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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눈사람 만들려고요

길을 걷던 중이었다. 편의점에 들리기 위해 집 나와 스무 걸음 정도 걸었을때, 길을 얼마 나서지 않아서 걸음을 멈추고 말았다. 멈출 수 밖에 없었다. 골목을 가득 채우는 커다란 눈덩이가 굴러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행히도 눈덩이는 느린 속도였기 때문에 골목에 주차된 자동차 사이로 몸을 피할 수 있었다.

대략 직경 일 점 오 미터, 내 키보다 커보이는 눈덩이. 어디서부터 저걸 굴려온걸까? 그러고보면 간밤에 눈이 많이 내렸었고, 집에서 나오기 전 까지만 해도 싸릿눈이 흩날렸다. 나는 눈이 그치는 것을 보고 집을 나선 참이었다.

눈덩이가 내 옆을 지나가길 기다렸다. 일단 저 눈덩이가 지나가야 내가 편의점에 갈 수 있기 대문이다. 커다란 눈덩이는 굴리기도 힘든지 조금씩, 천천히 다가왔다. 나는 인내를 가지면서 누가 저 눈덩이를 굴리고 있을지 생각해봤다.

생각해보면 간밤에 쌓인 눈 때문에 통행이 힘드니 그걸 치우는 공무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갑작스런 폭설. 부족한 설비. 늘어나는 민원. 결국 눈치우는 기계(이름은 모른다)가 없거나, 뿌리는 가루(염 어쩌곤데 역시 모르겠다)도 부족하고, 그 흔한 모래 조차 없어서, 눈덩이를 굴려서 눈을 치운다는 무식한 방법을 택한건 아닐까.

아니면 철없는 꼬맹이들 짓 일지도 몰랐다. 이 동네에는 와아 하면서 함성을 지르며 골목 이곳저곳을 쏘 다니는 꼬마들이 다수 있었고, 어마어마한 행동을 서슴치않고 행하는 무시무시한 녀석들이었다. 대표적인 예로 비비탄 총으로 총싸움을 하면서 자기가 스나이퍼랍시고 전봇대 꼭대기에 오른 경우를 들 수 있다. 결국 못내려와서 일일구 불렀었지.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동안 눈덩이가 옆으로 지나치고 있었다. 그리고 예상외의 전개에 깜짝 놀랐다.

눈덩이를 굴리는건 어떤 아가씨였다. 옷은 세련되게 입었지만 외모는 앳되 보였다.

당황해서 길이 났는데도 선듯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저 아가씬 학교도 안 가고 왜 저러고 있는거지? 저거 굴리면 누가 돈 주나? 가서 물어볼까? 우물쭈물 하고 있을때 아가씨와 눈이 마주쳤다. “안녕하세요?”

머리카락 몇 가닥이 흐른 땀 때문에 착 달라붙어 있었고, 숨을 쉴 때 마다 흰 김이 피었다.

“아, 네. 안녕하세요?”

떨떠름하게 되받았다. 아가씨는 생긋 웃더니 말했다.

“안 바쁘시면 좀 도와주실래요?”

뭘 돕는단 말인가?

나는 눈짓으로 눈덩이를 의문가득한 눈길로 가리켰고, 아가씨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당황스러웠다.

눈덩일 굴리는건 민폐다. 통행에 방해가 된다. 특히나 이렇게 커다란 눈덩이는 더 그렇다. 아니. 보통 민폐가 아니지. 이 눈덩이가 구르는 동안 사람도 못다니고 차도 못다닌다. 이 골목 사이론 차가 잘 다니지 않는다는게 다행스럽긴 하지만.

또 문제는 요 커다란 눈덩이를 굴리는게, 분명 어린이날을 즐길 나이는 물론 질풍노도의 시기까지 다 지난 청년이라는 것이다. 다 큰 남자여자 둘이서 나란히 눈덩이 굴리고 있으면 사람들이 뭐라그러겠냔 말이다.

