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빛이 좋아
“나는 달빛이 좋더라. 왜 이렇게 좋은지 모르겠어.”
녀석이 하늘에 둥실 떠있는 달을 보고 중얼거렸다. 나는 맞장구 쳐주었다.
“시니컬한 좆고딩이면 다크한걸 좋아하기 마련이거든. 나도 달 좋아한다.”
녀석은 당황했다.
“아, 아니 그런게 아니라……”
“딱히 그런게 아니더라도 밤은 인간을 감상적으로 만든다는 연구 결과가 있기는하지. 실제로 보름달이 뜨는 날 범죄나 사고가 더 많이 난다는 말도 있고. 영 헛소리는 아냐.”
“으음. 그래서 그런가. 그런데 너 되게 유식한척 잘한다?”
“……시끄럽다.”
우리 둘은 멍청하게 하늘을 보며 하교했다.
곧 갈림길에서 녀석과 헤어졌고, 나는 터벅터벅 가로등 빛을 받으며 골목을 걸었다. 나는 이 주택 단지를 넘어, 사거리를 넘고, 아파트 단지까지 가야했다. 더럽게 멀었다.
그런 긴 하교길이라 그런지 종종 사건을 만나곤 했다. 아마 녀석과 헤어지고 그걸 만난 것도 그런 류의 사건이 아닌가 싶다.
나는 하교길에 살인사건과 마주했다. 음. 정확히는 살인을 하고 있는 장면이었다. 시커먼 괴한이 칼로 어떤 아가씨의 배를 찌르는.
다행이라면 평소의 나는 걸음소리를 내지 않는다는 것과, 마침 내 쪽의 가로등은 불이 꺼져있어서 그 괴한은 아직 날 보지 못했다는 점이었다.
괴한은 여자의 입을 틀어막고, 벽으로 밀쳐 칼을 몇번이고 내지르고 있었다. 칼이 빠져나올때 마다 피가 분수처럼 솟아나왔다. 실로 끔찍한 광경이었지만, 일단 살고 보자는 생각이 먼저 떠올랐다. 아, 사실은 살고보자는 생각은 두번째다. 첫번째로 떠오른 생각은, 얼마전 부터 뉴스에서 열심히 떠들던 연쇄 살인마에 관한 이야기였다. 거의 테러에 가까운 무차별 연쇄 살인으로 유명했는데,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어두운 골목을 혼자 걸어가는 사람이 있으면 그저 찔러죽인다는 이야기였다.
이 생각을 떠올리고나니 살고보자는 생각이 떠올랐다.
아까도 말했듯, 괴한은 아직 날 발견하지 못하고 여자의 배를 찌르는데에 열중하고 있었다. 나는 그 틈을 타서 슬금슬금 뒷걸음질쳤다.
나에 대해서 만큼은 아직 상황이 괜찮은것 같았다. 괴한은 여전히 나를 눈치채지 못했고, 나는 거의 골목을 돌아서고 있었다. 조금만 더 돌아 나온뒤, 열심히 달린다면 괜찮을터였다.
그래서 여유가 생긴 탓인지, 나는 세번째 생각도 떠올렸다. 오늘이 보름달이라 이런 사건도 생기는구나 하고. 아까 말이 씨가 된게 아닌지 고민도 되었다.
이쯤에서 문제가 발생했다.
문제는 누군가가 버렸을 깡통이었다. 그게 왜 발에 채이는건지 원.
칼 휘두르는 소리와, 여자의 신음 소리만 미약하게 들리던 골목길은, 아니지. 괴한이 변태처럼 씩씩 대기도 했다. 여튼 그런 조용한 골목길은 깡통 구르는 소리에 요란해졌다.
괴한은 “누구냐!” 하고 말해주지 않았다. 단지 여자를 놓아주고, 천천히 나를 향해 돌아설 뿐이었다. 우리는 잠시 대치했다. 어떻게 생각해도 답이 없는 상황이었다. 나는 달리기가 그렇게 빠른편이 아니었고, 괴한과의 거리도 멀지 않았다. 주택가이긴 하지만 빛이 몇 개 없는 걸로 봐서는 소리를 질러도 ‘잠 좀 자자!’ 이런 식의 대구나 들을 것 같았다. 나는 괜시리 야자를 시키는 학교가 미워졌다.
