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소설이라는 미증유
비연재소설들과 달리 연재소설(또는 비교 될 수 있는 드라마 등의 연재작품들)은 항시 독자의 반응을 볼 수 있다. 작가는 오랜 미덕으로 알려진 작가 자신의 글을 쓸 것인가? 아니면 ‘소통’에 말미암아 작가가 이미 알아차린 독자의 요구를 충족시켜 줄 것인가? 후자의 경우 그것을 온전한 작가의 글로 볼 수 있을까? 소설에는 ‘작가주의’라는 말을 쓰지 않는다. 그것이 얼마나 상업적인 지향점을 가지고 있던지, 하나의 소설은 응당 그 작가의 선택이었기 때문이다. 상업적이라면 그것은 그 작가의 상업적 작가주의에 말미암은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단순히 연재소설의 상업적 성과를 원한다면 틀림없이 작가는 독자의 요구를 어느 정도 충족시켜야 할 것으로 보인다. …과연 정말 그럴까? 많은 연재 소설 작품들은 독자의 요구에 말미암아 암초에 부닥친다. 작가 스스로가 제대로 알지 못하는 길로 나아가고자 하는 시도가 글에 있어 좋은 선택인가? 독자의 요구는 ‘거의 항상’ 정확하지 않다. 독자는 독자의 숫자 만큼의 서로 다른 요구를 가지고 있다. 댓글과 쪽지는 물론, 선작수, 별점 등의 성적 지표는 작가를 위한 것이 아니라 작품을 찾아 읽는 독자를 위한 것이다. 이를 통해 유추할 수 있는 독자의 기대를 명확하게 이해하는 건 불가능하다. 내 생각에 연재 중인 소설을 통해 투사 되는 작품의 결말 대다수는 작가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던 것이다. 독자들은 결말의 완벽하지 않음에 불만을 느낀다. 소통 가능성이 열려있다는 것, 독자의 의견이 결말을 조금이라도 바꿀 수 있었지 않을까 하는 희망 그 자체가 이러한 불만족을 심화시킨다. 그렇다고해서 작가가 모든 가능성을 포기할 것인가 하는 것도 의문이다. 웹소설 시대의 글쓰기는 수 많은 고전을 써온 대문호들이 해왔던 시대와는 완연하게 다른 시대의 글쓰기다. 신문 연재를 하고 독자의 손편지를 받는 것과 유사해 보일 수도 있겠지만, 양이 다르면 질이 다른 법이다. 인기 연재 작품이 아니더라도 글을 쓰면 늦어도 5분이면 첫 댓글이 달린다. 원한다면 웹 상에 존재하는 작가에게 직접 말을 걸 수도 있다. 같은 작품을 읽는 이들과 모여서 그룹을 이루고 하루 종일 그 이야기를 할 수도 있다. 그리고 그것을 작가가 볼 수도 있다. 앞선 시대의 선배 작가들이 도달해보지 못했던 지점에 선 작가들이 여기에 있다. 누군가 의견을 피력하더라도 사람들은 귀기울여 듣지 않는다. 그것이 정답인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충분한 시간이 흐르기까지 당분간 작가는 골몰하여 답을 내는 수 밖에 없고, 이 고민은 그 누구도 도와주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