이러한 생각들 때문에 나는 또 다시 우물쭈물 거렸다. 생각하는게 있다고 그걸 입으로 다 뱉을 수야 없다.

아가씨는 조금 난처해진 표정을 지었다. “제가 괜히 물었나봐요. 괜찮아요. 저 혼자 할 수 있으니까.” 그러곤 다시 눈덩일 굴리기 시작했다. 나는 한숨을 쉬었다.

내가 말했다.

“잠깐만요.”

“네?”

아가씬 뒤돌아봤다.

“도와드릴께요. 어디까지 가세요?”

“별로 안 멀어요. 이쪽 앞에 초등학교 있잖아요. 거기 운동장이요.”

정말 별로 멀지 않은 거리였다. 옆에서 눈덩이를 같이 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스무 걸음 정도 걷고서 후회했다. 뭔놈의 눈덩이가 이렇게 무거운지 한번 밀때 마다 묵직함이 손바닥에서 느껴졌다. 이런 놈을 혼자서 굴리고 있었습니까?

새삼 대단하다는 눈길로 옆 자리의 아가씨를 바라봤다.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뭐가 그렇게 좋은지 생글생글이었다. 그렇다보니 나 또한 힘들다는 기색을 낼수가 없었다. 같이 땀을 뻘뻘 흘리면서 눈덩일 밀었다.

초등학교 까지는 큰 도로가 나오지도 않고, 골목을 몇 번만 꺾으면 되는 거리였는데도 반도 채 가지 못해서 쓰러질 것 같았다. 최근 몇 개월, 아니 최근 몇 년간의 노동 중에 제일 힘든 일이었다. 굴러가면서 계속 몸을 키운 눈덩이는 비대해질대로 비대해져서 한번 굴릴때 마다 용을 써야했다.

그리고 시련이 왔다. 사실은 본래부터 알고는 있었지만 몸을 쓰느라 머리로 깨닫지 못한 사실이었다. 아마 아가씨가 몰랐던건 이 동네 지리에 익숙치 못했던 탓인거 같고.

우리는 대략 사십 오도각의 오르막길에서 눈덩일 멈추고 말았다.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위해선 이 길을 올라야했다. 지금의 두 사람으로는 절대 무리였다.

내가 말했다.

“오르막길 있다는걸, 하, 깜빡했네요.”

“후아, 그러게요.”

둘 다 숨이 차서는 대화가 이어지질 않았다. 우리는 눈덩이에 기대 숨을 골랐다.

잠시 땀을 닦아내고 있는데 아가씨가 말했다.

“죄송해요. 여기까지 왔는데.”

“아니에요. 뭘.”

잠시 정적. 내가 먼저 뭐라고 말을 꺼내려는데, 아가씨가 다시 말했다.

“눈사람을 만들 수 있는 어른이 되고 싶었어요.”

“네?”

“눈사람이요. 이거 눈사람 몸통하려고 굴려온거에요.”

“정말요? 왜요?”

“그게…… 그, 어릴 때는 눈오면 마냥 좋잖아요. 친구들이랑 눈사람도 만들고, 눈싸움도 하고. 근데 어느 순간에 보면 눈 오면 걱정부터 하잖아요. 길 미끄럽겠구나. 눈 녹으면 질척질척하겠구나. 하고요.”

“그렇죠.”

“처음에, 어릴 때는 몰랐죠. 어른들이 그런 소리하면. 눈이 오는데 걱정할게 뭐 있어요. 어른들은 왜 눈오면 왜 안나가 노는지 몰라. 이런 생각이나 하고. 근데 뭐랄까. 그런거 있잖아요. 어릴때는 딱 넘어지면 먼저 아프다는 생각부터 하는데 어느 순간 부터는 아프기보다는 막 쪽팔리고 이러잖아요.”

“네에.”

“아, 이야길 어떻게 꺼냈더라.”

