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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랑 가죽

코가 바닥에 닿을듯, 바짝 고개를 숙인 여자가 눈 덮인 산을 오른다.

오르는 길목도 짐승들이 오르는 길인지라, 행동이 궁금하여 가까운 가지에 앉았다.

“뭐하는 거요?”

“뭐냐 너는.”

여자는 고개도 들지 않고 눈알만 씰룩 올려 말했다.

“새님이로구나. 난 바쁘다. 벌레나 잡으러 가거라.”

“오늘은 이미 배를 모두 채웠구려.”

“에이, 심심한게로군.”

여자는 입을 비죽내밀고 제 할일을 계속한다.

“심마니요?”

“내 행낭을 봐라.”

“달랑거리는군. 텅 비었어. 풀냄새도 안나구.”

나는 의아해졌다가 말했다.

“그럼 땅꾼이오?”

“내 행낭을 보래도.”

“비늘 냄새도 안나지만, 종일 허탕을 쳤을지도 모르잖수.”

“흠…”

나는 여자에게서 묘한 분위기를 느꼈다.

“혹시 새잡이요?”

이제야 여자는 고개를 들었다.

“허어, 왜 그리 생각하느냐?”

“우리 새들은 호기심이 많지. 그러고 고개를 숙이고 암것도 안한다, 관심가지지 마러라, 이러면 또 관심이 가지. 새잡이들이 그런 수를 쓴다고 또 어디서 들었수.”

“넌 머리가 좋구나?”

“칭찬 고맙구려.”

여자는 가로저었다.

“아니, 아무튼 나는 새잡이도 아니다. 새잡이라면 내 허리에 칼이 아니라 활을 차고 다니겠지.”

“사냥꾼이구려. 아니지, 사냥꾼인데 왜 활은 차지 않는담.”

“사냥꾼은 맞다. 활로 잡을 필요가 없어서 그렇지.”

“어떤 사냥감이 사냥꾼을 보고 도망가지 않는단 말이요?”

“간혹 멧돼지가 달려들고 곰이나 호랑이는 여간하면 달려들지 않더냐?

“그럼 잡으려는 게 곰이나 호랑이요? 그럼 창을 들지 그러우.”

“곰과 호랑이는 아니다. 그보다 더 무시무시한 놈이지.”

여자는 다시 바닥에 코를 붙였다.

또 말이 없다.

“도대체 뭘 쫓는 거요?”

“내 숙적의 발자국.”

“오…”

여자는 착실하게 앞으로 나아간다.

나는 앉고 있던 가지를 옮긴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기에?”

“사냥을 갔다가 기이한 괴물을 찾았다. 사람 같기도 허고, 늑대 같기도 했지. 굉장히 사납더군.”

“그래서? 어찌했수?”

“죽였다. 털이 실해 보여서.”

“값은 좀 받았나?”

여자는 콧바람을 냈다.

“봇짐장수한테 말하니 한푼 주긴 커녕 되려 액운을 떼줄테니 돈을 내놓으라더군. 그건 낭랑(郎狼) 가죽이라고. 자기는 서녘에서 본 적이 있는데 가지고만 있어도 원념으로 저주를 받는다더군. 그래서 자기가 잘 아는 큰 스님한테 가져다줄테니 돈을 내놓으라고 구슬리는 거야.”

“허어. 사기꾼이로구려.”

“그래. 장사치들은 다 그렇지. 그래서 놈 코피를 내주었지. 그제야 줄행랑을 치더군.”

여자는 하하 웃었다가, 다시 표정이 굳었다.

“왜 그러시우?”

“근데 봇짐장수 말이 사실이긴 하더군.”

“액운이 붙었소?”

“정확히는 액운이라기 보단… 놈도 짐승이라지만 짝이 있었던 모양이지.”

“낭랑의 짝지 말이우?”

“그래.”

여자는 울분에 찬듯 이를 간다.

커다란 송곳니가 드러난다.

“아마 낭랑 가죽을 가지고 있었던 게 탈이었나. 아마 그걸 보고 집을 찾아온 모양이지. 일어나보니 낭랑 가죽도 사라졌고.”

“놈이 찾아온 거요?”

“찾아오다마다.”

여자는 주먹을 불끈 쥔다.

“놈은 내 지아비를 찢어죽였으니, 내 어찌 복수하지 않고 숨 쉬고 살랴?”

여자는 화를 이기지 못하고 내가 앉은 나무를 친다.

나는 날고, 여자는 마른 나무에서 떨어지는 눈을 다소 뒤집어 쓴다.

“당신은 어디에 있었기에?”

“나는 자고 있었지.”

“바로 옆에서 말이우?”

“그래.”

“모르고 있었수?”

“몰랐지. 놈이 노린 것이 그것일테니.”

여자는 회백색 머리털에서 눈을 툴툴 털어낸다.

“반쯤은 사람을 닮았으니 사람처럼 생각한게지. 너도 짝 잃은 슬픔을 겪어보라고.”

“이해가 되는구려.”

“이해? 너도 주제에 금수라고 금수편을 든단 말이냐?”

“아니, 그렇지 않수? 일을 먼저 저지른 건 그대고…”

“망할놈!”

여자가 돌을 집어 던진다.

아슬아슬하게 날개죽지 아래로 스친다.

나는 높이 난다.

여자는 씩씩거리다가 분이 풀린듯 다시 발자국을 찾기 시작한다.

나는 높은 풍경 위에서 산을 내려다본다.

여러 발자국들을 발견한다.

“그래서 이 산을 뒤지고 있는 거요?”

“그래. 낭랑 발자국을 여기서 찾았으니, 놈은 분명 가까운 곳에 있다. 조만간 찾을 수 있겠지.”

나는 말을 할까 말까 망설인다.

다시 나뭇가지에 앉는다.

“혹여나…”

“왜?”

“뒤 좀 돌아볼 생각은 없수?”

“아서라. 이제 새놀음에 뺏길 시간은 없다. 훠이훠이.”

여자는 손사레를 치고 이제 네 발로 바닥을 짚는다.

이제 여자는 짐승처럼 보인다.

늑대 같기도, 인간 같기도한.

커다란 근육으로 엉금엉금 기면서 수풀 사이로 전날 온 눈 위의 미세한 발자국을 찾는다.

그러다 큰 흔적을 발견한듯 여자는 고개를 넘어간다.

나는 여자 대신 뒤를 돌아본다.

여자가 네 발로 남긴 발자국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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