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스카틀리포카, 사토 기와무
멕시코인 어머니와 일본인 야쿠자 사이에서 태어난 코시모, 멕시코 카르텔의 보스였으나 패배하여 인도네시아로 도망쳐온 발미로, 천재 심장외과의였으나 범죄로 면허를 박탈 당한 스에나가. 이 세 사람을 중심으로 하는 군상극이자 범죄소설, 피카레스크로 저변에 아즈텍 신화를 바탕으로 하는 세계관이 직접 인용되고 마술적 사건에 가깝게 은유 되기도 한다.
제목의 테스카틀리포카는 맏이 신으로 다른 신화에 대입하면 오딘이나 제우스 같은 위치이나, 그에 딱 맞춰 대입되진 않는다. 특히나 인신공양과 인간의 심장을 좋아하는 점이 그렇다. 테스카틀리포카를 위한 의식은 연중 가장 큰 행사였고 건기에 행해졌으며 많은 사람들이 제물로 쓰였다고 한다. 이런 폭력성은 현대의 가치관과 많이 다르기 때문에 의구심을 낳는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건가? 테스카틀리포카는 신화 판타지도 역사 소설도 아니지만 그 모티프가 이 의문에서 시작된 것처럼 보인다. 사람이 어떻게 그럴 수 있나?
테스카틀리포카의 인물 대다수는 그런 의문에 쉽게 답하는듯하다. 비지니스라는 이유로 행해지는 수 많은 폭력들은 아즈텍 문명의 인신공양과 점차 유사해지더니 종극에는 완전히 일치한다. 그리고 작중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바다 건너 우리 일이 아니라며 외면 받고 있을 뿐, 실제로 일어나는 일들이다. 사람이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고 물을 것도 없이, 이미 지금도 그러고 있다.
때문에 인물 대부분은 폭력을 긍정하고 있다. 삶이 원래 그런 방식으로 작동하기 때문에, 약육강식은 당연한 거라고 말한다. 하지만 맹렬하게 달려가던 작품은 내재된 모순을 뒤늦게 발견한듯 회의감을 가진다. 그게 테스카틀리포카의 진면모인가? 테스카틀리포카를 위해 바치던 심장은 그냥 약한 사람이 아니라 가장 귀한 사람의 것이었다. 폭력을 긍정할 수는 있으나 폭력의 방향이 잘못된 건 아닌가.
이런 실험이 있다고 한다. A와 B에게 전기 자극을 주는데 그 강도를 서서히 올린다. 차이가 있다면 A의 강도는 연구자가, B의 강도는 스스로 올릴 수 있도록 한다. 이 차이 때문에 B는 훨씬 더 적은 스트레스를 받는다. 또 다른 이야기지만, 실제로 자해 행위는 스트레스를 큰 폭으로 낮춘다고 한다. 예고되지 않은 폭력은 공포가 되지만, 주체적으로 행사하는 자해는 심리적 안정을 가져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인신공양은 개인이 아닌 집단 단위에서의 자해처럼 보인다.
책은 두껍지만 속도감 있게 읽히고 자극적인 묘사와 사건, 인물로 가득하게 채워져있다. 개인적으로 두 배로 불리고 스케일을 좀더 키웠더라면 어땠을까하는 아쉬움이 있다. 브레이킹 배드에서 비슷한 종류의 아쉬움을 느꼈던 경험 같기도 하다. 그렇게 했어도 주제를 유지하는데는 문제가 없을 것 같은데. 물론 작가가 독자의 심신을 걱정해줘서 분량을 줄였을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