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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법

글쓰기의 예사로움

하나의 일은 여러가지 요소로 이루어져 있다. ‘걷기’가 단순한 동작처럼 보여도 몸의 관절과 근육들이 움직이고 다음 발을 디딜 때까지의 균형잡기가 이루어지는 복잡한 행위인 것처럼, 글쓰기도 그렇다. 그리고 걷기의 요소 중 하나만 불완전해도 완전한 걷기가 성립되지 않는다. 글쓰기도 그렇다. 글쓰기의 어떤 부분들은 대부분의 사람들한테도 싫고 지루하고 어렵다. 머릿속에 담아둔 이야기를 문장으로 옮겨가는 과정이나, 마땅한 아이디어 없이 글을 전개해 나가다 결국 그 끝에 봉착했을 때가 그렇다. 글쓰기의 어떤 부분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도 즐거움을 준다. 누군가 글을 읽고 감상을 남기거나, 그 글이 수익으로 돌아올 때 그렇다. 그리고 어떤 부분들은 사람에 따라 즐겁기도 하고 괴롭기도 하다. 나는 백지 위에서 새로운 아이디어를 떠올리는 것을 좋아한다. 반면에 제목 짓기는 괴롭다. 나는 글에 딱 들어맞는 제목을 고르지 못하면 그 글을 제대로 쓰지 못한다. 글쓰기를 이루는 각 요소에 대한 성취 방법이 다른 것처럼, 그 요소들에 대한 개인의 호오도 다르다. 대체로 글쓰기에서 괴로움을 덜 느끼는 이들이 글쓰기를 자신의 업으로 삼는다. 하지만 모든 글쓴이들이 그런 것은 아니다. 누군가는 괴로워하면서도 쓴다. 그 괴로움 끝에 결과적으로 큰 즐거움을 받을 거라는 희망으로 쓰는 이들도 있지만, 아무런 기대도 없거나 자신이 왜 그러는지 알 수 없는 사람들도 있다. 이것은 글쓰기가 특별하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오히려 글쓰기가 다른 모든 일들과 다르지 않다는 이야기다. 사람들은 자신이 선택한 일들에 대해서 완벽한 설명을 내놓지 못한다. 간단하게 내놓을 수 있는 인스턴트 대답을 준비해두고 있지만, 계속해서 캐묻는다면 시와 때가 맞아서, 환경 때문에, 그렇게 태어나서, ‘그냥’ 그렇게 되었노라 답할 것이다.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일을 진정으로 사랑하기 때문에 그 일을 하는 것이 아니다. 글쓰기도 다르지 않다. 다만 다른 부분이 있다면 글쓰기는 생각을 문자로 옮기는 작업이며, 그 과정에서 작가 개인의 고민이 여과 없이 드러나보일 수 있고, 그렇기에 ‘왜 쓰는가’에 대한 질문과 대답들이 만연한 것처럼 보여진다. 글쓰기는 범상한 일이다. 다른 모든 일들처럼, 그 일을 왜 하는지에 대해서 답을 내어줄 수도 있지만, 그냥 그러지 않을 수도 있다. 나름의 답을 찾은 이들은 떠나고 그렇지 않은 이들은 남아 궁리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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