“눈사람을 만들 수 있는 어른이요.”

“참. 고마워요. 그러니까, 제가 어른이 됬거든요? 만 십 구세 이상이면 어른이잖아요. 생일도 지나고요. 그런데 눈사람을 만들고 싶다는 걸 까맣게 잊고 있었어요. 까맣게 잊고 있다가…… 겨울이 되고 눈이 자꾸 내리잖아요. 그제야 생각이 난거죠. 어떻게하지, 자꾸 생각하다가 자꾸 미루다가는 절대로 못만들겠구나 싶어서 오전 수업 빼먹을거 결심하고 눈덩이 뭉쳐서 굴리기 시작했어요.”

나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완전히는 아니더라도 그 마음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거 같았다. 이야길 듣고보니 나도 눈사람을 완성시키고픈 마음이 들었다. 충분히 쉬었으니까 다시 시도하면 올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자신감도 생겼다.

그런데 갑자기 “빠아아앙-” 하는 경적 소리가 들렸다. 허겁지겁 돌아보니 승용차 한대가 서 있었다. 그제야 문득 깨달은 사실은 지금 눈덩이가 서 있는 곳이 골목길이긴 해도 나름대로 네거리라는 것, 큰 길로 빠져나가는 길목이라 차량통행이 잦다는 것이었다.

내가 말했다.

“일단 뒤로 굴려서 딴 길로 빼놓을까요?”

아가씨는 당황한듯 말했다. “예? 아, 네.”

하지만 문제는 그 뿐만이 아니었다. 네거리라는건 길이 네 방향이라는거고, 어디서든 차가 등장할 수 있다는 것이다. 금새 우리는 빵빵 거리는 자동차, “길 가운데서 뭐하는거야!” 하는 택시기사의 고함, “시끄러워서 잠을 못자겠네!” 하는 동네 아저씨(해뜬지가 언젠데?)의 고함에 갇혀버렸다.

탈출구는 초등학교 뿐이었다.

무안해진 우리는 얼굴이 벌게져서는 우왕자왕했다. 구경꾼이 많아졌다. 문방구 할머니, 목욕갔다 오는 아줌마들, 농땡이 치는 고딩, 자다깬 담너머 아저씨, 약수터 다녀오는 할아버지…… 이래서 눈덩이 같은거 밀고 싶지 않았는데! 게다가 이렇게 커다란건! 방금 전의 결심이 무색하게 후회가 되었다.

나는 아가씨와 눈을 마주치곤 고개를 끄덕였다. 이렇게 된 이상 우리 둘이 눈덩이를 밀어올리는 수 밖에 없다. 아니, 하다 못해 길에서 벗어나게만 붙잡고 있어도.

젖 먹던 힘까지 끌어올려 눈덩이를 밀어올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힘이 전혀 나지 않았다. 간만의 노동으로 되려 몸이 풀려서 그런걸까. 아니면 엄마 말대로 형이 젖을 다 먹어버려서 나는 모유를 못먹고 자랐기 때문일까.

나 뿐만 아니라 아가씨도 얼굴을 오만상 찡그리며 눈덩이에 붙어 있었다. 온 몸이 눈덩이에 달라 붙어서는 끙끙댄다. 이제는 용을 쓰는게 아니라 악으로 겨우 버티고 있었다. 차가 지나갈때 까지만 기다리자. 아니다. 그냥 이 눈덩일 부셔버리자. 차라리 그게 낫다. 정 눈사람 만들고 싶으면 그냥 작게 만들어도 될 거 아냐. 거의 포기에 가까운 마음이었다.

그리고 눈덩이가 오르막을 오르기 시작했다. 깜짝 놀랐다. 손에 거의 힘이 들어가지 않았기 때문에 잠시 멈춰선 사이 눈덩이는 손에서 벗어나 저절로 오르막을 올랐다. 어떤가 싶어 돌아봤다.

