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로
모두가 달이 오고 있다는 걸 알았다.
들플과 벌레 같은 미물부터 산군들까지.
땅을 딛고 사는 것들은 하늘을 우러러보고, 창왕(蒼王)들은 비행을 접고 높은 바위산 위에 걸터 앉는다. 그저 두려운 눈으로 달이 오는 걸 본다.
별잡이들은 이번 달이 가장 가까울 것이라 예견하였다.
그 말은 사실이었다.
지금까지 달은 하늘의 3할을 가릴 정도였지만 오는 달은 이미 4할을 넘어서고 있었다.
바람이 달을 향해 솟구쳤고, 벌레들이 휘말려 올랐다.
치솟아 오른 흙먼지와 낙엽, 벌레들은 이윽고 우리가 있는 맞이산을 지나쳐 계속해서 올라갔다.
희미하고 거대한 기둥이 우리 땅과 달로 이어지고 있었다.
와송은 넙적한 바위에 앉아 웃었다.
“저 해충들이 벌 받는 걸 봐라.”
“정화가 시작되었습니다.”
“준비는?”
“완벽합니다.”
“못난놈.”
그 말에 와송의 아들 와후가 의아하게 물었다.
“왜 그러십니까?”
“달님에게 인간의 완벽에 성에 찰 것 같으냐? 완벽은 쓸모가 없다. 그저 최선을 다해라. 원념만이 달님에게 닿는다.”
“아. 죄송합니다.”
와후는 금새 꾸벅 숙인다. 웃어른을 존경하는 청년이다.
와송이 묻는다.
“최선을 다했느냐?”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럼 능히 닿겠구나.”
“달님만이 아시겠지요.”
그 말에 와송이 빙긋 웃는다. 와후는 예의를 알 뿐만 아니라 배우는 것도 빠르다. 확실히 달에 도전할 자격을 갖추었다. ‘여행자’답다.
달이 더 커지고 있다.
다른 부족들은 별잡이들의 말을 듣고 여행자를 여럿 두었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우리는 예년과 같은 둘이었다.
나와 와후.
둘 다 여행자가 될 시험을 통과했다.
달은 더 가까워졌다.
이미 하늘을 가득히 메워서, 달이 얼마나 하늘을 차지하고 있는지 논하는 것이 의미가 없다.
보이는 것만이 전부도 아니었다.
모두 달이 가까워짐에 따라 공유하는 감각이 있었다.
경신(傾身).
우리가 의식하기 전에 우리의 몸과 영혼이 이미 달에게 빼앗기고 있었다.
성질이 급한 뿔치 부족은 제자리 뛰기를 시작했다.
본래라면 제 정강이만큼 밖에 못뛰는, 집채만한 부락타가 제 키를 훌쩍 뛰어넘어 솟아오른다. 고삐가 풀려 신이 난 육고기같다.
와후는 또 웃는다.
“멍청한 놈들. 신났군. 저러다 다리가 부러지면 마지막 도약을 어찌하려고. …너흰 제단 위로 올라가 마지막 정비를 시작해라.”
나와 와후는 고개를 끄덕인다.
지금까지는 부족의 도움을 받았지만 제단 위로 올라갈 수 있는 건 이제 나와 와후 뿐이다.
맞이산 정상에서 다시 제단 위로.
허리 높이에 오르는 가파른 계단이지만 오르는 것은 수월하다.
점점 더 쉬워진다.
어찌나 쉬운지, 달이 우리를 끌어당기고 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마지막 세 단은 단번에 뛰어 넘는다.
잘못하면 제단을 넘어설 뻔하지만, 와후가 내 허리를 잡아챈다.
“괜찮습니까?”
“고마워.”
제단 위에서 마지막 정비를 마친다.
모두 계획대로다.
준비는 끝났다.
우리는 와송의 신호만을 기다린다.
와송은 창왕들의 깃털을 엮어 만든 깃발을 손에 쥐고 있다.
우리는 저 깃발이 손에 오르는 것만 기다린다.
누군가 외친다.
“뿔치 오릅니다!”
그에 따라 모두의 시선이 옮겨진다.
뿔치 부족의 염원을 담은 목소리가 아련하게 들려온다.
“뿔치! 달로!”
“달로!”
“솟아라!”
“닿아라!”
제단 위에는 거대하게 솟은 원통이 있다.
그 원통 끝에 부락타가 올라간다.
원통 아래에는 거대한 심지가 있고, 뿔치의 부족장이 불꽃을 붙인다.
제단 위에서 와후가 외친다.
“부락타!”
들리지 않을 거릴텐데도, 부락타가 흔드는 손이 보인 것 같다.
“달에서 보자!”
부락타고 있던 거대한 원통, 달을 향해 가는 기둥 끝에서 거대한 폭발이 일어난다.
뿔치의 제단은 달로 갈 때마다 파손된다.
