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우연들, 김초엽
가끔씩 처음 읽은 SF가 무엇인지 이야기할 때가 있는데 나 같은 경우에는 배명훈, 김보영, 박애진 공저의 “누군가를 만났어"다. 재난영화도 있고 일본 애니메이션과 각종 소년만화에서도 개념이 나오다보니 SF라는 개념을 인지할 정도는 되었지만 SF라는 걸 알고 읽은 건 이 소설집이 처음이었다. 사실, 그때도 정확히 알고 읽은 건 아니었다. 환상문학웹진 거울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작가들의 책이 동인지가 아닌 정식 도서로 출간된 걸 알고 구매를 했었다. 그때는 배명훈과 박애진은 알고 김보영은 처음 읽는 것이었다. 비슷한 시기 판타스틱이 발간되고 크로스로드에 실린 글들이 앤솔러지로 묶여 출간되는 등 SF 읽을거리가 그럭저럭 나오기 시작하던 시기였다. …이 이야기를 왜 하고 있냐면 김초엽의 에세이에서 1) SF 읽는 이야기가 나오고 2)서평을 어떻게 쓰면 좋을까 하는 고민이 나오기 때문이다. 내가 쓰는 ‘감상’은 별 고민이 없는 글이라는 것을 한 번 짚고 가야겠다.
글에 어떤 목적이 있어야 할 필요는 없다. 사람들은 허무맹랑하거나 뜻 없는 헛소리,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지리멸렬하고 맥락 없는 ‘말’을 툭툭 뱉곤 한다. 좋은 대화에서는 이런 일이 적다. 하지만 신경을 기울이면 분명 그런 말들이 있다. 전체 대화의 맥락에서 있어도 좋고 아니어도 좋은 말이 있다. 좋지 않은 대화로 넘어가면 더 많아진다. 웃기지 않은 농담이나, 대상이 자신에게 하는 말이 아니라서 전혀 듣지 않은 말들, 다음 말이 생각나지 않을 때 나오는 감탄사, 더듬는 말, 기억이나 정보를 서로 되짚어보다가 결국 구체적으로는 그게 뭔지 모르겠다는 결론이 나올 때, 좋은 대화를 했다고 생각하지만 서로 상반된 결론으로 매듭지어질 때, 심지어 그걸 서로 모를 때, 저도 모르게 나오는 뜻모를 흥얼거림, 아무도 없을 때 해버리는 혼잣말 등등. 하지 않는 게 더 낫지 않은가 하는 말들이 있다. 하지만 이런 헛소리들이 없어야 하는가 하면 나는 잘 모르겠다. 전체적으로 좋은 말을 하는 방향으로 가면 좋겠지만, 이런 말을 유지하는데는 긴장이 필요하다. 실수를 하지 않기 위해 신경을 곤두세워야 한다. 하루의 몇 시간 정도는 기여를 하겠지만 매 순간 그럴 수는 없다. 긴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이완하는 상태도 필연적일 수 밖에 없다. 헛소리는 할 수 밖에 없다. 나는 글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돈을 받고 쓰는 글이라면 긴장을 좀 해야겠지만 아니라면 아무래도 좋은 것이다. 그래서 읽고 본 것들에 대해 감상을 좀 남겨야겠다고 생각했을 때 아무런 부담 없이 써야겠다고 다짐했다. 문제가 생길 때는 항상 목적이 있을 때였다. 뭔가 칭찬을 해서 다른 사람에게도 추천을 해야겠다고 생각하거나 이 비평이 이 글을 볼 때 새로운 틀로서 여겨질 좋은 글이 되도록 해야겠다고 생각하면 뭔가 삐걱거렸다. 아주 못 쓸 글은 아니더라도 마뜩찮았다. 무엇보다 쓰기가 귀찮아졌다. 그냥 심심풀이로 쓰는 글인데도 뭔가 해야된다고 생각하니 부담이 됐다. 애초에 감상의 존재 자체가 쓸모가 될 수 있는데 그 이상 무언가가 될 필요는 없는 것이다. 그래서 그냥 읽고 보고 뭔가 생각난 아무 것이나 적기로 했다. 짧게 생각나면 몇 줄, 길게 생각나면 되는대로. 어쨌든 그것도 감상이니.
책은 김초엽 작가가 작가 생활을 어떻게 시작했고 평소 어떤 고민을 하고 있으며 어떤 책들을 읽어 왔는지에 대해서 적은 에세이다. 익숙한 책이 많아서 반가웠다. 특히 장르작가들의 장르에 대한 생각은 정말 보기가 드물어서 그 파트가 제일 재미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