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SSS.GRIDMAN, 아메미야 아키라
히비키 유타는 어느날 잠에서 깨어 자신과 세계에 대한 기억을 모두 잊었다는 걸 알게 된다. 그리고 느닷없이 말을 걸어오는 고물 컴퓨터에서는 그리드맨이라는 존재가 있고, 세상은 안개에 뒤덮여 있으며, 머나먼 곳으로 거대한 괴수의 그림자가 보인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유타에게만 보이고 있다. 유타의 친구인 우츠미와 릿카는 유타를 이해할 수 없어하면서도 어쩔 수 없다는듯 돌봐준다. 그렇게 알 수 없는 미스터리가 하나도 해결되기 전에 마을 안으로 괴수가 침범해오고, 유타는 사명을 기억하라는 그리드맨의 목소리를 따라 고물 컴퓨터 안으로 뛰어들게 된다. 그러자 유타는 괴물과 맞설 힘을 갖춘 그리드맨 그 자체가 되어 괴물과 싸우게 된다.
상당히 불친절한 이야기가 연속되면서 미스터리가 강화되지만, 각 화에 괴수가 등장하고 그것을 그리드맨이 물리친다는 특촬물 서사에 방점을 놓으면서 위태롭게 전개되는 애니메이션이다. 하지만 인상적인 구성과 생동감 있는 캐릭터 연기가 그 위태로움을 어떻게든 끌고가고, 모든 캐릭터가 소개되는 전반부가 지나면서 이야기는 선형적이고 일반적인 형태에서 비선형적으로 나아간다. 여러모로 에반게리온을 떠올리게끔 하는 이야기로 주제의식 또한 비슷한 구석이 있다.
아무래도 미스터리가 워낙에 많은 작품이다보니 감상을 적을 때 그것의 답을 발설할 수 밖에 없다. 작품은 미스터리를 해결해가면서 세계의 진면모가 드러나는데, 이런 해답이 상당히 장르적으로 위험한 구석이 있다.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로 작품을 볼 사람이라면 이 감상은 여기까지만 읽는 것이 좋을 것이다.) 세계는 사실 괴수를 제조하는 의미심장한 인물이었던 신죠 아카네의 세계이며, 신죠 아카네는 이 세계에서 신과 다름 없는 지위를 가졌던 것이다. 때문에 일반적으로 마치 세계를 구해야만 하는 스케일의 이야기가 순간 볼품없어진다. 미스터리는 만족스러운 답이 나올 때 그 가치가 오르는데 이런 답이라면 실망스러운 구석도 없지 않다. 이런 세계는 도전적이라고까지 느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해답은 결말에 이르면 또 다른 면모를 보이게 된다. (이제 결말부에 대해 이야기할 것인데, 본 작품을 볼 것이라면 이쯤하고 관두는 것도 추천한다. 물론 이 작품은 모든 이야기를 알고 봐도 가치가 없어지는 종류의 작품은 아니다.) 중반부까지 세계는 아카네의 자그마한 마을, 즉 개인의 심리적인 상태를 반영한다고만 암시된다. 그래서 아카네의 세계는 작은 마을에 불과하고 모든 인간은 아카네가 설정한 가짜로 진짜 인간이 아니다. 주인공 유타를 비롯해서, 외부에서 온 그리드맨과 신세기 중학생, 일부 괴수를 제외하면 모두 가짜다. 하지만 그리드맨의 힘으로 알렉시스 케네브를 물리치자, 세계는 ‘진짜’가 된다. 안개 너머에 존재하지 않는 세계는 모두 채워진다. 사실 그리드맨이 알렉시스 케네브를 물리친 힘 자체가 바로 가짜(무한한 생명)을 물리칠 진짜(유한한 생명)인 것이다. 이 세계는 아주 직접적인 시뮬레이션 우주론을 반영하고 있다. 데이터에 불과한 시뮬레이션 속의 존재로 취급하지 않고 대체할 수 없는 진짜로 취급하자 시뮬레이션 속의 사이버스페이스는 언제든 대체할 수 있는 만들어낸 존재의 세계가 아니라 절대로 대체할 수 없는 내 친구의 세계, 진짜 세계가 되는 것이다. 이 작품은 세계는 세계관, 즉 세계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지에 따라 바뀐다고 주장한다. 작품의 결말은 시청자에게 있어 당연히 이 주장에 동의할 수 있을만큼의 감동을 준다.
작중 그리드맨은 단 한 번도 어리석은 말을 하지 않고 올곧은 존재로 나온다. 생동감이 넘치는 인물들의 말과 행동에 비하면 이질적이고, 제대로 된 답을 내지 못하는 점에서 어리석은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그리드맨의 말은 틀리지 않았으며, 언제나 진실을 포착하고 있었다. 마지막에 가서 그리드맨이 외치는 아동용 특촬물처럼 마치 교조적이고 기계적인 선언들은 울림이 있고 아름답기까지하다. 하나의 세계는 하나의 사람을 지탱하고 있고, 그리드맨의 싸움은 결과적으로 하나의 사람을 구해 하나의 세계를 구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