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모의 사냥
“도련님, 편지가 왔습니다.”
“누구에게서?”
“익명입니다.”
“익명이라고.”
지모는 자신에게 익명으로 수신을 보낼 사람이 누구인지 생각했다.
“한 번 보지.”
그 말에 하인 디가 지모에게 편지지를 건넸다.
지모는 앞뒤를 훑어보았다.
밀봉 되어 있지만 특별할 것 없는 매끈하다.
“이게 전부인가?”
“예.”
“누가 전해왔는지는 못 봤고?”
“문틀에 꽂혀 있기에.”
“자네 건 아냐?”
“설마요. 전 편지 올 곳이 없습니다.”
“그래? 나라고 딱히 올 곳이 있는 건 아닌데.”
“오디테 경일지도요. 그분은 이런 장난 좋아하시지 않습니까?”
“…아무튼 확인해보지. 들어가서 쉬게.”
디가 돌아가자 지모는 황동 편지칼로 편지지를 뜯었다.
안에는 메모 하나만이 들어있었다.
「오디테 아블랑샤」
지모는 메모에 냄새도 맡고, 불빛에 비추어도 보고, 불꽃에 살짝 그슬려도 보았다.
‘왜 오디테의 이름이?’
오디테는 최근 결성된 사냥 모임에서 만난 친구였다.
키는 멀대같이 크지만 총포가 어리숙한 지모와 달리 오디테는 체구가 작은데도 담력이 좋아 사냥개의 도움을 받지 않고 멧돼지도 코 앞에서 꽝꽝 잘 쏘아 죽였다.
지모는 그런 오디테를 개인적으로 흠모하고 있었다.
‘하지만 오디테가 자기 이름을 써서 보낼리는 없고. 그렇다고 다른 목적이 적혀 있는 것도 아니고.’
며칠 뒤 지모는 오디테와 함께 수달 사냥을 나가서 메모를 보여주었다.
“오디테 경, 이게 뭔지 아나?”
“음. 내 필체는 아닌데. 그래도 명필이군. 어디서 얻었나?”
지모는 익명임을 설명하고 누구에게 왜 받았는지 전혀 알 수 없다고 말했다.
“흥미롭군.”
“그렇게 보이나?”
“일단… 내 이름이란 것도 그렇고. 자네랑 나랑 안지 얼마나 됐지?”
“이제 한 반년 되었나?”
“그럼 적어도 반년 사이에 우리 사이를 아는 사람이 보낸 것이군.”
“그럼 사냥 모임? 아니, 아니지. 여름 사냥 대회 때 서로 만났고 거기서 총 좀 쏜다는 인간들이 다 모였었지. 용의자가 너무 많은걸.”
“…좀더 좁혀볼까. 괜찮으면 이 메모 빌려주겠나? 편지지도?”
지모는 들고 있던 편지지를 오디테에게 넘겼다.
오디테는 외눈안경을 끼고 메모와 편지지를 꼼꼼히 살폈다.
“생각한 것 보다 고급 종이군. 잉크는… 싸구려지만 긁힌 정도로 봐선 펜이 아니라 깃으로 썼군. 불규칙해. 더 자세히 알아보면 어떤 새의 깃인지 알 수도 있겠는데.”
“오. 자네가 탐정일에 조예가 있을 줄은 몰랐는걸.”
“내가 말하지 않았던가? 숙부님이 탐정이셨지.”
“숙부께서? …하지만 그 분은.”
“맞아. 우리가 만났을 당시엔 이미 돌아가셨었지.”
“자네가 상복을 입고 사냥 대회에 나왔던 게 기억나는군.”
“숙부께서 돌아가신 건 유감이지만 사냥 대회에 참가하지 않을 수는 없어서 말이지. 아무튼, 이거 좀더 빌려도 되겠나?”
“마음대로 하게. 돌려주지 않아도 상관 없어.”
“무던하기도 하지.”
“호기심이 많은 성격은 아니라서.”
하지만 이상하게도 오디테의 이름이 쓰여진 메모는 지모의 기억에 계속해서 남아 있었다.
중요한 무언가를 잊고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
‘오디테? 오디테와 관련이 있는 걸까? 아니면…’
지모는 악몽으로 밤을 지새우다 깨어나는 일이 잦아졌다.
침대보 위에 식은땀에 젖은 지모에게 디는 발레리안 허브차를 달여왔다.
“고맙네, 디.”
“요즘 불편해보이시는데… 옛날 일 때문입니까?”
