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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봇청소기가 되었다

아진은 죄를 짓고 로봇청소기가 되었다.

아진이 유폐 행성 알토에서 처음 만난 친구인 키위는 아진을 위로하며 로봇청소기 정도면 복권에 당첨된 것이나 다름없다고 말했다.

“우선은, 가고 싶은 곳에 마음대로 갈 수 있다는 게 제일 크지. 공기청정기나 전자렌지 같은 게 되어보라고. 답답해서 어쩔 거야?”

아진은 며칠 간 아르바이트로 모은 돈으로 음성출력기를 달고 난 뒤에야 겨우 키위에게 대꾸할 수 있었다.

“하지만 빌어먹을 계단도 오르내리지 못하잖아.”

“그건 나중에 돈 벌어서 달면 되지.”

“자네도 돈 벌어서 단 건가?”

“맞아.”

키위는 특별히 ‘무언가’라고 부르기 힘든 기계였다.

동그란 동체에 두 개의 다리가 달려 있었고, 정면에는 분명 발칸포로 보이는 포구도 가지고 있었다. 전체적인 생김새가 키위로 보여서 그렇게 불렸지만, 원래 무슨 기계인지는 짐작하기 어려웠다.

“난 여기 왔을 때 컴퓨터였어.”

“컴퓨터?”

“그래.”

“그럼 어떻게 돈을 벌지?”

아진은 로봇청소기인 자신에 대해 늘상 투덜거렸다. 하지만 키위의 말대로 일하기 좋은 몸인 것은 사실이었다.

둥글고 넙적한 몸체에 무언가를 얹으면 물건을 배달할 수 있는데다 속도도 제법 나온다. 계단을 오르내리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완만한 경사 정도는 이동할 수 있어서, 유폐 행성에 제대로 정착해나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 쯤에는 ‘여기서 로봇청소기 정도면 괜찮은 거 아닌가’ 하는 부정하고 싶은 마음이 쑥 내밀어지곤 했다.

키위가 말했다.

“컴퓨터들은 주로 계산 외주를 맞지.”

“뭐야, 썩 괜찮은데? 그걸로 돈 벌어서 나중에 팔다리 하나씩 붙이고. 자네처럼 하면 되잖아?”

“하지만 문제는 알토 같은 유폐 행성에 맞겨지는 일감은 죄다 싸구려인데다, 컴퓨터가 너무 많아. 유폐 행성에 직접적으로 돌아가는 경제 생활을 해야 크레딧 벌기가 수월한데, 그런 식으로 돈을 버는 건 인내심이 필요하지.”

“자넨 여기 몇 년이나 있었는데?”

“230년.”

“저런. 물어봐서 미안하군.”

“미안할 것 까지야. 아직 300년 남았어.”

키위 정도면 알토에서 잔뼈가 굵은 로봇인데다, ‘치안조정부 3팀 팀장’이라는 그럴듯한 직함도 있었다.

“공식 직함인가?”

“‘공식?’ 그건 아니야. 폐허의 주인인 잡동사니 칸다가 나한테 일을 맡긴 셈이지.”

“칸다?”

“1천년 동안 이 땅에 있었던 장기복역수지.”

“이런.”

“칸다가 직접 말한 적은 없지만, 몇 백년 단위 도시 재생 사업에 큰 관심을 가지고 여러 일들을 벌이고 있는 걸 보면… 다들 예측하기론 아마 비슷한 시간 더 있어야 할 것 같다더군. 괜찮으면 나중에 인사를 시켜주지. 좋은 일을 소개 받을지도 몰라.”

“고맙군. 그런데 흠, ‘위’에선 신경쓰지 않나?”

로봇청소기인 아진은 별다른 동작을 할 수 없었지만, 키위는 하늘을 바라보았다.

하늘에는 교도선 한 척이 느릿하게 이동하고 있었다. 지상에 있는 만들다만 것 같은 정크머신들과 공산품임이 분명한 원시적인 구조의 고대 기계들과 달리 유선형의 제대로 된 기계라는 걸 한 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이 행성의 모두가 모두가 저 배를 타고 떠나는 날을 기대하고 있었다.

키위가 말했다.

