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겔루시움 B동 펜트하우스
영선 앙겔루시움은 50층 주상복합 아파트로, 5층까지는 상가, 나머지는 A동과 B동으로 나뉘어진 주거 공간으로 362세대였다. A와 B 두 동 안에 살아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앙겔루시움에 사는 이들은 도시의 많은 이들과는 달리 좀더 선명하게 두 부류로 나뉘어져 있었던 모양이다. 사태가 확대되기 전에 도망가거나, 아니면 사태가 확대 되더라도 이 고층 아파트가 최후의 보루가 되어줄 거라고 믿거나. 아니면 그냥 집값이 너무 비싸서 죽어서라도 포기하고 싶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집안을 들여다보면 끝까지 남아있다 죽어있던 이들이 곧잘 있었다.
이를테면 세대주 이영찬의 집에는 세 사람이 살았다. 이영찬과 그 가족은 준비를 제대로 하지 못한 것 같았다. 수도는 최근까지도 연결 되어 있었으니 담을 수 있는 그릇마다 물이 차 있긴 했지만, 음식이 없었다. 4인용 식탁 위에 있는 사골용 냄비에는 갈색빛이 나는 퉁퉁 불은 무언가가 있었는데, 꺼내서 확인해보니 가죽벨트였다. 초기에 음식을 마련하는데 실패했던 것으로 보였다. 아내와 아이는 거실 소파에서 서로를 끌어안은 채 죽었고, 이영찬은 안방 침대에 누워있었다. 부패 정도를 보아선 이영찬은 아내와 아이가 죽은 뒤 죽은 것 같았다. 품에는 일기도 남아 있었는데, 마지막 잠에 들기 전에 쇠약사를 예견하고 있었다. 초기 내용은 절망적이었지만 날이 지날수록 사색의 시간이 길어지고 있었고 허기에 대한 갈망 앞에 놓인 자신을 성찰하는 내용으로 마무리 되었다.
물론 이영찬 같은 사람만 있지는 않았다. 세대주 서영태 같은 사람도 있었다. 서영태는 ‘사태가 일어나기 전부터’ 준비가 된 사람으로 보였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마자 가구를 뜯어 차곡차곡 쌓아놓은 바리케이트를 넘어가느라 시간을 꽤나 보내야했다. 아직 뜯지도 않은 2리터 물 여섯 개 들이가 내 머리 높이까지 쌓여 있었고, 작은 방 하나는 창고로 여섯 칸 앵글로 보존식이 쌓여 있었다. 베란다는 생활감이 가득했다. 가스가 초기에 끊겼지만 비축된 가스통은 물론 기름도 몇 통 있었다. 가스버너 옆으로는 요리에 사용한 후라이팬과 냄비에 찌든 때와 기름이 묻은 그대로 놓여 있었다. 서영태는 마지막까지 배불리 먹은 모양이었다. 하지만 그 풍요로운 베란다가 마주하고 있는 거실에는 서영태와 아내 여민지, 그리고 세 남매의 목이 모빌처럼 매달려 있었다. 맞이인 서민하가 열두 살이었고 막내인 서라윤이 여섯 살이었다. 서영태의 안방 책상 위에는 수면유도제 레돌민이 까여 있었는데 손을 묶은 것이 서영태 뿐인데다, 알약이 까인 갯수로 보아선 세 아이와 여민지가 먹고 서영태가 남은 이들의 목을 걸고 난 뒤 스스로 죽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서영태와 그 가족은 아무런 기록도 남기지 않았지만 풍요로운 가운데 비축된 물과 식량만으로 채워지지 않는 무언가가 존재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서영태의 안방에는 서핑보드가 몇 개나 있었고, 지하주차장에 짚차와 캠핑카가 있었고, 함께 찍은 많은 사진들 속에서 가족은 웃고 있었다.
그리고 차수진 같은 사람도 있었다.
차수진의 집이 마지막이었다. B동 펜트하우스로 마지막 층 전체를 집을 사용하는데다 옥상 정원을 혼자서 사용하고 있었다. 앙겔루시움 같은 이름을 가진 아파트의 펜트하우스라면 이해할 수 있었지만, 그 세대주인 차수진의 열 일곱으로 나와 나이가 같다는 건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당연하지만 차수진의 집에는 생활감이 거의 없었다. 차수진은 방이 열 둘, 화장실이 다섯 개나 집에서 혼자 생활하는 것 같았지만 자신의 소지품은 극히 적었다. 교과서와 문제지들, 스마트폰, 네 벌의 교복과 드레스룸의 옷걸이 하나 정도에 모두 걸리는 사복. 가구는 거의 없었고 가전제품과 부엌은 작은 쪽을 사용하는 것 같았고 냉장고는 텅 비어있었다. 나는 차수진이 현명하게도 아파트에 남지 않고 도망간 쪽이라고 생각했지만, 결과적으로 그렇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차수진이 미련했다는 것은 아니다. 차수진은 이영찬이나 서영태 보다 더 저항적인 사람이었다. 단지 그 상대가 아버지였을 뿐. 차수진의 일기를 보았을 때 그녀의 아버지는 차수진을 찾기 위해 세 번이나 헬리콥터를 보냈고 그 헬리콥터는 이 옥상에 내려앉았다. 군인이 두 번, 직속 팀이 한 번 이 펜트하우스를 둘러보았고 그녀를 찾지 못하고 돌아갔다. 그렇게나 꽁꽁 숨었으니 차수진을 찾을 수 있을리 없었다. 나는 완전히 여위어 죽은 차수진을 일기와 함께 환기구에서 발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