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 용사 네트워크(1/5) 귀환 용사
귀환 용사 네트워크를 발견한 것은 지구로 돌아오고 반년 정도가 지난 뒤였다.
처음에는 평범한 자캐 커뮤 사이트라고 생각했다. 이 자캐 커뮤에서 플레이어가 만드는 자캐는, 이세계를 구해버리고 지구로 돌아온 ‘귀환 용사’라는 설정이었다.
설정만 봐서는 파워 인플레로 얼마안가 말아먹을 것 같았지만, 운영자가 조율을 잘하고 플레이어들도 잘 따라 적어도 서너달은 더 갈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렇다. 그냥 괜찮은 자캐 커뮤였다. 그렇게 생각하고, 그 홈페이지를 무시한 채 계속 일상을 영위해가도 좋았을 것이다.
하지만 소재가 ‘귀환 용사’였다.
돌아올 귀(歸), 돌아올 환(還). 돌아온 용사. 귀환 용사.
─집으로 돌아온 초기에는 많은 사건들이 있었지만, 6개월이 흐를쯤에는 다 괜찮아지고 있었다. 부모님과 화해했고, 검정고시를 준비했으며, 롤에 빠져있었다(변명하자면, 롤은 내가 없는 사이 사라진 스타리그의 상실감 때문이었다). 그렇지만 그 모든 일들은 그저 공허하게만 느껴졌다.
가족과 외식을 하고 동생과 투닥거리는 일은 연극처럼 느껴졌고, 검정고시의 문제들은 전혀 중요한 일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하물며 게임 따위야. 아니, 게임이나마 말초적인 즐거움을 겨우 자극했을까.
나는 ‘진짜’ 귀환 용사였다.
그 말은 평범하기 짝이 없는 일상을 영위하다가, 어느날 갑자기, 이계로 떨어졌었다는 말이다.
내가 떨어진 이계는 우울한 세기말의 세계였다. 인류는 도마뱀을 닮은 지성체에 의해 종말로 치닫고 있었고, 모든 노력은 그 종말을 조금이나마 늦추기 위한 몸부림에 불과했다. 나는 그런 세계에 아무런 기연도 없이 맨손으로 떨어졌다.
처음엔 그저 살아남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피난민을 습격한 도마뱀들을 물리치는 것으로 시작해, 최후의 성벽을 수성하고, 굴복한 왕의 마음을 되돌리고, 작은 회전을 승리로 이끌었으며, 도마뱀의 황성에 테러를 가하고, 도마뱀들이 넘어오는 게이트를 힘으로 틀어막았다. 거기까지 1년이었다.
수 많은 동료를 만나고, 잃었다. 하루하루가 위기의 연속이었고, 매번 승리를 확신하기 보다 목숨을 더 많이 걸었다. 주사위를 던져 수 만번이고 6이 나올 기적으로, 세계를 구했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왔다.
동료들에게 작별을 고하는 일은 더 없이 어려웠지만, 집으로 돌아올 방법을 알게 된 이상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나는 그 세계의 사람이 아니었다. 그렇게해서 나는, 사선을 넘나드는 모험으로부터 느닷없이 먹고 사는 궁리나 하는 구차한 삶으로 굴러떨어졌다.
분명 보고 싶은 가족과 친구들이 있는 나의 세계였다. 가출로 위장하고 가족에게 거짓말을 늘어놓은 다음날, 나는 새벽까지 소파에 앉아 TV를 보았다. 형광등은 창백한 빛을 발하고, TV에선 무한도전 재방송을 예고 하고 있었다. 문득 눈물이 주륵 흘렀다. 휴지를 풀어 닦는데도 멈추질 않아, 날이 샐때까지 울었다. 그 위험과 고통의 세계에서 벗어나, 몇 번이나 꿈에 그리던 그 집에 있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것이 안정되어갈 쯤, 나는 멍때리는 일이 잦아졌다. 그러니까 반년 정도가 지난 뒤였을 것이다. 어느샌가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 라는 말을 하루에도 몇 번씩 들을정도였다.
그럴 수 밖에 없었다.
이계에서 겪은 일은 일개 개인이 평생을 살아도 겪지 못했을 긴장과 모험이었다. 지구에서 겪는 어떠한 일도, 그 자극에 비하지 못했다. 나는 여분의 인생을 살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주인공으로써 나의 역할은 이제 끝이 났다. 책장은 마지막 페이지를 넘어섰으며, 이 세계는 ‘그리고 모두 다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마침표 뒤에 오는 세계였다. 이제 책장에 꽂혀 쌓이는 먼지를 감내해야할 소설책이나 다름없었다. 연극이 끝난 후. 엔딩 이후의 세계.
그러니까, 귀환 용사 네트워크를 발견하는 시점이 딱 그런때였다는 것이다.
귀환 용사 ‘자캐’라니. 나는 ‘진짜’ 귀환 용사라고. 이자식들.
나는 무언가 홀린듯 귀환 용사 네트워크에 가입했고, 이세계에서 쓰던 예명으로 자캐를 만들었다. 순전히 호기심 때문이었다. 이렇게 열성적이어도 내일쯤이면 잊어버리겠지 생각하고야마는 정도의.
