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 용사 네트워크(3/5) 정모
“내가 잘못생각했어. 단순한 아이디 정지가 아니야. 타로가 아이디 정지로 추측했던 클리어, 이슈타르, 하루는 귀용넷 뿐만 아니라 다른 넷상의 활동도 중지했어. 클리어는 트위터, 이슈타르는 루리웹과 디씨, 하루는 블로그를 주로 사용했지. 하지만 귀용넷처럼 급작스러운 것이 아니라 어느정도 활동을 지속하다가 점진적으로 그 정도를 줄였는데, 이상한점은 활동할때의 내용이 과거에 한 번 작성했던 내용을 되풀이 했다는거야. 마치 누군가 대신해서 웹활동을 해주듯이 말이야. 결국 다른 누군가가 세명의 귀용넷의 아이디 권한뿐만 아니라 ‘모든 아이디 권한’을 가지고 있다는 말이야. 그말인 즉, 세 사람, 정확히는 타로까지 포함한 네 사람에게 ‘신변의 문제’가 생겼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이지. …듣고 있어?”
“왜 귀요미넷이라고 안하고?”
“…너 오프에서도 존나 짜증나.”
그렇게 투덜거리는 것은 속눈썹이 길다란 미녀였다. 척봐도 대충 입고 나온 캐주얼한 복장인데도 그 아름다움을 가시기 힘들었다. 백아는 모든 면에서 귀용넷에 적힌 캐릭터 프로필과 똑같았다. 성격만 제외하고.
“여자일줄은 몰랐는데.”
“너 내 이야기 하나도 안 들었지?”
아무리그래도 사람을 너무 무시한다.
“들었거든? 그래서 신변의 문제가 있는지 아닌지 어떻게 확인하겠다는거야? ‘멍청한’ 나를 제외하곤 다들 신상털리는걸 막으려고 나름대로 수단과 방법을 강구했다며?”
“오. 대단한데.”
“그 정도야 뭐.”
“스스로 멍청하다는걸 인정하는 용기라니.”
“…이년이.”
처음 만났을 때는 서로 쭈뼛쭈뼛하며 존대인지 반말인지 알 수 없는 말을 주고받다가, 나이가 같다는 걸 알고 합의하게 말을 놓게되자 여기가 시내의 카페인지 귀용넷 채팅방인지 구분이되지 않게 되었다.
백아가 말했다.
“확실히, 나나 너나 해킹 기술같은건 없으니까. 주민등록 번호 도용하고 아이디 바꾸고 프록시로 우회 접속만해도 전문적인 기술이 없는이상 힘들지. 하지만 우리는 벌써 추적할 수 있는 사람을 한 명 알고 있잖아?”
“하루?”
“그래. 정확히는 가짜 하루. 중학교 2학년생 하루가 아니라 대학교 2학년생 하루. 중2 하루는 학교까지는 추적하기 어려웠지만, 대2 하루는 학교에 학과, 이름까지 알고 있으니까.”
“너 일베인이지?”
“지구 오고 나서 일베같은 거 할 시간 없었거든?”
“그럼 코갤이네.”
“…중2하루와 대2하루가 완전히 모르는 사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아. 물론 중2하루는 내키는 아무나를 선택할 수 있지. 하지만 그건 자신을 추적하는 사람을 알 수도 있는 유용한 기회를 버리는 짓이야. 남매까지는 아니라도 대2하루에게 누군가 접근했을때 중2하루가 알 수 있는 사이 정도는 되겠지. ‘혹시 최근에 이런 사람 없었어요?‘하고.”
“그렇다고 무턱대고 ‘주위에 자캐 커뮤질하는 중2 아세요?‘하고 물을 수는 없잖아? 어떻게 물어볼건데?”
“아… 그래서 니가 멍청한거라고.”
백아가 제시한 방법은 내 생각처럼 단순하지만, 멍청하지는 않았다.
