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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

어두운 원룸으로 들어서던 개의 발에 뭔가 채였다.

형광등을 켜자 소주병 하나가 누운 아내의 발치로 구르고 있었다. 눈부심에 깨어난 아내는 인상을 쓰면서 개의 이름을 불렀다.

화가 난 개는 아내에게 또 술을 마셨느냐고 웅얼거렸다. 웅얼거림이었다. 개 또한 알콜에 이완된 근육 때문에 발음이 새고 있었다. 듣지 못한 아내는 대답이 없었다.

자기 말을 무시한다고 생각한 개는 손에 집히는 물건을 집어 바닥에 내동댕이치며 야! 하고 소리쳤다. 텅 빈 페트병이 바닥에 굴렀다. 개의 분노를 대변하기엔 너무 가벼웠다. 아내는 고개를 이리저리 흔들 뿐 대답이 없었다.

차게 식은 아내의 눈만이 개에게 관심을 주었다. 순간 개는 아내를 향해 손을 들었지만 주먹을 말아 쥐며 화를 삼켰다. 개의 눈에 만삭이 된 아내의 배가 들어왔다.

의사는 아직은 태아가 건강하지만, 아내를 그대로 둔다면 이후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 장담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마저도 한 달 전의 일이었다.

그 사이 아내는 개에게 여러 번 약속을 했고 모두 어겼다. 개는 다짐했다. 오늘은 해가 뜨면 아내와 병원부터 가자. 다를 바 없이 몇 번이나 했던 다짐이었다.

그러나 다짐을 되새긴다고 화가 풀리는 건 아니었다. 개는 술자리라면 마다치 않는 친구를 생각했다. 개는 다시 밖으로 나갔다.

개가 자리를 잡자 곧 친구가 찾아왔다. 친구는 아내의 안부를 물었고, 개는 기회가 찾아왔다는 듯 이야기를 시작했다.

개는 자신의 아내가 얼마나 생각이 없고 미래에 대한 걱정이 없는지에 대해서 일장연설을 쏟아내고도 모자라 아내는 자신의 성실함과 노력에 대해서는 고마워할 줄 모른다며 떠들었다.

친구는 개의 말에 연신 고개를 주억거렸지만, 그래도, 그렇지만, 요즘 같은 세상에, 수컷인 네가, 같은 사족을 조심스럽게 덧붙였다. 그러자 개 또한 언제 그랬냐는 듯 네 말이 옳다며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고 맞장구쳤다.

하지만 친구가 이어 말한 우울증 치료니, 알콜 중독 치료니 하는 말에는 술잔을 탕탕 내려놓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친구가 요즘엔 다들 하는 일이라 해도 개는 완고했다. 개는 그것이 다른 사람의 눈치를 살필 일이라기보다는 더 개인적인 일이라고 생각했다.

개는 이제는 돌아가신 어머니에 대해 이야기했다. 친구는 몇 번이나 들었기에, 그 시작을 마치 자기 이야기인양 할 수도 있었다. 개는 제 어미의 다섯 마리 새끼 중 막내로 태어났다. 유달리 몸집이 작고 허약한 개를 어미는 특별히 보살폈다. 분유값을 위해 미처 몸을 다 사리기도 전에 시장에 나가 일을 했고, 그 때문에 몸이 크게 상해버렸다.

개는 미처 효도를 드리기도 전에 세상을 떠난 어머니가 조금은 원망스럽다 했다. 하지만 그런 어머니의 희생 덕분에 지금의 자기가 있을 수 있었다며, 그에 반해 지금의 아내는 너무 한심한 것 같다 했다. 지금 구상 중인 사업은 정말 완벽한 아이템인데, 무지한 아내는 이해하지 못한다.

처남의 투자금 몇 푼이라면 지금 당장에라도 되갚아줄 수 있다. 단지 나이를 먹고도 큰 뜻을 두지 못하는 처남이 불쌍해서, 그래서 이번 기회에 목돈 만질 기회를 주려는 건데. 이번에는 정말로 성공할 수 있는데.

개는 친구가 심하게 어깨를 흔들고 나서야 정신을 차렸다. 하늘을 보니 아직도 검었다. 개 아직 집에 들어갈 시간도 아닌데, 하고 성을 냈다.

계산을 마친 친구는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개를 이끌고 도로에서 택시를 잡았다. 개가 어딜 가느냐 입을 열자, 친구는 자신에게 연락이 왔다며 휴대폰을 보라고 했다. 부재중 전화가 십 수 통이나 와있었다. 그중 절반은 아내였고, 나머지 절반은 옆집 여자였다.

개는 급하게 옆집 여자에게 통화를 걸었다. 옆집 여자는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아내가 조기 출산이라며, 사진을 찍어보니 자연분만은 위험해서 제왕절개를 하게 될 것이라 하였다. 그러면서 계속 산기를 느껴왔을 텐데 여태 모르고 있었냐고 질책했다. 개는 대답하지 않았다.

수술이 끝난 것은 해가 뜬 이후였다. 수술실 앞에서 초조하게 기다리던 개에게 수술을 마친 의사가 나와 다행히 수술이 잘 끝났다고 알려왔다.

개는 안도를 삼키고, 당연한 수순인양 그 자식이 아들인지 딸인지를 물었다. 불현듯 의사의 눈길이 흔들렸고, 개는 그것을 놓치지 않았다. 개는 알콜이 임산부의 기형아 출산에 관여한다는 이야기를 상기했다.

개의 불안을 알아챈 의사는 의례 환자를 안심시킬 때의 미소를 띠었다. 의사는 설명하기보다는 직접 보는 게 빠르다며, 국내에선 흔한 일이 아니라고 말하였다. 개는 의사를 따라 수술실로 들어갔다.

수술실은 아직 번잡했다. 개의 아내가 누워있고, 주위로 여남은 사람들이 수술실을 정리하고 있었다. 개는 파리한 안색의 아내를 보고 새삼 대견함을 느꼈다가, 그 옆에 한데 모여 꼬물거리는 물체들을 보았다. 개의 자식들이었다.

개는 휘청거리며 다가가다 울컥 터져 나오는 눈물을 참을 수 없었다. 이렇게나 많이! 지난 아내의 행동도 모두 용서하리라. 그간 얼마나 고생을 했을지! 감동에 벅찬 개는 이것이 분명 앞으로 다가올 미래의 좋은 징조가 될 것이라 믿었다.

밝은 조명 아래에서 눈도 뜨지 못한 다섯 마리 강아지들이 바둥거리며 젖을 찾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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