“옛날 일? 옛날 일 같지는 않은데…”
“하지만 도련님은 워낙 어려운 일을 겪으셨으니…”
“그 일은 됐네. 모두 지난 일 아닌가.”
지모는 어린시절 마차 사고로 부모님과 형제를 잃었다.
사람들은 덕분에 그 많은 재산을 혼자 독차지 할 수 있었다고 쑥덕거리곤 했지만, 지모는 그 고통 때문에 사람을 피하는 성격으로 자라났다. 그에게 가족 없이 자란 고통은 크고 아팠다.
다행이라면 머리가 굵어지며 사회성을 조금씩 회복하고 있단 것일까.
이제는 장원 일도 어느 정도 볼 수 있었고, 골방에 머리 박고 지내는 동안 전혀 기별하지 않았던 저택의 식구들과도 웃으며 인사할 수 있었다.
‘…적어도 대외적으론 그렇게 알려져 있지.’
하지만 지모는 오랜 시간 골방에서 시간을 보낸 것은 아니었다.
그는 자신의 마차 사고에 대해 하나의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사고가 아닌 고의적인 살인이라는 것.
어렸을 때부터 기계에 관심이 많았던 지모는 마차의 구동축이 낡은 것으로 교체 되었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수사관들이 재빠르게 사건을 사고사로 덮는 걸 확인하고 침묵을 지켰다.
지모는 명민했고, 가족 중 누군가 죽어 그것으로 누군가의 목적이 충족되었다는 걸 깨달았다.
‘침묵을 지키면 목숨을 건질 수 있다.’
지모는 그것으로 만족하지 않았다.
목숨을 건진 이유는 오로지 복수를 위해서였다.
‘…하지만.’
복수는 최종적으로 불가능했다.
몇 번이나 되는 조사 끝에 지모는 범인이 어머니의 정치적 후원자였던 루멘 공작이란 결론을 내렸다.
루멘 공작은 황제 조차도 거스르지 못하는 옛 가문에 속해 있었고, 소년이었던 지모는 얼굴 조차 보지 못할 전성기를 지나고 있었다. 그는 단순히 자신의 흩어진 권력을 공고히 하려는 목적으로 지모의 어머니를 죽였던 것이다.
지모는 몸을 사렸다.
루멘은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고, 틈을 보인다면, 만약 자신을 노린다는 걸 조금이라도 알아 차린다는 걸 안다면, 가만두지 않을테니까.
지모는 자신에게 비루한 목숨을 지킬 능력 밖에 없음에 한탄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루멘은 지병으로 죽었다.
지모로서는 허무할 뿐이지만 그걸 계기로 삶을 다시 꾸릴 용기를 가질 수 있었다.
‘…잠깐, 정말로 그런가?’
디가 돌아간 뒤 지모는 날이 지샐 때까지 한 자리에 앉아 기억을 더듬어갔다.
놓친 것이 있었다.
며칠 뒤, 지모는 오디테에게 연락을 받아, 교외의 숲으로 갔다.
지모는 입가에 미소가 걸린 오디테에게 물었다.
“사냥인가?”
“사냥이지.”
“뭘 잡으려고?”
“스나크라고 들어봤나?”
“전혀. 처음 듣는군.”
“도착하면 알려주지. 자네도 마음에 들 거야.”
지모는 다소 갸우뚱했지만 그러려니했다.
오디테는 지모가 모르는 동물을 많이 알았다.
마차가 서고 두 사람은 말을 풀어 숲길 안쪽으로 들어갔다.
지모도 한 번은 와 본 적 있었지만 오디테가 앞장섰다.
“그나저나…”
“응?”
“지난번에 조사한다던 쪽지랑 편지지 말이야.”
“아아. 조사는 다 했다네.”
“그래?”
“어디 한 번 들어보겠나?”
“누가 보냈는지 알고 있나?”
“그건 모르지만, ‘왜’는 알고 있지.”
“왜?”
“그건 ‘표적’이야.”
“…표적?”
“역으로 생각하는 거지. 정보가 부족한 쪽지인 것이 아니라, 정보가 부족해도 상관없는 쪽지라서 보낸 거야. 정확히 이런 거지. 자네가 표적을 상대로 무언가를 해야하는지 이미 알고 있기 때문에, 무엇으로 표적을 잡을지만 알려주면 되는 거지. 누가 보냈는지는 중요하지 않은 거야.”
“하지만 나는 모르겠는데. 표적엔 자네 이름이 적혀 있어도 내가 뭘 해야 된다는 거지?”
