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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겨울의 끝

이제 인류는 암흑기를 벗어났다. 적도를 중심으로 걷히는 구름이 다시금 지구의 대류를 만들어내면서 기온은 날이 다르게 상승하고 있었다. 생물학자인 최교수는 ‘생물관’의 식물들을 밖으로 옮겨 심을 준비를 해야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생물관의 식물은 너무 많았기 때문에 회의가 필요했다. 옮겨 심기엔 너무 인력이 많이 소모될겁니다. 지금부터 옮기기 시작해도 기온이 돌아오는 때까지 모두 내놓을 수는 없습니다. 식물들을 옮기다가 많은 식물들이 상처를 입을겁니다. 누군가 가장 기발한 의견을 냈다. 그럼 생물관을 부수죠.

그러자 생물관의 지붕을 덜어내는 작업을 시작하는 날이 축제의 날로 예정되었다. 모두 축제 준비를 하느라 바빴다. 우리 탐사대도 예정되어있던 탐사를 축제 이후로 미루었다. 탐사대장인 박팀장은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방사능 오염 복구 기술을 발견하고, 영구 동결된 기술을 확인하는 인류에 많은 기원을 했던 우리 탐사대도 슬슬 일거리가 없어지겠군. 옛날엔 잘 나갔는데 말이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말이 옳았다. 눈이 녹기 시작하면 숨겨진 과거의 유물들을 굳이 ‘탐사’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눈에 파묻혀 있던 건물들이 드러나기 시작하면 발견되는 자료량은 특이점을 넘어 우리에게 불필요할만큼 늘어날 것이라는게 탐사대원들의 객관적 평가였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다른 방주와의 교류였다. 그렇게되면 찾아다니는 것 보단 주어진 정보를 활용하는 일이 더 중요해질 것이다. 탐사대원들은 그런 복잡한 심경에 빠져 뿔뿔이 흩어져 간만의 긴 휴식을 맛보았다.

선장이 나를 호출한 것은 축제가 다가오기 한 달 정도가 남을 무렵이었다. 기후학자인 이교수가 기온 상승률이 예상 보다 더 빨리 진행되고 있으므로 축제를 10일 정도 앞당겨야겠다는 발표에, 다들 환호성을 지른 학회가 끝난 직후였다.

선장은 정신감정결과가 사이코패스로 나온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점을 방주 선장 투표 때 장점으로 내세운 사람이기도 했다. 모두가 감정적으로 치우치는 이때, 자신과 같은 이성주의자가 이끌어야 한다는 주장은 그럴듯했다. 축제가 한껏 다가온 이 시점에서도 그는 축제의 흥분 보다 걱정을 하고 있었다.

그녀는 뜸을 들이지 않았다.

현군. 현군은 프림양과 친하지요?

예. 그렇습니다만. 프림을 발견해서 방주로 데려온 것도 접니다.

그래요. 방주는 가끔 조난자를 발견하기도 하죠. 하지만 가끔 조난자들은 그 배의 일원이 아니기에, 조심을 해야하기도 해요.

그런 이야기라면, 옛날 이야기 책에서나….

현군. 저는 비유법을 사용하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이 제 말과 의도를 헷갈리지 말았으면 하거든요.

그러면서 그녀는 서랍에서 서류뭉치를 꺼내 주었다.

이건 프림양과 관련된 비밀 경찰들 조사 자료에요. 의심 수준이라면 현군에게 이야기도 하지 않았겠죠. 법정에서 활용될 수 있는 확고한 증거이고, 그녀는 저 자료 만으로도 중벌을 면하기 어렵습니다.

…무슨 말씀이신지.

이런 이야깁니다. 현군. 그녀는 과거 옛인류가 종의 멸망을 막을 목적으로 콜드 슬립한 인류 중에 한명이고, 우리네 사고와는 크게 다릅니다. 그녀는 문명과 과학 기술에 큰 공포를 느끼죠. 그리고 우리가 해가 뜨는 볕으로 나가면 그 문명이, 그녀의 표현대로라면 파고드는 곰팡이처럼 지구를 다시금 좀먹을거라 생각해요.

선장님. 그녀에게 물론 그런 경향이 있는건 저도 인정합니다. 하지만….

예. 그녀는 그저 계획만 하고 있고, 우리 몰래, 현군의 ID카드로 불법적인 자료를 검색’만’ 할 뿐이죠. 그녀는 자신의 말과 달리 과학 기술에 상당히 해박하고 그중에서도 위험한 학문에 전문적입니다.

