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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도망친 머리

#장르_코드_전력_시체

경찰에게서 연락을 받은 건 나였다.

“야미, 서장님이 자문관을 찾고 있어.”

“거절해.”

“무슨 사건인지 듣지도 않았잖아?”

“높은 확률로 루비의 연구원일 거야. 아마 실종되거나 납치 되었겠지. 아마 경쟁업체에서 스카웃하기 위해서일 거야.”

“스카웃하기 위해서 납치를 한다고?”

내가 되묻자, 벨벳 소파 위에서 나체로 와인을 마시던 야미는 어깨를 으쓱했다.

“넌 정말 하나하나 다 알려줘야 하는구나.”

“알려줘.”

“연구원들은 기업에 유전적으로 종속되어 있는 경우가 흔해. 21세기처럼 돈이나 유흥으로 꼬시려고 들어도 쓸모가 없지. 기업 마크, 아니 사명만 들어도 애사심으로 심장이 뛰고 최고경영자를 보면 저절로 머리가 숙여질걸. 그러니 경쟁 기업에서 세뇌를 하거나 호르몬 요법으로 강제적인 행동수정을 해서 자기 기업에 들어오라고 ‘설득’해야 되는 거야. 설득이 끝나면 납치 된 게 아니라 제 발로 걸어나온 거라고 하겠지.”

“…그래도 되는 거야?”

“안 될게 뭐야? 법 체계가 존속하기 위해선 자유의지가 존재한다고 인정해야 해. 외부의 기술적인 수단으로 뇌를 조물딱거린다고 해서 자유의지가 ‘사라졌다’고 말할 수 없어. 아무튼… 연구원에겐 별 일은 없을 거야. 어느 회사라고 해도 절대적인 체계인 노동법을 어길 수는 테니, 그 연구원에겐 아마 별 일 없을 걸. 더 좋은 처우를 받을지도 모르지.”

“그런데 그건 어떻게 안 거야?”

“루비 자회사인 루비랩의 주가가 흔들리고 있어. 이번에 즉시 동결 기술을 통한 신제품을 준비중이고 내부 평가가 괜찮았는데도 말이야. 어딘가에서 문제가 생겼단 말이고, 제일 흔한 건 연구원 스카웃이지. 이 정보는 어디서 샜을 거야.”

나는 야미를 잠깐 본 다음 다시 경찰과 이야기했다.

야미의 이야기는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루비 연구원은 맞췄어.”

“그런데?”

“납치 된 게 아니라, 살해 당했다고 해.”

“납치가 아니라 살해. 흥미로운걸. 살인은 범법인데.”

납치도 범법이지만.

“어쩔거야?”

“당장 간다고 전해.”

─

“보시다시피, 현장은 밀실입니다. 그리고 피해자는…”

“목이 잘렸군. 머리는?”

“아직 못찾았습니다.”

“그래?”

나는 야미의 눈이 빛나는 걸 알아차렸다.

이미 진상을 알아챈 것 같았다.

나로서는 어떻게 된 일인지 알 수 없었지만.

연구원은 자신의 개인연구실에서 목이 잘린 채 발견되었다.

42세 남성으로 루비에서 오래 일했고, 듣자하니 루비에 높은 수익을 내는 상품 몇 가지의 특허를 만들어낸 장본인이었다.

“똑똑한 사람이야. 이번 동결 기술은 기존과 달리 부동액을 삽입하거나 체내 수분을 뽑아내는 방식이 아니라더군. 그래서 사용 즉시 동결하는데다 소형화도 가능했다고 해.”

“중요한 이야기야?”

아무튼 연구원은 루비에게 있어 아주 귀중한 자산이었고, 때문에 루비 측은 비싼 비용을 지불해서라도 사건을 해결하고 싶어했다. 그래서 루비의 로비로 경찰 수뇌부 AI들이 움직였고 자문관 야미까지 연락이 닿은 것이다.야미의 시간을 빌리는 대가는 아주 비싸다.

“저길 봐.”

야미는 시체를 가리켰다.

“목이 잘렸는데 몸은 가만히 앉아있군. 어떤 것 같아?”

“저항이 없었어. 단분자 칼날일까?”

“어떤 형태일지 추측하긴 쉽지 않아. 의자의 목받침은 멀쩡하잖아?”

“와이어로 조르면?”

“쉽지 않아. 뒤에서나 앞에서나 절단면이 지저분해져. 봐봐. 거의 직각 형태야. 단두대로 내려친 것 같군.”

“하지만 피해자가 옮겨진 흔적은 없어.”

“맞아. 이 자리에서 목이 잘렸지.”

앙상한 뼈대로 인간의 실루엣을 그리는 로봇 경찰들이 우리 주변에서 증거가 될만한 것들을 분자 단위로 스캔하고 있었다.

별다른 소용이 없다는 걸 알지만 소리 죽여 말했다.

“답을 알아냈지?”

“글쎄. 범행 방법 말고도 미스터리는 있어. 이걸 봐.”

야미는 걸어가서 연구실 입구를 가리켰다.

“센서. 하지만 처음 보는 형태인데.”

“맞아. 뇌파 감지기야. 연구자는 특정 보안 이미지를 머리에 떠올려야 문을 열 수 있지. 루비는 보안 때문에 들어갈 때 말고도 나갈 때도 보안을 절차를 거쳐야 해. 이 작은 방에서 나가는 것 조차도. 로봇, 이곳을 찍는 영상은 없나?”