“교도관들은 거의 손을 대는 일이 없어. 몇 가지 예외 사례를 제외하면 장기복역수들이 만드는 질서를 두고보고만 있지. 장기복역수들은 모범수가 되고 싶어하거든. 공식적이지는 않지만 교도관들은 힘 있는 장기복역수들에게 몰래 접근해서 형량을 줄여주는 제안을 해준다나 봐.”

“예외 사례는 뭔데?”

“그리 많지는 않은데, 교도관들이 불편해할만한 과학 기술을 추구하면 관심을 좀 받겠지. 하지만 그리 걱정할 건 없어. 희토류는 교도관들한테 넘겨야하는 불법 자원인데, 이게 장기복역수들이 교도관들한테 잘 보이려고 비싸게 사들이거든. 그걸로 뭘 해보겠단 놈들 보다는 그냥 넘겨주고 좋은 몸으로 개조하길 바라는 친구들이 많지.”

“관심이 가는 걸.”

“자네도 여기가 살만하다는 걸 알게 될 거야.”

아진이 키위에게 속았다는 걸 알게 되는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키위가 소개해준 폐허의 배달업무는 다른 지역보다 2할은 크레딧을 덜 받는 일이었고, 키위는 소개비도 몰래 받아챙긴 상태였다.

당연하지만 아진은 여기까지 알아차리고 그냥 멍청한 로봇청소기 흉내를 계속 했다.

키위에게 욕을 하며 따지거나 당장 이 일을 때려치우겠다고 하지 않는 것이다.

‘생각보다 폐기 되는 로봇이 많아.’

그건 아진이 폐허에서 배송하는 물품으로 알 수 있었다.

아진은 로봇청소기의 몸 출력이 되는대로 물건을 실다보니 알게 된 것인데, 잡동사니 칸다와 그 부하들에게 제법 많은 양의 로봇 폐기물이 이동 되고 있었다.

그 중 일부는 온전한 것으로, 아진이 보기에 모범적인 유폐 생활을 보내고 난 뒤 마인드는 본래 있던 자리로 돌아가고 남은 껍데기였다. 보통 교도관들이 정체성 보존법에 따른 마인드 해체 작업을 하고 되돌린 다음 그대로 둔 몸들인데, 먼저 발견하는 게 임자였다. 수형생활이 오래될 수록 고가 부품이 남아 있는 경우가 많아 인기가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은 그렇지 않았다.

부서지거나 망가졌다.

밤마다 폐허에 총소리가 들리거나 웅웅거리는 열선이나 폭발음이 들리는 건 흔했다.

낮이 되면 다들 제대로 일을 하고 도시처럼 규칙이 생기는 걸 보면 질서라는 게 있긴 하지만 그 질서를 바로 잡는 방식이 뭔지는 알 것 같았다.

다행인 것은 아진은 특별히 욕심이 없었다는 점이었다.

순박한 바보, 정말 눈에 보이는 그대로의 로봇청소기 마냥 행동했다. 개조도 거의 하지 않았다. 얼마되지 않은 월급으로 추진량이나 바퀴 정도만 바꾸었다. 그 모습을 보고 키위는 나중에 가서는 아진이 원래 사람이 아니라 정말 로봇청소기였던 것마냥 대하기도 했지만 결과적으로 잘 대해주었다. 적당한 호구라면 단물만 빼먹으면 그만이지만 제대로 된 호구라면 옆에 붙여두는 것이 이득이라고 본 것이다.

물론 아진은 그것도 시간 문제라는 걸 알고 있었다. 이 키위 주변에는 다른 로봇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키위의 두 다리는 시시한 물건이 아니라서, 제자리에서 십 수 미터는 뛰어오를 정도의 각력이 있었고 발톱을 움켜지면 1센치미터 강판도 우그러트릴 수 있었다. 게다가 아진은 자신의 붉은 센서로 키위의 발칸포가 불을 내뿜는 걸 본적도 있었다. 그 성능은 보기보다도 대단해서, 500년 동안이나 개조를 이어온 집채만한 탱크를 박살내버릴 수 있었다. 장약이 로켓추진임이 틀림없었다.

아진은 얼마 안되는 돈을 받으면서 잘 숙이며 지냈다.

