귤
“귤 껍질은 한 번에 까는 게 좋아.”
연의 뜬금 없는 말에 슬쩍 고갤 들어본다.
“하나의 물질엔 하나의 영혼이 깃드는 법이니까. 너처럼 귤 껍찔을 나눠서 깐다면 귤 껍질의 영혼도 갈갈이 찢기는 거지.”
어디서부터 태클을 걸어야할지 모르겠군. 나는 귤알을 하나씩 씹으며 생각했다.
연은 한 손으로 귤을 감싸고 천천히 귤을 까기 시작한다. 꼭지 부근에 엄지 손톱을 밀어넣어 껍질의 처음을 들어올려 내고, 그다음 엄지로 남은 껍질을 밀어내듯 벗긴다. 귤 껍질은 껌 포장지 처럼 벗겨졌다. 탁자 한 쪽엔 같은 모양으로 벗겨진 귤 껍질들이 가득 놓여있다.
손에 남은 귤알을 털어넣고 내가 말했다.
“그럼 귤알도 씹지 않고 한번에 삼키는 게 좋겠네?”
“그건 아니지.”
“왜에?”
“잘 봐. 귤알 속에 알알의 귤낱알이 들어있잖아. 얘네들은 처음부터 나눠져 있으니까 씹어도 상관없어. 재인인 머리가 나쁘구나.”
연이 생글 웃으며 말했다. 귤이 달다.
나는 귤더미에서 귤을 하나 집어들고 연을 따라했다. 귤 껍질은 생각보다 더 여렸다. 노력했지만 귤 껍질은 끝에 가서 두 조각이 되었다.
연이 말했다.
“흐응. 처음엔 누구나 실수하는거지.”
내가 말했다.
“그럼 사람은 어때?”
“응?”
“손톱이나 머리카락은 길면 자르잖아. 손톱이나 머리카락에도 영혼이 있어?”
“있어. 있겠지. 그치만 걔들은 어디론가 가고 싶어서 그렇게 자라는 거잖아. 잘라도 괜찮아. 잘라주는 게 좋아.”
완전 자기 마음대로네.
“도마뱀 꼬리는?”
“도마뱀이 선물하는 영혼이지”
“번데기 껍질은?”
“그 자리에 남고 싶은 나비의 영혼.”
“어머니와 아기는?”
“으응?”
“처음엔 한 몸이잖아. 아기가 태어나면 의사는 탯줄을 자르지.”
“글쎄. 아기는 처음부터 어머니와 다른 영혼인걸.”
그렇단 말이지.
“낡아서 부서지는 것들은?”
“혼자선 지쳐서그래.”
“구름에서 떨어지는 눈송이는?”
“땅이 그리워서.”
“내뱉는 숨결은?”
“돌아오니까 괜찮아.”
“차가운 것을 잡을 때 빠져나가는 온기는?”
“온정이라고 해.”
“우주의 팽창은?”
“영원하진 않겠지.”
“지금 하는 말들은?”
선듯 대답하려던 연의 입이 주저한다. 나는 미소를 지었다.
나는 말을 이었다.
“대화는? 정말 뜻 없는 영혼의 분절 아니야? 뱉었다 덧 없이 사라지는 것 아니야? 우리는 우리의 영혼을 위해서 입술 꾹 닫고 살아야 하는 거 아니야?”
“아니야. 말은, 영혼이겠지.”
“뭐?”
“말은 영혼이니까, 말한다는 건 영혼을 건네는 것이잖아. 그러니 대화한다는 건 영혼을 나누는 일 아니겠니. 입으로 따르고 귀로 받아서 서로의 균형을 맞추는 거 아닐까. 그 증거로 우리 영혼은 닮아가고 있잖아.”
나는 연과 눈을 마주하다. 어깨를 으쓱해보였다. 시덥잖은 이야기네.
연은 뭐가 좋은지 저 혼자 킥킥 웃었다. 나는 귤을 하나 더 집어들었다. 달콤한 귤. 그리고 연의 손가락을 떠올리며 천천히 귤을 까기 시작한다. 이제 귤알과 귤 껍질은 완연히 나누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