 쿠퍼가 집을 떠나는 장면은 우주선 발사 카운트와 겹쳐진다. 이는 집을 떠나는 쿠퍼가, 지구라고 불리는 우리의 가장 큰 집(oikos)을 벗어나려는 것으로도 보인다. 인터스텔라를 생태학(ecology)적으로 읽는 시도도 가능할 것 같다. 인터스텔라에서 찾아오는 위기는 결국 생태학적 위기이다. 이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미국은 첨단의 과학 기술을 활용하고자 한다. 하지만 이것은 모순적이다. 왜냐하면 ‘생태학적 위기’는 과학과 기술 같은 이성을 긍정하는 서구 문화에서 출발했기 때문이다. 또한 인터스텔라의 플랜이 성공적이더라도 비욘드 어스의 순수 친화력과 같은 모순점, 언젠가는 다시 개척할 땅을 찾아야하는 문제는 사라지지 않는다. 기술 문명이 가져온 위기에 대해, 같은 접근 방법을 사용했을 때, 위기의 해결이란 임시적 방편에 불과하다. 때문에 인터스텔라는 모순점을 사건의 지평선 너머에 던져버린다. 문제점과 동시에 문제의 해결방법을 미지의 장소, SF적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는 곳에서부터 가져오기 때문에 생태 위기는 ‘5차원’에서, ‘유령’에 의해 해결된다. 이것은 낙관적인 태도다. 블랙홀 내부에서 일견 ‘사랑’으로 보여지는 쿠퍼의 동인은, 사실 자신이 해야할 역할을 수행하는 오이디푸스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 이것은 인터스텔라가 ‘집’으로 돌아오고야 마는 영웅 회귀 라는 낡은 구조를 가지고 있는 것에서 재확인된다. 결국 인터스텔라가 견지하는 것은 역사적 낙관주의다. 낡고 익숙한 서사담화를 사용하는 것은 우리가 이전까지의 역사처럼 앞으로도 해내고야 말 것이라고, ‘언제나 그랬듯 답을 찾아낼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