키위가 선심을 써서 아진에게 ‘거미다리’라고 부르는 바퀴와 병행 가능한 개조를 달아줄 쯤엔 아진은 폐허에서 키위의 심부름꾼으로 이미 유명해져 있었다.

“이제 자네도 번듯한 다리가 생겼군.”

“덕분이야. 이렇게 계단도 오르내릴 수 있고. 음, 이제 TV 리모컨 조작도 되겠는걸.”

“지금까지 무선으로 채널을 바꾸지 않았던건가?”

“그냥 나오는 채널을 계속 봤지. 교도선 경유해서 들어오는 통신이 자꾸 바뀌어서 지루하진 않았어.”

“…당장은 좀 비싸겠지만 쾌감센서 같은 걸 다는 것도 좋을 거야. 시간 보내기엔 그게 제격이거든.”

키위가 말하는 쾌감센서는 유효기간이 있는 암호화된 데이터를 입력하면 글자 그대로 쾌감을 느끼는 센서를 의미했다. 문제는 잘못만지만 마인드가 망가질 가능성이 있었다. 망가지지 않더라도, 쾌감센서 사용에 중독되면 크레딧을 쏟아내다 빚쟁이로 전전하게 될 것이다. 심지어 저렇게 말하는 키위는 쾌감센서가 없었다.

‘슬슬 이 친구가 날 보내려고 작정하는군.’

아진은 웃어넘겼다.

아진의 걱정은 거의 사실이었는데, 키위는 내심 아진이 마음에 걸리고 있었다.

자신의 발 하나로 우그러트릴 수 있는 로봇청소기에 불과한데다 틀림없이 호구 중의 호구고 시키는 일은 다 하는 ‘따까리’에 불과한데도 자신의 주변에 얼쩡거리는 게 이상했다. 특히나 키위는 자신의 성격을 버텨내는 인간이란 본적이 없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래서 그가 키위로 알토에 남아 있는 것이었다.

키위는 아진을 처리하면서도 수익을 짭짤하게 벌 수 있을 적당한 때를 물색했는데 곧 기회가 왔다.

형기가 700년 정도 된 몸체가 구역 내에서 발견 된 것이다. 틱택토라고 불리는 친구로, 키위도 원래 알고 있었다. 전체적으로 봤을 때 삼다리 같이 생긴 친구였는데 허리 부분부터는 회전하는 팔이 아홉 개 달려 있었고 그게 이름의 연유였다. 원래 폐허 구역 출신이 아니었는데, 자기 출소일도 정확히 몰라서 다들 언제 가는 건지 어떤지 모르고 있어서 다들 건드리지 않고 있었다. 운이 좋게도 자기 보스의 심부름을 하다가 키위의 구역에서 떠나가버린 것이다.

더 중요한 것은 다른 누구보다도 키위가 그것을 먼저 알았다는 것이다.

본래라면 키위는 자신의 구역에서 나온 물건이라면 당연히 잡동사니 칸다에게 바쳐야했다. 잡동사니 칸다는 게걸스럽게 폐기물을 수집할테고, 적당한 수고비를 키위에게 준다.

‘하지만 이걸 나혼자 처리하면 훨씬 많이 먹지.’

키위는 이미 몇 번이나 비슷한 일을 해왔었다. 잡동사니 칸다가 머저리는 아니었지만 키위도 영악했다. 키위는 자신이 언제나 안전한 지점과 그렇지 않은 지점을 잘 안다고 생각했다. 아무렴, 이 빌어먹을 유폐 행성에서 이렇게나 끈덕지게 견뎠지 않나?

키위의 계획은 이랬다.

물건을 해체한다음 아진에게 넘기고, 브로커에게 보낸다.

그리고 잡동사니 칸다의 다른 부하를 보내 현장을 급습한다.

‘좋아. 그럼 아진 그놈이 칸다에게 해체 당하는 사이 나는 나머지 물건을 처리하면 되는 거지.’

키위는 아이디어가 생각나자마자 물건을 질질 끌고 아진을 찾아갔다.

“처리해야 할 물건이 있어.”

“뭐야? 틱택토 아냐? 이 친구 승천했나?”

