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rae.me

작법

불안 없이 웹소설쓰기

생각난 개념이 있는데 뭐라고 불러야 이쁜 어휘가 될 지 모르겠다. 단순하게 표현하면 ‘작품 전체를 아우르는 긴장감을 불러오는 플롯 장치’인데 이걸론 뭔가 부족하다. 정확히는 ‘주인공의 기반을 불안하게 만드는 것’인데. 불안장애에 가깝다. ‘해결되지 않고 넘어간 작품 내의 갈등 요소’인데. 단순히 ‘불안감’이라고 부르긴 심심하다. 아무튼 ‘불안감’이라고 부르자면, 이건 호러와 미스터리의 근간이고 장르소설이 아니라도 제도권 소설, 고전소설이나 리얼리즘과 모던에서 언제든 터져나올 수 있는 갈등을 위한 개연적 요소로 존재한다. 하지만 어떤 판타지 소설에서는 아니다. 정확히는 웹소설 현대판타지. 장르소설 즉 현대판타지 소설은 단순히 문장의 길이, 문단의 모양, 연재되는 플랫폼의 차이로만 언급되는 경향이 있는데 내가 생각하는 제도권 소설과 현대판타지의 가장 큰 차이는 불안감의 부재다. 현대판타지에서 주인공과 주인공을 둘러싼 환경은 명확해야한다. 때문에 주인공에 대한 초점과 시야, 알고 있는 정보는 현대 판타지 소설에서 서로 비슷한 경향이 있다(작가 시점을 선호하고 1인칭의 경우 거의 모든 정보를 앎). 회귀물이 인기 있는 것도 미래를 아는 주인공에게는 ‘불안감’이 없기 때문. 불안감을 만드는 요소들: 주인공과 독자 사이의 정보 격차, 주인공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 가능성, 대적자와 완전히 갈무리되지 않은 갈등 요소, 저주, 주인공을 위협할 수 있는 운명적 요소, 드러나지 않은 배신자, 불필요하게 더 많은 정보(작가와 독자 사이의 정보 격차) 등 조금 더; 서사가 만들어내는 분위기(이를테면 영웅 서사에서의 하강부), 불안을 자아내는 문장, 도플갱어 등. 불안감은 위기와는 다른데, 위기는 이제 대면했으며 돌파해나갈 것이라는 점과 달리, 불안은 기저에 깔려 있고 언제 튀어나올지 모르며 주인공을 계속 옥죌 것이라는 예측에서 온다. 긴장감과도 다른데, 정확히는 불안은 긴장의 하위 요소다. 긴장은 긍정적이거나 부정적이지 않고 중립적인 반면 불안은 부정적이며, 긴장이 주인공의 행동을 기대하게 하지만 불안은 보다 수동적인 대응에 그칠 것으로 보인다. 불안은 항거할 수 없는 운명과 저지른 업보에 대한 마땅한 응보, 개인이 끝내 이겨낼 수 없는 부조리, 세상이 만들어진 모양에 대한 개인의 갈등에서 비롯된다. 현대판타지는 왜 불안을 거절하는가? 판타지는 현실이 아니기 때문이다. 판타지가 현실을 거절하는 건 당연하다. 그야말로 대척점에 있다. 이와 같은 비평적 접근과 별개로 창작론의 관점에서 불안의 부재는 곤란한 지점이 있다. 불안은 소설 서사의 기본이며 개연성의 층위를 쌓아나가는 와중에 생산되는 필연적 요소다. ‘불안 없이 소설 쓰기’는 ‘어떻게 무염 닭가슴살을 맛있게 먹는가’와 유사한 문제를 내재하고 있다. 이에 대한 웹소설의 해답은 그냥 소금을 치는 것, 불안을 내포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 불안은 각 편의 시작 지점에서 나타났다가, 마지막 지점에서 해소된다. 때문에 각 편에선 불안이 존재하지만 소설의 전체를 보면 ‘불안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게 만든다. 일종의 마술이다. 이를테면 25화의 작품이라면 34회 분량으로 한 에피소드를 진행하며 23회 분량에선 주인공이 ‘낙관적 전망을 가진 긴장감(불안의 반대 요소)‘으로 소설을 진행하고 마지막 한 편을 불안을 드러냈다가, 해당 편의 끝에서 불안을 갈무리하고 종료한다. 이것이 가능한 것은 현대판타지에서 등장하는 대부분의 불안이 ‘가짜 불안’이기 때문이다. ‘부정적 전망을 가진 긴장감’은 등장했다가 곧바로 이익으로 교체되고 긴장이 해소된다(알다시피 현대판타지는 각 편이 ‘결기승전’으로 이루어져 있다). 때문에 현대판타지는 자연스럽게 주인공의 끊임없는 이득을 통해서 스케일이 에스컬레이트 된다. 이 전개 속도는 절대 멈출 수 없으며 현대판타지의 틀을 결정짓는다. 너무 빠른 스케일의 확장은 세계관의 벽에 부닥치고 파워 게임에 대한 독자의 역치를 상승시켜 재미를 감소시킨다. 그래서 가짜 불안에 의해서 얻게 되는 이익은 사실상의 가짜 이익이 된다. 결기승전의 구성에서 독자의 기대감을 불러 일으키는 이익은 다음편의 초반부에서 기대보다 작은 이익으로 밝혀지고, 이 낙차를 통해서 독자에 대한 파워 레벨에 대한 역치를 회복시킨다.


← 초점 · 쓰레기를 쓰겠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