나는 그냥 입을 다물고 있기로 했다. 시장은 내게 몇 가지를 지시한 후, 되돌려보냈다. 마지막으로 선장이 한 말은 자신이 한 말과, 내가 한 말을 누구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했다. 갇혀진 방주 내의 혼란은 그 어떤 일 보다 위험했다. 누구도 알아서는 안된다고 했다. 나는 그 말만을 곱씹었다.

프림은 머리가 희고 눈이 붉어지는 알비노증이 있었다. 체구가 작고 피부는 혈관이 또렷하게 보일정도로 투명해서, 가끔 먼 곳을 바라보면 인간같지 않았다. 요정같았다. 그녀는 쇠를 무서워하고 나무를 사랑했다. 차가움을 싫어하고 온기를 좋아해, 사람들에게 부벼대기 좋아했다. 서로 말이 통하지 않던 당시에는 곤혹스러운 일이 많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서로에 대해서 알아가자, 프림은 여전히 부벼대기를 좋아했지만 나는 곤혹스럽지 않았다. 이제 우리는 서로 사랑했다.

일이 일어난 것은 축제 당일, 행사가 시작되기 직전이었다. 나는 탐사대원들과 함께 축제에 참석할 예정이었고, 프림은 씨앗 옮기기 행사의 준비 때문에 서로 떨어져 있게 되었다. 하지만 나는 탐사대원들에게 프림과 함께 있고 싶다 말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누구도 의아스럽게 생각하지 않았으므로, 선장의 말은 지켜졌다. 하지만 내가 이동한 곳은 씨앗 보관실이 아닌 방주 가장 깊숙한 곳에 위치한 핵 융합로였다.

그리고 프림은 그곳에 있었다.

가스 수류탄을 사용한건지 경비원들은 자리에 널부러져있고, 자신은 방독면을 착용하고 있었다. 공기 정화 시스템이 이미 가스를 환기 시키고 있었기에, 무리없이 프림의 이름을 부를 수 있었다.

내 부름에 프림이 돌아봤다.

그녀가 말했다. 방독면 안의 음성울림판이 그녀의 목소리를 탁하게 했다.

현? …너무 늦었어.

날 기다리고 있던건 아니고?

행사 시간을 기다리고 있던 것 뿐이야. 작업은 전부 다 끝났어. 현이 내 앞으로 오기전에 작업은 끝나. 단추 하나만 누르면 되거든.

실제로 현은 팔짱을 끼는 여유까지 보였다. 하지만 현은 그에 어울리지 않게 살짝 고개를 기울이며 말했다.

그런데 현이 어떻게 여기에 올 수 있었지? 아니. 알 거 같아. …아니. 모르겠어. 알고 있었다면 이렇게 늦게 나타날리 없을텐데. 선장이 실수한거야? 현이 실수한거야?

둘 다 실수하지 않았어. 프림. 왜 그러는거야?

말해도 모를거야. 하지만 겨울을 한 번 더 만들고나면 다들 이해해주겠지.

문명이 모든걸 파괴할거라고 생각해?

맞아. 일단 눈에 보이는 것들을 부수고 태우다가 마지막에 가서 몽땅 부서진 것을 보겠지. 그러면 이제 자기 몸에 기름을 붓는거야. 그게 인류의 역사지.

니가 하려는 짓이 자기몸에 기름을 끼얹는 짓인데도?

알아. 그러고나면 적어도 다른 것들은 남길 수 있거든.

후회할거야.

적어도 지금은 아냐. 그리고 후회할 뇌도 없어지겠지. 다행스럽게도 우라늄이 내 계산 보다 많이 남아 있었어. 방주 안에 있는 사람들은 다들 기뻐하다가 사라질거야. …아, 시간이 다 됐네.

나는 대답을 할 수 없었다. 프림은 날 바라보다가, 천천히, 모니터쪽으로 몸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나와 프림의 거리는 아주 멀었다.

내가 말했다.

날 사랑하지 않아?

…비겁하게.

프림은 중얼거리듯 말했다. 돌아보지는 않았다.

프림. 날 사랑하지 않아?

사랑해.

니가 사랑하는 나는, 니가 그러길 바라지 않아.

…그럼 사과할게. 미안해.

