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일기110214
또 좀비인가. 그런 생각이 들었다. 꿈에서 깨고 보니 또 좀비였다. 하나같이 느린 걸음으로 허우적 거리듯 팔을 내뻗는다. 이미지가 그렇게 강렬했던가. 알 수 없다. 좀비를 좋아하긴 하지만, 그렇게 좋아하느냐 물으면, 또 별로.
아무튼 시작은 어느 지하였다. 나는 무기를 들고 있었는데, 칼 발사기였다. 수류탄 발사기도 아니고 이게 뭔가 싶지만, 단추를 누르면 칼날이 핑그르르 돌면서 날아가 적의 팔이나 모가질 툭툭 끊어버리는, 그런 느낌의 무기였다.
확실히 근사한 느낌이 들지만, 어쩐지 언월도 비슷하게 생겼고, 두 번 쏘면 끝이었다).
동료와 함께 지하주차장으로 돌입하니 무슨 적들이 나타나서 총을 겨눴다. 한 놈 씩 맡기로 하고 나는 칼을 발사했다. 칼은 원을 그리며 적의 팔을 베어냈다. 하지만 권총을 들지 않은 손이었다. 총알을 피하고, 재차 발사. 놈은 팔 없는 굼뱅이 비슷한 것이 된다. 하지만 확실히 처리해야한다. 나는 칼 발사기에 발사되지 않는 총검 비슷한 것을 팔에 휘감고(휘감았다), 놈에게 다가갔다. 빌빌거리며 도망간다. 목을 벤다.
약간, 저항감이 든다. 때문에 살갗만 살짝 스친다. 다시 제대로 벤다. 목덜미 혈관을 노리고 정확하게. 벤다. 피가 뿜어져 나오고, 확실히 하기 위해 놈을 뒤집은 다음 다시 등에 칼날을 꽂아 넣었다. 통쾌한 기분은 들지 않는다.
돌아서니 동료도 일을 끝낸듯 싶었다. 나는 적이 쓰던 권총을 주워들고 윗층으로 올라갔다. 학교였다.
그리고 좀비들이 바글바글했다.
움직임은 느리다.
이정도는 수월하다. 탕탕. 두 번 쏘면 두 마리가 쓰러진다. 미간에 정확하게 꽂힌다. 그런데,
생각보다 좀비가 더 많다.
탕탕, 같은 것으로 어찌할 수 있는 게 아니다. 1층 위로, 2층 계단을 밟을 무렵에 동료가 좀비들에게 당했다.
좀비를 쏜다.
계단을 오른다.
별다른 사건은 없다.
휘갈겨지는 손아귀를 아슬아슬하게 피한다. 굼뜬 좀비와 날쎈 나. 많은 좀비와 혼자인 나. 괜찮은 게임이다.
하지만 몸은 피로해진다. 지금은 어떻게 버티고 있지만 언제까지 이럴 수는 없다. 멀리서 총 소리가 들린다. 꿈에서 깨어난 뒤 깨달은 사실이지만,
나는 어딘가 소속된 요원 비슷한 것이었다. 좀비를 잡는 일은 꿈의 후반부에 시작되었고, 그것 말고 더 많은 일을 했었다. 무엇을 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많은 사람들과 엮였다. 마피아 비슷한 조직도 있었고, 흑인 갱단 비슷한 조직도 있었고. 무슨 일을 했는지 잘 기억나진 않지만.
학교에는 나 말고 그런 사람들도 있었다. 나는 4층 복도로 올라서자 그들을 만났다. 아주 많았다. 스무 명 정도? 마피아도 있고 흑인들도 있고.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나 같은 사람들도 있는 것 같았다. 복도를 점령하고 윗층으로 올라가기 위해 길을 찾는 거 같았다. 그들 반대편 좀비들은 나타나자마자 총알 세례를 받으며 쓰러진다.
그들은 나를 환영하는 것은 아니지만, 딱히 배척하지도 않았다. 난 조용히 끼여서 함께 이동했다. 좀비들에게 위협당하지 않으니 다행스럽지만, 아직 올라오지 못한 사람들이 걱정된다. 이들은 위로 올라갈 생각 뿐, 올라오지 못한 사람들을 돕는다거나 할 생각은 없는 것 같았다. 어쩌면 여유가 없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잠시 주저하다가, 그냥 그들을 따라 복도를 이동한다.
좀비 무리가 등장하면 화력으로 압도한다. 덩달아 총을 쏘지만 별로 도움은 안되는 것 같다. 그러던 차 내 권총의 총알이 떨어졌다.
누군가 외쳤다. 계속 이동하면서 보급해! 그러고보니 아까부터 누가 뭐라 그러긴 했다. 이동하면서 보급하라고? 좀비들로부터 보급할 수 있다는 사실을 몰랐기에 귀담아 듣지 않았었다. 바닥을 살피려는데 다시 좀비가 나타났다.