그렇지만 자캐 커뮤에 가입한 이상 다른 자캐들과 이벤트를 벌이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일이었는데, 첫 이벤트는 ‘백아’라는 다른 플레이어 캐릭터와의 대면이었다.
‘서로 일코를 하다가 현실 세계를 위협하는 적의 등장으로 이계에서 사용하던 숨겨진 힘을 개방하게 된다’는 평범한 시추에이션인데, 소소한 문제가 있었다.
문제가 벌어진 곳은 홈페이지 한 켠에 위치한 IRC 채팅방에서였다.
백아:님 너무 약함 ㅋ; 좀 쎈 설정으로 바꾸시죠..
제로:싫은데요
백아:님 때문에 밸런스가 안 맞잖아요
제로:싫다니까요
백아:다른님들은 너무 쎄서 탈인데 님은 왜 그렇게 약한거죠..
당연한 이야기였다. 내 캐릭터는 이계의 ‘나’를 그대로 가져온 것으로, 다른 자캐들처럼 메리수적인 부분은 눈꼽만큼도 없었다. 나는 마법사도 아니었고, 소환사도 아니었고, 정령사도 아니었다. 굳이 클래스를 따지자면, 칼 한자루 믿고 달려드는 검사였다. 물론 검기 정도는 썼지만 다른 캐릭터들처럼 딱히 검강을 흩뿌리거나 어검술을 쓸 수 있는 정도는 못되었다. 그래서인지 이런 이야기도 들었다.
백아:겨우 그런 능력으로 그정도 세계를 구해냈다는 설정은 좀 개연성이 부족하지 않나요?
제로:할 수 있거든요?
백아:? 개연성이 부족하다니까 뭔 소리래 직접 해본거처럼 말하네;
제로:님 왜 반말?
백아:아나.. 지금 반말 안하게 생겼나..
제로:뭐 자캐딸이나 치는 오타쿠가
백아:씨발 뭐라고?
참고로 캐릭터 백아는 키 174에 몸무게는 53, 18세 검은 생머리 미소녀라는 설정이었다. 검을 사용하면서도 빙결계열 마법의 고수이기 때문에 백아. 성격은 겉으론 쌀쌀 맞지만 사실 내면이 따뜻한 녀자. 어느 면에서도 완벽한 오타쿠의 딸용 자캐였다.
나는 그런 캐릭터를 만들고 싶지 않았다.
나는 그저 이계의 내가 고스란히 지구로 돌아온 것으로 가정하고 싶었다. 끝나지 않은 모험을 계속해서 이어나가고 있는 세계로, 대리만족을 하고 싶었다. 그렇다. 나는 백아와 다투던 어느 순간부터 뻔뻔하게 이 자캐 커뮤를 통해 현실도피를 하겠다고 마음먹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귀용넷’을 북마크에 추가했고, 백아를 적당히 구슬려 이벤트를 작성했다. 레벨은 2가 되었고, 그럭저럭 괜찮은 시스템으로 짜여진 자캐 커뮤에 빠져들어갔다(사실 말하자면, 나야말로 오타쿠였다).
덕분일까.
그 후로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라는 말을 듣는 날이 줄기 시작했다. 마음을 가득 채우던 공허함은 덜어져서 다른 일에 집중할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덕질은 적당히 하기로 했다.
다만 귀용넷은 덕질에 포함되어 있지 않아서, 스마트폰으로 꾸준히 실시간으로 자캐질에 열중한 덕분에 내 캐릭터 ‘제로’는 사이트 안에서 어느 정도 유명인사가 되어 있었다. 사이트 최약체였던 내 캐릭터는 22레벨이 되었고, 다른 플레이어들과도 친해져 채팅방에선 말을 놓고 지냈다.
모든 일이 올바른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검정고시는 통과했고, 성적이 제법 괜찮아 국립대도 노려볼 수 있었다. 부모님은 기뻐했다. 롤은 레이팅 1900점에서 자꾸 고배를 마셨다. 아무래도 좋은 일이었다.
나는 새로운 프로젝트도 진행중이었다. 이계에 있었던 이야기를 소설 형식으로 게시판에 공개하는 것이다. 소설은 처음써보는 것이었지만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다. 사이트 안에서 괜찮은 호응이 있었고 전문 소설 연재 사이트에도 올리라는 권유를 받았지만, 그럴 생각은 없었다.
귀용넷도 언젠가 사라질지도 몰랐다. 내 예상보다 더 오래 살아남았지만(운영진은 아마 삶이 없는 사람처럼 귀용넷에 열과 성의를 다하고 있었다), 어차피 인터넷 사이트였다. 길어도 수 년. 아니, 그전에 내가 먼저 매너리즘에 빠져 흥미를 잃을지도 몰랐다. 미래는 모르는 일이다. 내 소설은 그에 대한 보험이었다. 다시 그 공허함에 빠지지 않기 위한 기록으로서.
집으로 돌아온 뒤 11개월이 지나고 있었다.
─
단편 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