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쓰기란
‘리라이팅’은 사실 어디에서나 쓰이는 간결한 해결 방법이다. 컴퓨터가 다운되면 껐다키면 되고, 총도 기능 장애가 있으면 분해조립을 하고, 스트레스를 받아도 한숨 자고 나면 전보다 좋아지는 것처럼 그냥 처음부터 다시 하는 것이다. 소설이라고 다른 것이 아니다. 다시 하면 된다. 리라이팅 기술에는 여러 방법이 있지만 그런 기술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의지가 중요하다. 일반 작법에서 리라이팅 기술이 일반화 된 반면 아마추어 작법에선 한시, 시조에서 옮겨온 ‘퇴고’ 기술을 얄팍하게 적용하거나 ‘열줄 정도만 돌아가서…’ 같은 요행을 바라는 모습을 흔히 본다. 퇴고라는 말을 흔히 쓰지만 소설은 퇴고가 중요하지 않다. 말이 나와서 하는 말이지만, 나는 유명한 김훈의 “칼의 노래"에서 했다는 조사 ‘이’와 ‘은’을 고민했다는 이야기가 미담으로 퍼져있지만 나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건 문장가의 고민이지 소설가의 고민이 아닌 것 같아서다. 소설은 유기적이다. 각 소설의 부분을 이루는 A와 B, B와 C가 서로를 지탱하고 있기 때문에 하나만 빼버려도 와르르 무너질 수 있다. 부분을 고치면 유기성에 손상이 온다. 손상이 오지 않거나 적은 부분이라면? 애초에 중요하지 않다는 말이다.
여기서 다시 쓴다는 말은 ‘처음부터 다시’라는 뜻이다. 물론 기술적으로 볼 때 완전히 다시라기 보다는 글을 완전히 해체해서 고난을 어떻게 돌파할 것인가, 또는 속 알맹이를 어떻게 더 좋은 글로 만들어 내는가의 이야기이긴 하다. 글로 쓰여지지 않아도 글이 될 수 있는 무언가는 여전히 남아있다.
트윗 띄엄띄엄 쓰다 보니 초고에서의 돌파구 뚫기를 위한 방법으로써의 다시쓰기와 초고 완성 후 다시쓰기가 혼재된 것 같긴 한데, 근본적으로 방법은 같다고 보기 때문에. 물론 우리네 선배 작가들은 초고에서 막히는 일 따위 없도록 하라고 말씀들 하셨지만, 모든 글쓴이가 그들 같지는 않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