좀비들이 총을 들고 있었다. 확실히 보급할 수 있겠군.
그렇지만 다행스럽다는 생각보다는 긴장감이 먼저였다. 좀비가 총을 들고 있다는 건 대응 사격 비슷한 것도 할 수 있단 말 아닌가? 아무튼 나는 조심스럽게 바닥에서 소총 하나를 집어들었다. AK… 라고 생각했는데, 나는 들어만봤지 총기에 대해선 하나도 모른다. 아무튼 길다란 총이었다.
막상 총이 다시 생기고나니 다른 층에 있을 사람들이 걱정되었다. 역시 구하러 가는 편이 좋겠다고 생각하는데, 좀비들의 움직임이 이상했다. 뭐라, 고 중얼 거리는 좀비도 있었다. 꿈의 변화는 내가 서술하는 것 처럼 갑작스럽지는 않았는데, 별 다른 조짐 없이 변화가 일어난 건 다르지 않았다.
좀비들은 들고 있던 총을 제 입에 넣고, 탕, 당겼다.
좀비들이 중얼거린 말 중에 중요한 말이 있었던 것 같은데 잘 알 수 없었다. 갑자기 사람들끼리 다투기 시작했고, 나는 기회를 틈타 빠져나와 다른 층의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서 계단을 내려갔다. 뒤로 총소리가 막 들렸다.
꿈에서 깨어나 뒤늦게 생각해보자면, 사람들이 한 장소 - 학교로 모인 건 특별한 의미가 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좀비가 발생하는 건 이미 예상된 상황이었고, 사람들은 사태가 발발하기 전에 모종의 지시나 연락을 받고 대피하기 위해서 학교로 오게 된 것이다.
아무튼 나는 계단을 내려가다 말고 다시 올라올 수 밖에 없었다. 몇 사람이 급하게 올라오고 있었는데, 계단과 복도는 좀비들의 그림자로 가득차 어른거렸고, 좀비들의 괴성이 이명처럼 울렸다. 나도 뒤늦게 계단을 따라 올랐다. 윗층에는 아까는 못보았던 비밀문이 열려져 있었다. 급하게 들어섰다.
좁고 긴 계단이었다. 붉은 벨벳이 쌓여져있었다. 맞은편의 채광창이 빛을 투과시키고 있어 따뜻한 분위기였다. 채광창이 있는 중간층을 지나 계단을 좀더 올라야했다. 계단 위에 누군가 있었다. 흑인인데, 꿈 속에선 구면이었다.
대충 이런 뉘앙스로 말했다.
“들어오지 않는 게 나아, 친구.”
“무슨 말이야?”
“그냥… 모른 채 죽는게 낫다는 말이야.”
그리고 꽝! 총알이 내 왼쪽 눈을 스쳤다. 바로 코앞이었기 때문에 총소리는 꽝! 이었다.
죽는 줄 알았는데 죽지 않았다.
나는 그대로 서 있었다. 피한 게 아니었다. 그가 일부러 맞추지 않은 것이었다. 그러니 나도 도망가지 않았다. 우리 둘은 잠시 마주보고 서 있다가, 함께 방 안으로 들어갔다.
엔틱 느낌이 물씬 흐르는 서재였다. 방 가운데에는 사람들이 열을 맞춘 의자에 앉아 있었다. 빈 의자가 많았다. 절반 정도였는데, 여기에 도착하지 못한 사람들의 몫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나는 내 자리를 차지하며 떠벌였다.
“뭔가를 보게 되더라도 말이지. 다른 사람들을 돕지 말라고. 내 목숨은 내꺼야. 때가 되면 내가 끊을 거라니까. 다들 알겠어?”
똑같진 않지만, 이런 뉘앙스였다. 물론 여기서 돕는다는 건, 자살하기 힘들어하는 사람들을 대신 쏘아준다는 의미다.
다들 피식피식 웃으며 알겠다 대답한다. 표정에 여유를 찾으려고 노력하지만, 눈가는 묘하게 굳어있다.
서재도 빛은 가득히 들어왔다. 바로 앞에 단상이 있는데, 누군가 설 예정인듯 싶었다. 조용하고 경건한 분위기였다. 아까의, 아래의 소란은 전혀 무관한듯한, 그런 분위기였다.
서재에 꽂힌 책들을 훑어봤다. 모두 같은 출판사에서 나온 책이고, 판형도 커다란 하드커버로, 똑같았다. 색깔이 다른 것을 보면 모두 다른 내용의 책인 것 같았는데, 그런 책이 서재를 둘러싼 책장에 가득 꽂혀있었다. 지금 와서는 어떤 제목이었을지 궁금해진다.
나는 자리에 앉으며 가지고 있던 소총을 바닥에 두려다, 다리 사이에 끼웠다. 필요할 때 곧장 잡을 수 있길 바랐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