나는 이해했다. 사랑한다는 말로 멈출 수 있다면 그녀는 애초에 시도도 안했을 것이다. 그녀는 사랑보다 더 큰, 명백한 대의를 위해서 움직이고 있었다. 그럼 그 대의를 흔들어야할 것이다.

그녀의 등에 대고 내가 말했다.

벚꽃 향기 맡아보고 싶지 않아?

프림이 가장 좋아하는 것은 꽃이었다. 하지만 생물관에 피는 꽃은 그 가짓수가 너무 적었다. 연구소는 더 많은 생물 DNA를 보관하고 있었지만, 그 이상의 꽃이 가져올 생물관 내의 생태계 불균형에 대해 걱정했다. 그리고 곤충과 동물들이 옮기지 않은 꽃들은 그 발달 정도가 약해 금방 시들고 향도 나지 않았다. 수 십 세대에 걸쳐 그저 살아남기에 매진한 식물의 모습이었다. 겨울나기 동안 살아남기 위해. 봄을 기다리며. 그리고 이제 그 봄이 다가오고 있었다. 그러면 식물들은 진짜배기 꽃을 피울 것이다. 책에서만 읽던 향내가 진동하고 나비와 벌들이 노니는 진짜 생태계가 생겨날 것이다. 인공 조명이 아닌 따사로운 햇볕 아래에서.

프림은 나를 돌아보더니 방독면을 벗었다. 그녀는 이제 제 목소리로 말했다.

응. 현이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건지 알겠어. 현이 그저 어떤 의무감 때문에 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나를 위해서 그렇게 말하는 거라고 느껴져. 고마워. 하지만, 너무 늦었어. 안녕.

프림은 그와 동시에 몸을 돌렸고, 나는 힘껏 뛰쳐나갔다. 정신을 차렸을 때 목이 쉬었으므로, 그녀의 이름이나 부정의 말을 크게 외쳤던 것 같다. 내가 보고 있던 것은 그녀의 손가락 끝이 아닌, 그녀 등 뒤에 꽂힌 붉은 레이져 포인트였다.

행사는 성공적으로 마무리 되었고, 방주의 한 축을 허무는 작업은 계속 진행되고 있었다. 우리 탐사대는 방주의 생물관 주변 지대에 물길을 틀 수 있는 강이 있는지 찾아다녔다. 예상과 달리 탐사대의 쓸모는 당분간 남아 있을듯 싶었다.

프림은 한 달간 병원에서 치료를 받은 뒤 감옥에 수감되었다. 프림의 여린 몸은 고무 탄환에도 쉽게 상했던 것이다.

공판은 방주의 혼란을 막기 위한 명목으로 비밀스럽게 행해졌다. 변호사 선임에는 내 전재산을 털어넣었다. 변호사는 의외로 희망적 관측을 보여주었다. 선장은 모든 근거 자료를 가지고 있음에도 프림을 방치했으므로, 그쪽을 파고 들자는 것이다.

선장을 만난 것은 그 쯤이었다. 나는 두 번의 탐사를 끝내고 세번째 탐사를 준비하고 프림을 위한 여러가지 공판 준비로 바쁜 상황이었다. 별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다만 자신은 터부시 되는 핵 분야를 생각하고 있으며, 거기에 프림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선장답지 않게 길게 말했다. 선장은 말미에 프림을 한 번 찾아가보란 이야기를 했다.

감옥은 이례적으로 수감자들에게 ‘야외’ 면회를 허용하고 있었다. 선장의 특별 지시였다.

나는 프림의 손을 붙잡고 제복을 입은 교도관들을 지나쳤다. 지시된 방향으로 걸어가자 생물관이 나타났다. 빈틈없이 심겨진 나무들에는 이미 꽃이 만발하고 있었다. 우리는 그늘진 방주의 경계를 다시 또 넘었다. 아직 치우지 못한 벽의 부서진 잔해를 조심스럽게 넘자, 그곳에 진짜 빛이 있었다.

바람이 불고 아니 부는 불규칙한 바람결에 먼지 같은 것들이 흩날렸다. 꽃잎이었다. 분홍색의 꽃잎이 눈을 어지럽게 만들었다. 듬성하게 심겨진 꽃잎들 사이로 눈부신 빛이 쏟아졌다. 하늘은 푸른색이었다. 그때였다. 집중하고 있던 촉각과 시각 사이로 무언가 비집고 들어왔다. 생경한 향내였다. 우리는 그 공격을 우두커니, 맞잡은 두 손을 부여잡고서 감내했다. 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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