여튼 잠깐의 침묵 후, 괴한과 나는 약속이나 한듯 움직이기 시작했다.
나는 뒤돌아 도망치고, 괴한는 날 쫒았다.
달리는 도중에 그래도 소리는 지르는 편이 좋겠다 싶어서 “도와주세요!” 를 연발하며 골목을 달렸다. 어디선가 “잠 좀 자자!” 하는 목소리가 들려온거 같기도 했지만, 주택가는 대체로 조용했다. 포장이 제대로 되지 못한 골목길의 모래를 밟는 부스럭 소리가 나란히 들렸다. 숨이 차올랐다. 다행히도 괴한의 달리기 속도는 그다지 빠른 것 같지 않았지만 엄청나게 끈질겼다.
문득 나는 내가 어디로 달리고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때문에 주춤했고, 발을 잘못 내딛었고, 왼발이 오른발에 걸렸고, 차르르, 미끌어지고 말았다. 나는 그때도 “도와주세요!” 를 외치고 있었지만 몇 없는 불빛들은 그저 침묵했다.
넘어진 상태로 일어서려고 하늘을 보자 괴한이 우뚝 서 있었다. 그 너머로 달이 아련하게 빛나고 있었다.
괴한이 칼을 내질렀다. ‘아! 이제 죽었구나!’ 싶었다.
이상하게도 죽지는 않았다. 괴한과는 다른 누군가가 달빛을 가리고 있었다.
등만 봐도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 친구인 그 녀석이었다.
괴한은 순간 당황한듯 했지만 칼을 녀석에게 찔러보였고, 녀석은 괴한의 팔을 비틀어보였다. 태권도랑 합기도, 유도, 등등 단수가 10이 넘는다고 자랑하던 녀석이 생각났다.
하지만 싸움은 단수로는 해결되지 않는듯 했다.
친구는 괴한의 오른팔을 비틀었지만, 괴한은 왼팔로 어디서 꺼냈는지 모를, 날카로운 칼을 빼들었다. 나는 “안돼!” 하고 외쳤지만, 칼은 친구의 옆구리를 찔러들어갔다.
친구는 픽 쓰러졌다. 괴한은 헉헉 거리고 있었다. 이제야 말로 정말 끝이구나 싶었다.
그때였나.
언제부터인지 몰라도 구름에 가려졌던 달빛이 다시 빛을 보이고 있었다. 주변이 눈에 띄게 밝아졌다. 달빛은 샛노랬다.
순간 퍽하는 소리가 났다. 뭔가 크게 부러지는 소리였다.
그리고 괴한이 나떨어지는 모습도 보였다.
괴물 한마리도 같이 보였다. 두발로 서있기는 한데, 주둥이가 좀 길고 털도 좀 많았다. 꼭 개처럼 보였는데, 녀석처럼 몸이 좀 두꺼워 보였다.
새삼스럽게 아까의 대화가 떠올랐다. 달빛이 좋다고 했던가, 친구?
괴한은 여전히 일어서지 못했고, 녀석은 늑대 인간이 되어 있었다. 내가 어떻게 해야될지 망설이고 있을 때, 녀석이 손을 내밀어보였다.
“아, 땡큐.”
나는 녀석의 손을 잡고 일어섰다.
달빛은 여전히 골목길을 덮고, 괴한은 조용하게 널부러져 있었다. 나는 친구와 나란히 서 있었다.
또 다시 이런 상황에서 엉뚱한 생각이 떠올랐다. 녀석은 어렸을때 부터 운동을해서 여간 키가 크지 않았지. 그래서 맨날 놀렸는데…….
나는 녀석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너 키좀 컸다?”
녀석은 아무 말 없이 입꼬리를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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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는 월광.
정줄놓고 쓰는데에는 점점 도가 트는거 같다.
아무렇게 3, 40분 투다닥 쓰니 5k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