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말의 개 2고
사내는 사흘째 걷고 있었다.
이따금 꿈에서 막 깨어난 사람처럼 자신이 왜 여기에 있는지 알 수 없다는 것처럼 두리번거리거나, 호젓한 도시의 외곽에서 마음을 찌르는 어떤 곡조가라도 한 것처럼 눈을 감고 멈춰서긴 했다. 하지만 사내는 허튼일에 신경 쓸 겨를이 없다는 듯 고개를 내젓고 다시 걸어갔다. 사내는 자신이 도시를 맴돌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것 같았다.
개는 먼발치에서 사내를 따라가고 있었다.
개는 덩치가 크고 금빛털을 두르고 있었다. 다리의 굽은 털들이 거뭇해지긴 했어도 사내가 제대로 털을 빗겨주지도 못한지 긴 시간이 지났음에도 개에게서는 여전히 윤이 났다. 전보다 체중이 줄기는 했지만 개는 좋은 코를 가지고 있었고 거리에서 먹을만한 것을 찾아내고 먹으면 탈이 날 것을 가려낼 재주가 있었다. 개는 거리에서 다른 사람들보다도 잘 적응했다.
요 며칠 사내의 강행군은 개에게는 이해되지 않는 일이었지만 어제 만난 친절한 모녀는 개에게 힘이 되었다.
모녀는 살아있었다. 게다가 유통기한이 막 지났을 뿐인 소시지와 신선한 물이 든 물통도 가지고 있었다. 개는 갈증에 익숙해졌지만, 모녀는 전혀 무례한 사람들이 아니었기에 경계심을 접고 목을 축였다.
개가 소시지와 물을 먹는 동안 모녀는 개를 쓰다듬기도 하고 자신들이 방금 붙인 서로 다른 두 이름으로 개를 부르기도 했다.
갈래?
우리랑 같이 갈래?
하지만 앞발을 슬쩍 쥐는 부드러운 손길에 개는 부정의 뜻을 전했다. 적당히 힘을 주어 손안에서 앞발을 빼낸 것이다. 멀리 멀뚱히 서 있던 사내가 다시 걷기 시작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개는 우선 사내의 익숙한 발소리를 들었고 고개를 돌려 눈으로 확인했다. 개는 사내를 따라갔다.
모녀가 뒤에서 부르자 개는 힐끗 한 번 돌아보았다. 자신은 모녀를 따라가지 않겠지만, 모녀가 자신을 따라오는 건 아무래도 좋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모녀는 개를 따라가지 않았고, 먼발치에서 개가 사내를 따르는 것을 보았다.
개는 사내와 함께 집에서 나선 이후 거리의 사람들이 전과 같이 상냥하지 못하다는 것을 알았다.
상냥함을 잊은 사람 중에는 개를 산책길에서 곧잘 알아보곤 했던 노인도 있었다. 노인은 늘 다리가 짧고 몸이 길쭉한 개의 친구를 데리고 나왔고, 개는 그 친구와 사이가 좋았다. 하지만 마지막으로 만났을 때는 노인 옆에 친구가 없었다. 노인도 전과 같지 않았다. 노인은 이를 드러내고 사납게 으르렁거리며 개에게 달려들었다. 마치 잡아먹기라도 할 것처럼 말이다. 개는 괜찮았다. 사내가 노인보다 빨랐다. 사내는 노인이 이가 개에게 닿기 전에 노인의 뒤통수를 골프채로 후려쳤다. 노인은 그대로 바닥에 쓰러져 일어나지 않았다. 개는 깜짝 놀라 노인이 괜찮은지 등을 코로 찔러보았는데, 사내는 개의 행동을 무시하고 목줄을 끌었다. 개는 버팅겨보았지만 그리 오래는 아니었다. 사실 개는 노인이 자신에게 이를 사납게 드러낸 것보다도, 다리가 짧고 몸이 길쭉했던, 연신 반갑게 엉덩이를 씰룩거리는 친구를 만나지 못한 것이 더 섭섭했다. 개는 얼마 동안 사내의 과하고 거친 행동이 불만스러웠지만, 그런 일이 몇 번 반복되자 무감각해져 갔다.
전과 같지 않았다. 노인이 무례해진 것처럼 사내도 무례해졌다. 노인과 사내만 그런 것도 아니었다. 거리의 많은 사람이 그랬다. 하지만 개는 그 이유를 정확히 알 수 없었다. 세상의 냄새가 달라졌다는 건 진작에 느꼈다. 개는 그것이 썩고 병들어가는 것들의 냄새임을 모르지 않았다. 드물지만 언제나 가까이 있던 냄새였다. 도로에 눌러 붙은 자국에서, 공원의 들풀 사이에서, 길 아래로 하수구에서 그리고 집안 부엌의 귀퉁이에서도. 하지만 개가 정말로 이해할 수 없는 것은 단순히 냄새만으로는 무엇이 친절하고 무엇이 무례한지 구별할 수 없다는 것에 있었다.