애초에 대2하루가 다니는 학교 앞 카페를 약속 장소로 정했기 때문에 우리는 신속히 행동했다. 다짜고짜 학과 사무실을 들어간 백아는 빈둥거리는 학생 한 명에게 자신은 대2하루의 사촌동생인데 몰래 학교에 찾아왔고 대2하루를 깜짝 놀래켜줄 생각이라며 지금 어디 있는지 물었다. 그러자 그 학생은 자신은 잘모르지만 직접 전화를 걸어 물어봐주겠다고 했고, 가까운 강의실에서 수업중인데 이제 마쳐가는 중이라 알려주었다. …아무튼 그렇게 했다고 했다. 나는 스마트폰 게임을 하면서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으니까. 그다음 우리는 강의를 끝내고 나오는 대2하루를 뒤에서 미행하다가, 적당한 시점에서 따라붙어 이렇게 물었다. “안녕하세요. 심리학부 2학년 백아란인데요. 바쁘지 않으시면 간단한 설문조사에 응해주실 수 있을까요?” 설문지는 다시보고 또 봐도 이해가 잘 안되는 내용이었지만, 생각을 요하기보다 그렇다아니다 식의 체크를 요하는 것이라 서른 문항이 5분이 안되서 끝이 났다. 하지만 이상한 것은 이상한 것이라서, 대2하루는 “이상한 질문이 많은데…” 하고 돌직구를 날려왔다. 아마 ‘지인 중 가출 경험자가 있나요?‘라는 질문이 거슬렸을지도 모르지. ‘그 가출 경험자와는 어떤 관계인가요?‘가 더 거슬렸을지도. 옆에서 설문지 뭉치(사실은 백지)를 들고 멀뚱멀뚱히 서 있던 나도 위기감을 느꼈다. 하지만 백아는 배시시 웃으면서 말했다. “예. 사실 이 설문은 설문 내용보다 설문 자체에 대한 반응을 조사하는 거라서요. 이렇게 되물어보시는 분을 체크하는거거든요.” 메타 설문일줄이야.
우리는 자연스럽게 대2하루의 뒤를 밟으며 설문지를 살폈다. 가출 경험자 유무에 대한 질문에는 유, 어떤 관계냐는 질문에는 5번 기타, 교회. 이를테면 교회 오빠라는 말이군.
백아는 설문지를 내려다보더니 의미심장하게 말했다.
“넌 도대체 왜 온거냐.”
“오라고 한 건 너거든?”
“너 오늘 할 일 없지?”
“안 할거다.”
“뭘?”
“미행하라고 할 거 아냐?”
“왜 안해?”
“음.” 즉답할수도 있었지만 뜸을 들였다. 그게 어느정도는 지켜줘야할 예의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내가 말했다. “내가 그걸 왜 해?”
백아의 걸음이 반보 정도 엇갈렸다.
백아가 날 돌아봤다.
“도대체 왜 온거냐? 넌.”
“너야말로. 왜 집에 와서도 용사 놀이야?”
“뭐?” 이제 우리는 멈춰섰다. 백아는 대2하루를 힐끗봤다가 포기하고선 나와 눈을 마주쳤다. 백아가 말했다.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거야?”
“음. 무슨 예를 들어야 좋을지 모르겠는데. 너 쇠 잘라본적 없어? 이를테면 갑옷 같은 거. 고도로 집중을 하고, 복잡한 구결을 외면서, 기운을 집중시키고, 근육을 잔뜩 당겼다가, 베면. 통짜 쇠로 만든 갑옷도 두부처럼 쪼갈라졌거든. ‘그 세계’에서는.”
“…그래.”
“그런데 여기선 안돼. 그 힘들은 꿈처럼 사라졌지. 왜? 당연하지. ‘여기’는 ‘우리’가 필요 없는 세계거든. 우리는 ‘그 세계’에서 선택받은 용사인거지, ‘여기’에서 선택받은 용사가 아니거든. 우리는 까놓고 말해서 ‘여기’에서는 ‘아무 것도’ 아니거든. 필요한 사람에게 필요한 힘이 가는 법이야. 우리는 여기에서 아무 힘도 없어. 아무런 자격도 없는거지.”
“하, 또 무슨 이야길 한다고. 그건 고작 이론일 뿐이야. 운명론이라고.”
“‘세계를 구하는 운명’을 겪고도 ‘고작’이라는 이야기를 할 수 있어? 그게 운명이 아니라면 뭔데? 뭘로 설명할 수 있어? 사실 이번 사건이 솔직히 큰 문제라고 생각되지는 않아. 나도 탐정짓거리는 그 세계에서 실컷해봤어. 늘 ABC 중 하나일테니 그 가능한 수를 줄여나가면 정답이 나온다고 생각했지만, 정답은 늘 D더라고. 그게 인간이 인식할 수 있는 한계인거지. 진짜 수사는 경찰들이 하는거야. 그게 진짜 방법이지.”
“…세번째로 묻는거지만. 왜 나온거야?”
“진짜 몰라서 물어? 넌 히키코모리가 정모를 왜 나올거라 생각하냐? 니 이야기를 진지하게 믿고 걱정해서? 그럴리가 있냐. 아니면 내가 귀환 용사라는 사실을 다른 사람들에게 폭로할까봐? 해라. 천번만번 해라.” 입술이 살짝 메말랐다. 마른침을 삼키고 말을 맺었다. “그런 이유가 아니었어. 맨날 같이 개드립치고 맞장구 치는 놈 얼굴 구경이나 하고 싶어서 나오는거지.”
잠시간 침묵 뒤에 백아는 “니 생각이 그렇다면야.” 말하곤 떠나버렸다. 나도 집으로 돌아왔다. 연락은 오지 않았다. 나도 보내지 않았다. 그 후 몇 일간 귀용넷에서도 백아의 모습을 볼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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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편은 내일 모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