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카로움의 바람
‘……그녀에게 날카로운 칼이 날아들었다. 그녀는……’
날카로움 : 내 이름은 날카로움이다. 사람들은 나를 칼이나 창 따위의 무기를 설명하기 위해 사용한다. 아니면 성격 따위를 묘사하는데에 사용하기도 한다. 날카로운 창. 날카로운 성격. 가끔은 얼굴 묘사에 사용되기도 한다. 그녀는 날카로운 외모를 가졌다.
그렇다. 나는 그 소설에서 자주 사용되었다. 그녀는 날카로운 외모를 가졌기 때문에 나는 자주 사용되었다. 사실 단순하게 나를 사용하는 작가의 어휘력이 떨어져서 나를 애용한 것 같지만, 그런 사실은 아무래도 좋았다.
나는 ‘그녀’ 를 묘사하는데에 가장 많이 사용되었다. 나는 내가 많이 사용된다는 것이 즐거웠고, 때문에 작가와 더불어 ‘그녀’ 가 좋았다. 그녀의 묘사 앞에는 늘 내가 따라붙었다.
하지만 지금. 나는 내가 그렇게 생각해왔다는 사실에 의문을 가지고 만다. 나는 내가 ‘많이 사용된다는 사실’ 때문에 그녀를 좋아하는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다. 내가 ‘날카로운 칼’ 로써 그녀를 찌르려하는 지금, 나는 분개할 수 밖에 없다. 칼을 날카롭게 만들어버린다면, 그녀는 틀림없이 죽을 것이다. 이 멍청한 작가는 날카롭다는 형용사만 갖다 붙이면 죄다 살인무기가 되는 줄 아는 작자다. 내가 더해진 칼은 분명 그녀를 죽일 것이다.
나는 돌연 눈물을 흘려버렸다. 나로 인해 그녀가 죽어야한다니. 오랜기간 그와 함께하면서 나는 그녀에게 정이 들었던 것이다. 슬펐다. 이제 다시 그녀가 이 소설에 나타나지 않을거라는 사실이 슬펐다. 이 작가가 아무리 3류 소설가라 한들, 2류 악당을 유령이나 귀신 따위로 등장시킬리 없다.
뭔가를 해야해.
나는 생각했다. 오랜시간 이 작가와 함께했다. 우리 사이엔 깊은 유대가 있었고, 그가 글을 쓰기도 전에 나는 내가 어디에 들어가야할지 정도는 알 수 있었다.
그래.
간절히 바란다면.
성공할지도 몰라.
나는 바라기 시작했다.
김작가 : 잠깐. 이 표현은 좋지않다. 날카로운 그녀에게 날카로운 칼이 날아들었다. 라니. 날카롭다는 표현 하나는 빼야 하는게 좋을 것 같았다. 나는 주저 없이 날카로움 하나를 제거했다.
그녀는 날카롭다는 사실을 잘 아니까. 칼의 날카로움을 부각시키도록 하자.
‘……그녀에게 날카로운 칼이 날아들었다. 그녀는 방패를 치켜 올렸지만 칼은 방패를 꿰뚫고 그녀의 복부에……’
그녀 : 아차!
놈의 검이 나에게 들이닥치고 있었다! 방패를 황급히 들었지만 막을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저 칼은 지나치게 날카로워 보였다.
죽을 때가 되니 이때까지의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친다. 아직 해보지 못한 일들이 너무 많다. 그래도 다행이다. 마왕성으로 가는 길은 나 밖에 모르니까. 저녀석들이 마왕성으로 가지는 못하겠지. 근데 저 녀석 예전에 처음 만났을 때 날 좋아한다고 했던 그 녀석 아닌가?
김작가 : 아차.
막 죽이려고 하니까 뭔가 좀 찝찝하다 싶어서 썼던 소설을 뒤적거렸다. 알고보니 그녀에게는 꽤 많은 떡밥을 깔아뒀던 것이 아닌가? 얼마전에 없던 여동생을 만들어버려서 얼마나 혼이 났던가?
나는 황급히 글을 수정했다.
‘……날카로운 그녀에게 칼이 날아들었다. 그녀는 방패를 치켜 올렸고, 칼은 방패에 꽂혀들어갔다. 칼은 방패를 관통하지 못했다. 그녀는 방패에 꽂힌 칼을 메이스로 내리쳐 부쉈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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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회가 기회인 만큼, 실험적인 소설을 많이 써봤다.
개인적으로는 짧은 시간 동안 쓴 것을 생각하면 괜찮다고 생각했다.
주제는 생존.
두 시간 판한대 중 남은 시간을 모두 쓴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