이번에는 그 어느 때보다도 큰 상처를 남겼다.
그 누구보다도 빨리, 원기둥이 솟아오른다.
우리의 시야를 지나, 달을 향해간다.
부락타는 시야에서 곧 사라진다.
달을 향한 것은 틀림없으나 달에 도달했을지 어떨지는 알 수 없다.
도달했더라도, 그 시간 동안 부락타는 달이 허용되지 않는 압력을 받아내야 할 것이다.
뿔치 부족은 연연하지 않는다. 여행자는 떠났다. 다음 여행자를 떠나보내야 할 때다.
와후가 말한다.
“이번에 뿔치는 열 개를 준비 했다던데.”
“그만한 여력이 있나?”
“쥐어짜냈겠지. 별잡이들이 우리 생에 달님이 제일 가까워진다고 했으니까. 이번 여행을 끝내면 뿔치는 당분간은 달로 여행자를 보내지 못할거야.”
나는 고개를 끄덕인다.
가볍게 제단에서 튕겨져 올라본다.
이미 달에게 모든 것을 빼앗긴 것 같은 느낌이다.
나의 존재가 남아있는지 어떤지 의아스럽다.
와송이 제단 아래에서 외쳤다.
“아직 이르다!”
나는 알겠단 뜻으로 팔을 흔든다.
다음은 고래 부족이다.
뿔치와 같이 화약을 쓰지만 그들은 직접 여행자를 쏘아보내지 않는다.
고래 부족은 포구를 달로 향하고 폭력적으로 쏘아댄다.
하지만 쏘아내는 것은 대포알이 아닌 거대한 돛이다.
돛의 끝에는 가볍고 튼튼한 벌레실로 짠 사다리가 짜여있다.
돛은 금새 시야를 지나쳐서 달로 나아가지만, 사다리가 어디까지 이어져있는지는 알 수 없다.
사다리가 달까지 이어지지 않았다면, 사다리를 오르던 이들은 모두 땅으로 우수수 떨어질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고래 부족에게 언제나 감내하던 일이었다.
“저 욕심 때문에 달은 끝까지 허락하지 않을 거야.”
“맞습니다. 하지만 누군가, 달에서도 이쪽으로 돛을 던저 이어줄 수 있다면…”
“그러기 위해서는 누군가는 달로 가야하지.”
“우리가 갈겁니다.”
와송이 외친다.
“준비해라!”
우리는 그렇게 한다.
뿔치는 폭죽.
고래는 사다리.
우리는 날개다.
와송이 외친다.
“지금!”
우리는 연습한대로 바닥을 밀어찬다.
몇 번째인지 모를 뿔치 부족의 원기둥과 고래 부족의 사다리가 솟아오르고, 우리는 그 사이로 뛰어든다.
우리는 날개를 조작한다.
와송은 완벽한 기술자다. 제대로 작동한다.
인간은 창왕 흉내를 낼 수 없지만 달맞이 날만큼은 다르다.
유일하게 창왕이 될 수 있는 날이다.
날개를 퍼득이며 창왕 흉내를 낸다.
달을 속인다.
우리를 앞서 갔던 기둥들과 돛을 지나친다.
땅으로부터 불어와 달로 가는 바람이 우리의 염원과 같다.
맞이산이 조막만하게 보이고, 공기가 차가워진다.
호흡이 가빠진다.
우리의 땅이 달과 같이 둥근다는 걸 안다.
와후의 머리에 서리가 끼는 걸 본다.
내 머리칼이 깨어지며 나도 같다는 걸 알게 된다.
우리는 두 손을 붙잡는다.
우리 땅과 달의 가운데, 그 언저리까지 왔다.
“부족해.”
“아직 모릅니다.”
“알 수 있어. 달님이 멀어진다.”
와송은 초조하게 고개를 끄덕인다. 그는 자신을 속이지 않는다.
“당신이 더 가볍습니다.”
“그래서?”
“당신이 가야만 합니다.”
나는 내 욕망을 숨기지 못하고 고개를 끄덕인다.
“내가 가야해.”
“돕겠습니다. 발을 당기십시오.”
나는 와송이 무엇을 하려는지 알았다.
달맞이를 할 때마다 와송과 연습한 적이 있었다.
우리는 서로의 발을 겹친다.
나는 달을 보고, 와송은 땅을 본다.
나는 와송을 잠깐 내려다본다.
“기다리고 있을게.”
와송이 웃는다.
그는 내 발을 밀어찬다.
동시에 나도 솟구쳐 오른다.
아니, 나는 눈을 깜빡인다.
나는 존재를 되찾고 있었다. 무게가 돌아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내 땅의 것이 아닌 달의 것이었다.
달은 내가 거절할 새도 없이 나를 허락하고 있었다.
눈물이 새어나왔다.
저기, 우리 먼 선조들이 기다리는 저 초록의 땅으로.
나는 돌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