그제야 어떻게 된 일인지 알 수 있었다. 아가씨 옆으로 택시 기사 아저씨가 같이 눈을 밀고 있었다. 내 옆으로도 자가용에 타고 있던 아저씨가 눈을 밀고 있었다. 도와주는건가? 힘이 났다. 다시 눈덩이를 밀었다.

아가씨가 말했다.

“아, 고맙습니다.”

“이게 올라가야 우리 차도 빠지지.”

눈덩이는 또 가벼워졌다. 농땡이 부리던 고딩이었다. 안면이 있다.

“아저씨, 끄응, 도대체 이 눈덩일 왜 밀고 있는거야?”

“헉, 눈사람 만들려고 그런다, 왜?”

내가 대꾸하니 괜히 차에 타고 있던 아저씨 한 분이 “허, 참.” 하고 웃었다.

눈덩이는 다시 가벼워졌다. 타월과 로션, 때수건이 든 바구니를 어딘가 두고 온 아줌마들이었다.

“학생들은 도대체 이걸 왜 민데?”

택시 기사 아저씨가 우리 대신 대꾸했다.

“후우, 눈사람 만든답디다.”

“허, 참. 아침 부터 뭔 난리래.”

그리곤 런닝구 차림의 동네 아저씨도, 아줌마들 바구니 옆에 약수통 두고 온 할아버지도, 읏챠읏챠 소리를 내며 눈덩이를 굴리기 시작했다. 오르막길을 거의 오를 무렵엔 초등학교 운동장도 소란스러워졌다. 멀리서 눈덩이를 본 저학년 아이들이 교실을 빠져나와 눈덩이를 둘러싼 것이다. 동네 악동들도 여럿 있었는데 자기네들도 밀어보겠다고 붙기 시작했다. 덕분에 가장 힘들어야할 오르막길 끄트머리에서 처음 밀어올릴때 흘렀던 땀이 식어버렸다.

초등학교는 높은 곳에 있어서 바람이 술술 불었다. 춥기보단 시원했다. 6년이나 다녔는데도 졸업하고 들릴 일이 없었던 초등학교에 생경한 느낌도 있었다.

누군가 어깨를 두드리기에 올려다보니 문방구 할머니가 아이스크림 하나를 내밀고 있었다.

“이렇게 주셔도 되요?”

“겨울이라 팔리지도 않는데 뭘.”

“어이쿠, 고맙습니다.”

잠시 커다란 눈덩이를 바라봤다. 역시 저걸론 허전하다. 머리가 있어야한다. 눈 앞에 쌓인 눈을 뭉쳐서 주먹만하게 만들고, 발로 이리저리 굴려서 수박만하게 만들고, 손으로 살살살 굴리기 시작한다. 또 봤는지 “저기서 머리만든다!” 하고 꼬맹이들이 외쳐선 자기네가 굴리겠다고 운동장을 뛰어다니기 시작했다.

머리는 금새 만들어졌고, 학교 기물을 빌려서 커다란 빗자루 두개로 팔을 삼고, 얼굴은 나무 판자를 꽂아 만들었다. 대략 높이 사미터에 이르는 초거대 눈사람이었다.

“햐, 장관이네. 장관.”

“진짜 멋있네. 신문 나는거 아닌가 몰라.”

“올 겨울 내내 눈사람 보게 생겼네.”

사람들은 저마다 한마디씩 하면서 쭈쭈바를 빨았다. 나는 감동에 젖은 눈빛으로 눈사람을 보고 있는 아가씨 옆으로 다가갔다.

사실 궁금한 게 있었다.

“근데 왜 이렇게 크게 만든거에요? 꼭 이렇게 크게 만들 필요가 있나?”

아가씨가 팔을 펼쳐들며 말했다.

“이때까지 눈사람 못만든 거, 빚 갚는다 생각하고 크게 만들고 싶었어요.”

활짝 웃는 얼굴이 예뻐서 나도 마주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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