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행
갑과 을이 함께 걸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객관적으로 볼 때 ‘함께 걸어가고 있다’는 표현은 부적절 했다. 갑이 을의 앞으로 일 점 오 미터 가량 앞서 걷고 있었기 때문이다.
갑이 멈춰서며 말했다.
“야, 너 빨리 안 올래?”
을 또한 멈춰서며 말했다.
“좀 천천히 걸으세요.”
서로가 서로를 못마땅한 표정으로 노려보았다.
갑이 말했다.
“니 걸음이 느린거지. 내 걸음이 빠른거냐?”
“아뇨. 제 걸음은 평범한데 그 쪽이 유난히 빨리 걷는거죠.”
사실 둘 다 틀렸다. 갑은 보통 사람들 보다 걸음이 빠른 편이었고, 을은 보통 사람들 보다 걸음이 느린 편이었다. 어떻게 보면 둘 다 맞는 말이기도 했다.
갑이 물었다.
“그래. 내 걸음이 빠르다 치자. 그럼 빠른 사람에 맞춰 느린 사람이 빨리 쫒아와야하는 거 아니냐?”
을이 답했다.
“아니죠. 걸음이 느린 사람이 있으면 빠른 사람이 걸음을 늦춰 느린 사람한테 맞춰줘야죠. 걸음이 느린데 어떻게 쫒습니까?”
갑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야. 생각을 해봐라. 목적지 까지 가는데 빠른게 낫냐, 느린게 낫냐? 빠르면 도착해서 느긋하게 쉴 시간이 생긴다. 근데 느긋하게 걸으면? 뭐가 남냐. 걸음이 느리면 뛰어서라도 쫒아와야지.”
을이 미간을 좁히며 말했다.
“말도 안되는 소립니다. 누구는 걷는데 누구는 뛰라니요. 느리게 걷는 사람이 뛰는 것 보다, 빨리 걷는 사람이 걸음을 늦추는게 더 쉬운일이라는건 누구라도 알걸요. 그리고 느긋하게 쉴 시간이란거 말인데, 힘 빼지 않고 느긋하게 걸으면 느긋하게 쉴 필요도 없다 이겁니다.”
갑은 을 떼어놓고 먼저 가버릴까 생각해본적도 많다. 근데 그건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안 될 일이었다. 을의 느긋한 걸음은 그 성격에서 비롯된다. 인적 없는 산길에서 느긋하게 걷다간 이빨 큰 짐승들이 잡아채갈게 분명했다.
을은 갑을 떼어놓고 느긋하게 걸어볼까 생각해본적도 많다. 근데 그건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안 될 일이었다. 갑의 바쁜 걸음은 그 성격에서 비롯된다. 저렇게 바쁘게 걷다간 마을에 금방 당도할테고, 을을 기다리면서 병나발을 불테고, 다른 나발쟁이와 시비가 붙을테고, 칼부림이 날 테였다.
둘은 옥신각신 하다가 시간이 많이 흘렀음을 알았다.
해결책이랍시고 두 손 꼭 마주잡고 걸어 가봤는데 손에서 땀만 나지 좋을게 하나도 없었다. 갑은 빨리 걷지못해 안절부절 못했고, 을은 평소보다 빨리 걷느라 비지땀을 흘렸다.
둘은 금새 손 놓고 따로 걸었다.
갑은 종종 멈춰서서 을을 기다렸고, 을은 종종 뛰어 갑을 따라잡았다.
그리고 더 가끔씩 빠른 걸음과 느린 걸음을 주제로 다시 다투었다.
그 때마다 해결책이랍시고 두 손을 꼭 마주잡고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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