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감상을 받아들이기
난 작가가 자신의 글에 대한 감상을 인용(認容)하는 건 쉬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두 가지 전제가 있다. 글에 대한 감상이 작가 자신에 대한 감상이 아니라는 것을 구분하며 감상을 받아들였다고해서 반드시 글에 반영할 필요는 없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다. 이런 일은 대단한 용기가 필요하지 않다. 작가와 작가의 글을 구분하지 못하는 것은 작가는 물론 독자도 해당되는 일이고 합평회 등에서 자주 볼 수 있다. 하지만 작품에 대한 공격이 작가에 대한 공격으로 이어지는 경우는 윤리적인 논의가 아니라면 사실상 없다. 가장 많이 이야기 되는 것은 언제나 작법이나 재미, 취향에 대한 것이다. 또한 독자의 감상을 받아들인다고 하더라도 그 감상이 글과 작가의 글쓰기에 영향을 끼쳐야할 이유는 없다. ‘감상의 수용’과 ‘감상의 반영’은 완전히 다른 이야기다. 글에 대한 여러 관점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지 않는다고해서 그 모든 관점을 글에 담아내는 것은 하고 싶다고해도 불가능하다. 여기서 중요해지는 것은 바로 작가의 줏대다. 가끔은 누군가의 발언이 옳고, 그것을 반영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자신이 쓰는 글과 글쓰기의 방향에 일치하지 않는다면 미련없이 포기해야 할 때가 있다. 작가는 자신의 글의 주인이다. 다른 누군가가 올라타려고 들면 과감하게 밀쳐낼 수 있어야 한다. 소설의 감상은 그래서 중요한 것 같다. 작가의 정체성은 작가의 경험이 총합이며, 작가의 글에 대한 감상이 그 글과 글쓰기에 가장 큰 영향을 주고 흔들기 때문이다. 좋은 감상은 무엇이고 나쁜 감상은 무엇인지 선별하기 위해선 우선은 많은 감상을 모을 필요가 있다. 작가는 감상을 감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