“역시나 루비의 사내 보안 정책 때문에 없습니다.”

“출입 기록은?”

“문이 열렸단 기록이 있지만…”

“연구자는 목이 잘렸지.”

나는 “앗” 하고 목소리를 냈다가 후회했다.

야미가 웃었다.

“머리가 잘려도 몇 초 동안은 살아있다고 생각했지? 그래서 범인이 목을 잘랐을 거라고? 하지만 피해자가 자신의 목을 자른 범인을 내보내주기 위해 보안 이미지를 머릿속에 떠올렸을리가 없잖아.”

“그럼 범인은 어떻게 방에서 빠져나간 거야? 머리는 왜 자르고?”

야미는 손을 내저었다.

“정말 하나하나 다 알려줘야 하는구나.”

“알려줘.”

야미는 단말기로 시계를 슬쩍 보곤 말했다.

“전화 한 통화만 하고.”

─

전화를 마치고 돌아온 야미가 말했다.

“좋아, 연구소 견학 좀 해볼까?”

“갑자기?”

“범행 도구는 연구소 안에 모두 있어. 로봇, 괜찮지?”

“연구소와 이야기는 되어 있습니다. 아가사 루비 씨가 적극 협력하라 일렀습니다.”

곧 연구원 하나가 따라 붙었다.

야미는 이미 제 집인 것처럼 연구소를 해집고 다녔다.

야미는 연구자들 사이에서 시제품으로 보이는 물건 하나를 집었다.

품에 안을 만한 작은 사이즈의 새장처럼 보였다.

“이거군.”

“이게 뭐지?”

“아까 말한 동결 장치야. 정확한 쓰임새는 모르겠는데.”

우릴 따라다니던 연구원이 말했다.

“항성간 여행시 사용 할 수 있는 소형 동물 동결 케이스입니다. 이전까지는 인간형 요람에 여러 동물을 넣는 등 에너지 소모가 다소 있어서 비용이 나갔죠.”

“입구가 전자동 개폐식이고.”

“응.”

야미는 이제 알겠냐는듯 날 바라보았다.

나는 가로저었다.

“뭔데? 가르쳐줘.”

“혈적자(血滴子)라는 고대 중국 암기를 알고 있어?”

당연히 들어본 적 없었다.

“작은 원반인데 펼치면 길쭉한 원기둥 모양이 되지. 머리에 뒤집어 쓸 수 있는데 목이 닿는 부분에 칼날이 달려 있어. 사슬을 당기면 칼날이 조이면서 목을 잘라내는 거야. 그렇게 목을 거둔 혈적자는 그대로 황제에게 가져다가서 싱싱하게 잘린 머리를 볼 수 있도록 했지.”

야미는 동결 케이스를 뒤집어 썼다.

외부면이 투명한 플라스틱이라 얼굴은 그대로 보였다.

“아마 범인도 혈적자에서 아이디어를 떠올렸을 거야. 혈적자는 그 무게 때문에 실용성이 없어서 진짜 그렇게 쓰였다기 보다 그런 종류의 전설로 남아 있을뿐이지만, 지금에 와서는 아니지. 이 세상엔 한 없이 가벼우면서도 끝 없이 가벼운 물건이 있으니까.”

“단분자 칼날 말이지.”

“맞아. 범인은 여기 목 부분에 칼날을 설치하고 연구원의 목을 잘랐겠지.”

그런 일을 하는 와중에 저항이 없었다.

그 말은…

“자살이었어?”

“아니, 아니지. 스스로 목을 자르긴 했지만 자살은 아니야. 연구원은 자기 목을 자른 다음, 아마 공범이 자기 머리를 들도록 했겠지. 그다음 연구실 문을 열기 위해 보안 이미지를 떠올려 뇌파 감지기를 통과했고, 공범은 동결 케이스를 작동 시켰어.”

야미가 말했다.

“연구원은 아직 살아 있다는 말이야. 조금 복잡하긴 했지만, 내 예상대로라는 말이지. 이건 평범한 스카웃 사건이야. 그리고 평범한 사건은 더이상 나의 일이 아니지.”

─

나는 사무소로 돌아온 뒤 야미에게 말했다.

“그런데 오늘 사건에서 궁금한 점이 두 가지 있어.”

“뭔데?”

“하나는, 연구원은 애사심이 있을텐데 어떻게 회사에서 빠져나갈 생각을 했냐는 거에요. 법적으로 자유의지는 인정되지만, 지금 시대에 회사에 다니는 사람들은 자유의지가 없잖아? 많은 노동자들은 고용자의 소유물에 불과한데도.”

“글쎄. 세상엔 언제나 변수가 있는 법이니까. 그 연구원과 공범에겐 또 다른 이야기가 있겠지. 다른 질문은?”

“아까 전화는 어디로 한 거야?”

야미는 소파 등받이에 두 다리를 올리곤 긴 머리카락을 바닥에 내팽개쳐두며 날 올려다봤다.

“루비랩 주식을 샀어. 범행 방법이 발각되었으니 연구원은 돌아올테고 떨어졌던 루비랩은 다시 오를테니까.”

“…사건은 정말 안중에도 없었던 거야?”

야미는 뒤집어진 얼굴로 웃었다.

“말했잖아? 평범한 사건은 내 일이 아니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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