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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법

초점

아주 단순한 소설도 사실은 여러 계층으로 나뉘어져 있는데 그것 작가-화자-인물의 겹이다. 작가는 초점(시점이라고도 말하는)을 통해 독자의 시야를 제한하게 되는데, 이런 작업 과정에서 작가와 화자가 겹치거나(전지적작가시점), 화자와 인물이 겹치는 등(1인칭주인공시점)의 장치를 마련한다. 초점은 글에 따라 성격이 바뀌는 편이지만, 일반적으로 독자와의 거리를 좁히는 경향이 있다. 이를테면 1인칭 서술자(화자) 주인공과 독자 사이의 거리는 아주 가까워 독자가 신뢰하는 관계가 된다. 반면 1인칭 서술자이면서 주인공이 아닌 관찰자 인물이라면 주인공과 독자는 관찰자 인물과 거리가 멀어지게 된다. 때문에 전자의 초점의 경우 1인칭 서술자인 주인공이 독자를 배반하는 반전 서사로, 후자의 초점의 경우 미스터리/호러 등에서 초자연적 사건에 대한 불신을 유예시킬 목적으로 사용 되는 것을 확인 할 수 있다(인물과 사건을 불신하는 관찰자에 독자가 동의하므로). 아까는 작가가 직접 소설에서 등장하는 경우에 대해 이야기가 나왔는데, 초점 장치가 작가까지 드러나면 사실은 소설과 구술문학, 비소설간의 경계를 건드리는 부분이 있다. 근대를 넘으며 비교적 빈도가 줄긴 했지만 현대 작가들도 곧잘 사용하는 것으로 보인다. 사실 소설(특히 장르소설)에서 초점을 어떻게 설정하느냐는 그리 큰 문제가 되지 않는 것 같긴 하다. 장르에 따라 이미 정해진 초점들이 있고 이것에 장르를 구분하는 거대한 축이 되기도 하기 때문에. 초점을 가지고 놀고, 그것이 독자에게 인식되면, 실험적이라는 견해를 받을 수 밖에 없다. 그럼에도 초점은 소설이라는 매체에서 가장 인상적인 도구다. 타 매체는 흉내를 내기 벅찬 소설의 고유한 성질이기 때문. 어떤 작품은 초점을 인지하지 못하면 밋밋한 서사와 구성이라고 생각하게 되지만, 초점을 주목하면 소설을 몇 번이고 되짚어보게 만든다. (길리언 플린 “나는 언제나 옳다”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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