사흘 전 사내와 개를 습격했던 무리를 이룬 이들에게는 그런 냄새가 거의 나지 않았다. 그들은 냄새도 모습도 숨기려고 들었다. 그 무리는 멀리서부터 사내와 개를 노리고 있었고, 개는 먼 바람으로부터 이 무리에 대해 알아차렸다. 허공에 대고 몇 번인가 컹컹 짖어보기도 했으나, 사내는 개의 의중을 알지 못했다. 결국 무리의 접근을 알아차린 것도 개였다. 그 날 개는 무리의 불온한 움직임에 대해 낌새를 느끼고 선잠을 자고 있었다. 무리가 지척까지 왔을 때, 개는 사내의 얼굴을 핥고 바지끝을 물고 끌었다. 덕분에 사내는 무리가 접근하는 발자국 소리를 늦지 않게 들을 수 있었다.
개 덕분에 사내는 제때 역공을 취할 수 있었고, 운도 따랐다. 일곱이나 되는 무리를 혼자서 모두 물리친 것이다. 심지어 사내는 뒤끝을 남기지 않기 위해 도망치던 마지막 한 사람까지 쫓아가 그 뒤통수에 소방 도끼를 찍어 넣을 수 있었다. 하지만 행운은 거기까지였다.
사내는 손거울을 더듬더듬 꺼내 상처를 확인했다. 흰 뼈가 드러날 정도로 패인 머리는 생각보다 괜찮았다. 피가 줄줄 새긴 했지만, 어지럽기보다 의식이 점차 또렷하고 예민해지기만 했다. 흥분이 가시면 잠이 쏟아질 것을 직감했지만, 그것은 머리 때문은 아니었다. 사내가 허벅지를 압박하며 얼음송곳을 빼내자, 출혈이 이어졌다. 사내는 얕은 지식으로나마 상처가 그리 깊지는 않다고 판단했다. 상처는 괜찮다. 문제는 얼음송곳이었다. 사내는 소매로 검붉은 얼음송곳을 닦아내려 해보았지만, 피떡이 엉킨 얼음송곳에선 구역질이 올라오는 썩은 냄새가 났다. 오래전부터 대상을 가리지 않고 찔러왔을 도구였다. 사내는 그것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알아차렸다. 사내는 선택을 해야만 했다.
개는 그 선택의 순간을 오래도록 기억했다. 사내가 들고 있던 부패한 냄새가 나는 얼음송곳은 물론, 그 이후의 일들도 어렵지 않게 떠올렸다. 개가 허벅지의 상처를 핥아주려 들자 사내는 개를 거세게 밀치며 화를 냈다가도, 개가 포기하자 다시 다가가 거칠게 머리를 쓰다듬었다. 개가 그리 좋아하는 행동이 아니었다. 사내는 개와 함께 산책 다녀오면 으레 그랬던 것처럼 목줄을 풀어주기도 했다. 하지만 그곳은 집이 아니었다. 집이라기엔 바닥도 차고 바람도 들어 여간 자리가 불편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사내는 몇 번이고 개의 이름을 불렀다. 사내가 개의 이름을 부를 때면 사내는 개에게 원하는 것이 있었는데 개는 사내가 뭘 원하는지 알 수 없어서 잠을 설쳤다.
반나절을 내리 걸었던 사내가 천천히 멈춰 섰다. 사내를 따르던 개도 따라 멈췄다. 개는 기대감에 찬 눈으로 사내를 보았다. 개는 사내가 며칠간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이제 가방에서 먹을 것을 꺼내거나 다른 식료품을 찾아 집을 뒤질 것인지 궁금해한다. 하지만 사내는 개가 기대하지 않았던 행동을 한다.
사내는 개를 발견하고 다가온다. 개는 다른 누구도 아닌 사내이므로, 그 자리에 가만히 앉아 있다.
사내는 두 팔로 개를 안고 목덜미에 얼굴을 묻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이따금 사내가 고개를 좌우로 흔들자 사흘 전 자신의 입과 턱에 감아둔 청테이프가 쩍쩍 소리를 낸다. 그뿐이다. 몇 번이나 머리를 휘감은 청테이프 때문에 사내의 입은 굳게 닫혀 열리지 못한다.
사내는 허기진 만큼 개를 끌어안고 얼굴을 부대꼈다. 개는 꼬리를 가볍게 흔들었다. 이것이야말로 정말 개에게 어려운 일이었다. 사내는 이제 저 좋을대로 행동한다. 전과 같은 냄새가 나지도 않는다. 거리를 가득 채운 그 역한 냄새가 이제 사내에게서도 난다. 그럼에도 사내는 언제나처럼 여전히 개를 껴안아준다. 개는 사내가 포옹해올 때마다 어떤 실감을 느꼈다. 이제 어렴풋이 무언가 알 수 있을 것 같기도 했다. 세상엔 냄새와 이상의 무언가가 있었다.
사내는 잠시간 개를 이렇게도, 저렇게도 안아본다. 행동이 거칠어지면 개는 잠시 몸을 뺐다가, 다시 내맡긴다. 사내는 좀처럼 되지 않는 일에 대해 이전처럼 끈기를 가지지 못한다. 사내는 포기하고 자리에서 일어난다.
사내는 오늘의 여정이 모자랐다고 생각하는지 다시 걷기 시작했다. 이제껏 가보지 않은 길이다. 개가 그 뒤를 따른다. 사내의 두개골 안에서 몇 번째인지 모를 구더기가 알에서 깨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