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계와 번역기
“박사님, 뭐하세요?”
“목소리를 듣고 있다네.”
“목소리라 하면, 목에서 나는 소리가 아닐지요.”
“그렇지.”
“하지만 거긴 버스 바닥이잖아요.”
“맞는 말이야.”
“청진기를 대고 계시긴 하지만.”
“또 양은…”
박사님은 입고 있던 실험의를 툭툭 털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편협한 지식 체계에 갇혀있군.”
“또 시작인가.”
“마음의 소리가 나온 것 같은데.”
나는 무슨 말이냐는듯 멀뚱하게 박사님을 바라보았다.
박사님은 묘한 표정으로 날 보다가 입을 열었다.
“…아무튼, 만물-유기학적인 관점에서 의지 있는 소리를 내는 모든 기관은 ‘목’이라고 할 수 있다네.”
“만물-유기학이라고요? 가이아 이론이에요?”
“비슷하지. 세상은 사실 무기물과 유기물로 나뉘어진 것이 아니라, 모두 상호작용하는 유기물이란 말이야. 실제로 그렇지. 그리고 유기물들은 소리를 내는데, 그 말은 무기물도 소리를 낼 수 있단 말이고. 그게 목이지. 그리고 그 목을 통해서 튀어나오는 소리는 결국 ‘말’이라고 할 수 있겠지.”
“결국 버스가 말을 한다고 말씀하고 싶은 거죠?”
“그렇다네.”
나는 박사님과 나를 멀뚱멀뚱 바라보는 사람들의 눈치를 살짝 살폈다.
마침 버스가 다음 정거장에 설 것이란 안내가 나왔다.
“그럼 좋은 시간 보내세요. 저 이번 정류장에서 내려요.”
당연히 박사님은 날 붙잡았다.
“아니 어딜 가나. 양이 호텔 예약을 다했는데. 내 서류 정리는 누가 도와주고.”
“죄송하지만 박사님의 품격은 모르겠지만 제 품격은 좀 챙겨야겠는데요.”
“맡은 바 소임을 하는 사람은 멋지지 않은가? 이건 과학이라네. 나는 과학자고.”
“바닥에 청진기 대면서 히죽히죽 웃어대는 사람은 그냥 이상한처럼 보인다는 건 유감이긴한데요.”
“아, 그래. 내 설명이 부족했군. 이리 앉아보게.”
박사님은 다시 바닥에 앉아서 내게 손짓했다.
나는 깊은 고민에 빠졌지만 버스는 정거장에 서지 앉아서 내릴 타이밍을 놓쳤다.
나는 자리에 앉았다.
박사님이 말했다.
“이건 분명 평범한 청진기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아니라네.”
“아닌가요.”
“만물-유기학에 근거한 번역기지.”
“번역기.”
“그렇다네. 이걸 착용하고 버스 바닥에 대어보게.”
나는 미심쩍어하면서 그 말대로했다.
어차피 바닥에 무릎을 대고 앉아서 무릎을 더럽혔으니.
놀랍게도 번역기라고 불리는 청진기를 착용하고 그 끝을 바닥에 대자 ‘목소리’가 들려왔다.
“…또 다시 힘겨워지는 길을 가고 있다. 이곳의 커브는 짧지만 오래 돈다. 아. 바닥에 날카로운 돌조각. 하지만 펑크는 나지 않음. 고난한 노동. 또 배기구가 막혀온다. 지치고 힘들도다. 하지만 나는 주체를 잃어버린 자. 마구에 매달린 말. 채찍에 후려쳐지는 자. 억겁의 노동 이후 나를 기다리는 것은…”
나는 눈을 들어 박사님과 눈을 마주쳤다.
“이게 뭐죠?”
“버스의 목소리라네. 재밌지 않나?”
“재밌긴한데… 아니, 재밌나? 제가 버스를 타고 있다는 사실이 죄스러워지기 시작했는데요. 그보다 이거 누가 녹음한거죠?”
“녹음이 아니라 실시간 번역이라네. 버스의 떨림이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번역되고 있는 것이지. 물론 이 기술을 만들어내는데 언제나처럼 어려웠지만 결국 그 고비를 넘어설 수 있었지. …아, 그리고 버스가 하는 말은 신경쓰지 말게. 그냥 버스잖은가?”
하지만 성찰적인 버스라면 느낌이 좀 다른데.
“음, 그럼 버스 말고도 다른… 무기물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나요?”
“글쎄. 일단 ‘목’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데.”
“이걸 들어보죠.”
나는 유튜브를 켜서 AK-47 총소리를 틀고 거기 번역기를 가져다댔다.
“…빛나는 섬광, 환희의 빛, 대기가 나를 불태우노니, 나는 분열된 자아의 시뮬라시옹…”
간단히 감상을 말했다.
“무기물은 죄다 음유시인인가요?”
“비유적일 수 밖에 없지. 소리가 짧으니 함축적인 언어로 말할 수 밖에 없는 거야.”
“…라고 박시님이 생각하셨겠죠.”
“양의 말은, 흠.”
박사님은 다소 골똘히 생각하더니 말했다.
“이 목소리들이 만물-유기학에 기반하는 것이 아니라, 내 의지가 반영된 결과라는 건가?”
“직접 번역기를 만드셨으니 당연한 것 아니겠어요? 번역기를 만드실 때 이런저런 소리들을 해석하도록 만드셨을 거잖아요. 데이터베이스도 있겠죠?”
박사님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말했다.
“그럼 이건 어떨까?”
박사님은 스마트폰으로 무언가를 검색했다.
“이게 뭐죠?”
“노이즈야. TV가 아무런 수신을 받지 못할 때 지지직 나는 소리.”
“그건 아는데요.”
“하지만 이건 아무 소리도 듣지 못하는 게 아니야. TV는 사실 우주의 소리를 수신하는 중이지. 그게 우리에게 지지직 하고 들릴 뿐이고. 이건 실험을 위해서 내가 데이터베이스에 넣어두지 않은 소리라네. 같이 들어보지.”
나와 박사님은 청진기, 아니 번역기를 서로 한 귀에 낀 다음 끝을 스마트폰에 가져다댔다.
“…오라, 홀로여 슬픈 이들이여. 여기 나는 있다. 저기 어두운 그늘에 서로가 있다. 비록 우리가 너무 멀리 떨어져 있다 하여도…”
나는 화들짝 놀라 자리에 일어났고 번역기가 귀에서 빠졌다.
“농담이죠?”
“글쎄, 양과 내가 대단한 발견을 한 것 같은데.”
“완전 절 놀리고 계신 것 같은데.”
“외계의 존재가 있다는 게 놀라운 일은 아니지 않나?”
“음, 이게 농담인지 아닌지 확인해야겠어요.”
“이걸로 부족한가?”
“당연하죠. 번역기 이리 주세요.”
“그러지. 그 다음은?”
“제대로 버스 자리에 앉으세요.”
박사님은 엉거주춤 앉았다. 나는 그 뒤에 앉았다.
“그 다음은?”
“앞을 보고 계세요. 숨을 크게 들이쉬면서요.”
박사님은 그렇게 했다.
나는 번역기를 끼고 박사님의 등에 끝을 가져다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