“…그래서 나도 혼란스러웠지. 왜 자네가 나한테 내 이름이 적힌 쪽지를 줬던 걸까? 아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해. 자네도 가물 정도로 오랜 일이었기 때문이었던 거지.”
“흠. 그게 전부인가?”
“그럴리가. 그래서, 이제와서 말해서 미안하지만, 자네 뒷조사를 좀 했어.”
“오디테.”
“그래, 이 건은 내가 좋은 자리에서 또 정식으로 사과하고 싶군. 하지만 우선은 이야길 듣게.”
오디테는 말을 멈춰세우며 말했다.
“자네는 ‘복수의 바위’에 대해 알고 있나?”
두 사람이 멈춰선 곳은 숲 속의 작은 공터였다.
그 공터에 나무가 자라지 않은 것은 크고 검은 바위 하나가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오디테는 말에서 내려 바위로 다가갔다.
“이 지역 전설이라더군. 죽이고 싶은 사람의 이름을 여기다가 쓰면, 언젠가 그 사람이 죽는다고.”
지모도 말에서 따라내리며 말했다.
“그래. 하지만 전설일 뿐이지.”
“만약 사실이라면 어떻게 하겠나?”
“그럴리가.”
지모가 인상을 쓰자 오디테가 말했다.
“사실이야. 난 사실 아주 오래전부터 이 바위에 대해 알고 있었다네. 이 바위에 이름을 새길 목적으로 찾아오기도 했지. 결국 그러지 않았지만.”
“…숙부님 이야긴가?”
오디테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이 바위 자체에 대해서는 많은 관심이 갔었지. 이 검은 바위에 새겨진 이름은 금방 마모되어 버리지만, 이 정도 크기의 바위라도 탁본을 뜨는 게 불가능한 건 아니거든.”
“….”
“여기엔 여러 이름들이 새겨져 있어. 놀라운 점은 뭔지 아나?”
“모두 죽었군?”
“그렇다네. 안 죽은 이들도 있지만, 누군가는 죽겠지.”
오디테는 돌을 쓰다듬었다.
“말은 전설이지만, 그렇게 간단한 건 아니야. 이름을 적으면, 누군가 그 이름을 수집해가지. 그리고 다른 이름을 썼던 다른 누군가에게 그 복수할 대상의 이름이 가. 서로 복수할 대상을 ‘교환’하는 거지.”
“아주 공평한 돌이군.”
오디테는 가로저었다.
“아니야. 아주 오래전부터 누군가, 아니면 어떤 조직이 이 돌을 권력으로 쓰고 있다네. 목숨값이란 게 다 같지는 않으니 말이야. 쉬운 목숨을 잡아가고, 그대신 값비싼 목숨을 잡으라고 강요한다면?”
“….”
“지모, 내 친구. 나는 이 바위에서 아주 깊게 파인, 원한으로 새겨넣은, 루멘 공작의 이름을 보았다네. 우리가 만나기 전에 병으로 죽었다지만, 그 정도 대상이라면 시간이 아주 오래 걸릴 거란건 놀랍지도 않지.”
“…루멘 공작이 내게 뭐라고.”
“자네의 원수지.”
지모는 돌아섰다.
“…도대체 어디까지 알고 있는 건가?.”
“이 돌에 내 이름이 새겨져 있다는 것, 그리고…
오디테는 어깨에 장총을 걸며 말했다.
“자네 왼쪽 손목에 차고 있는 접이식 권총까지.”
지모는 한숨을 쉬고 왼팔을 흔들었다.
찰칵 소리가 나면서 손바닥 반만한 권총이 검지에 걸렸다.
지모가 말했다.
“교환의 규칙. 나는 내 몫의 목숨값을 채워야 해. 자네를 죽여야하네.”
“총은 나도 가지고 있는데.”
“자넨 아직 못봐서 모르겠지만, 난 사람을 상대론 느리지 않아.”
오디테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
“친구.”
“왜 그러나?”
“아까 스나크 이야기를 해주기로 했지.”
“말해보게.”
“그… 스나크라는 건 동물이 아니라 괴물이야.”
“괴물.”
“총구를 겨누고, 쏘면 안된다네.”
“왜?”
“스나크를 죽이면 자기도 죽거든.”
“그럼 그 스나크는 어떻게 사냥하나?”
오디테는 어색하게 웃었다.
“글쎄. 세상엔 사냥할 수 없는 존재도 있단 거겠지.”
지모는 오디테의 말을 곱씹으며, 천천히 바람에 휘날려 떨어지는 낙엽을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