“교도관들이 떠나자마자 내가 업어왔지.”

“그럼 칸다 씨한테 가는 물건이군.”

“그렇지. 그런데 바로 보내지 말고, 다른 친구 하나 경유할 거야.”

“경유?”

아진이 되묻자 키위는 묻지말고 좀 하라고 발톱으로 쥐고 흔들고 싶었지만, 간단히 변명이 생각났다.

“마인드를 담아둔 용기가 특별한 부품이거든. 칸다한테 물어보니 간단한 처리를 해야해서. 그 물건은 자네가 배달할 거야.”

“그래? 이건가?”

아진은 거미다리로 틱택토 위에 기어올라가 전면판을 떼어내 속을 들여다봤다. 마인드가 들어있던 자리는 텅 비어 있었다. 아진은 그 주변부를 가리켰다.

“이 주변 말인가?”

“맞아. 완전해체 할 건 없고, 상체부만 따로 옮기면 될 거야.”

“알겠어.”

“보낼 주소는 조금 있다가 알려줄게. 출발 할 때 연락하고. 나머지 물건은 여기 늘여놓도록해.”

“그래. 수고하게.”

키위는 오랜 혹도 떼어내고 벌이도 벌 수 있어서 기분이 좋아졌다. 키위는 오랜만에 사격장에 가서 시간을 보낸 뒤, 아진에게서 연락이 올 때 쯤 움직였다.

그다음 칸다의 다른 부하인 잘리니에게 연락해서 아진이 갔을 주소로 보내두었다.

하지만 잘리니에게 연락이 왔을 때 키위는 의아해졌다.

“뭐?”

“없다고. 아무것도. 여기 무슨 ‘수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거야?”

“음, 그래? 아무 일도 없다니 다행이지.”

“고작 기분 때문에 나보고 오고가라고 한 건 아니지?”

“아니, 그건 아냐. 알아보고 연락하지.”

키위는 기분이 식는 것을 느꼈다.

‘굳이 깔끔하게 보내주려고 작전을 짰는데 여기서 선수를 쳐? 미친 거 아냐?’

키위는 아진의 작업장으로 이동했다.

거기엔 아까 분해를 맡긴 틱택토가 고스란히 그 자리에 남아 있었고, 심지어 열어두었던 가슴판도 다시 조립되어 있었다.

“아니 어쩌자고 이 자식은! 야! 아진! 너 어딨어?”

키위는 작업장의 부품대나 선반을 걷어차면서 로봇청소기 아진을 찾아내려했다.

그러다가 구석, 틱택토의 거체가 가려진 그림자 아래 로봇청소기의 둥근 원반이 있는 걸 알았다.

“니까짓게 숨어봤자지. 너 이 자식 무슨 생각이야?”

키위는 아진에게 저벅저벅 걸어가서는 총구를 들이밀었다.

아진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겁먹었나? 응? 왜 일도 제대로 하지 않고?”

키위는 자신의 발톱으로 아진을 움켜쥐어 들어올렸다.

“말 좀 하라고 이 자식아. 왜 나를 물 먹이는 거야?”

그때서야 키위는 뭔가 이상하다는 걸 느꼈다.

로봇청소기에는 영혼이 없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키위는 자신이 그렇게 느낀 이유가 로봇청소기가 생각보다 가볍다는 느낌이라는 걸 알았고, 로봇청소기의 불도 꺼졌다는 걸 알았다.

“응?”

틱택토는 갑자기 움직였다.

세 개의 팔로 부리를 붙잡고, 다음 여섯 개의 팔로 두 다리를 각각 잡았다.

느닷없이 허공에 붙들린 키위는 허우적거렸지만 틱택토의 팔은 힘이 세기도 하지만 충분한 탄력이 있어서 가볍게 버텨냈다. 키위가 발칸포가 불을 뿜었지만 박살내는 것은 작업장의 벽면 뿐이었다.

“뭐야! 뭐야 이 자식! 이거 안 놔?”

“내 이럴 줄 알았지.”

틱택토가 말했다.

하지만 음성의 주파수는 키위가 익히 알던 아진의 것이었다.

“뭐야? 너 어떻게…”

틱택토는 발칸포를 감아 쥔 손 하나로 자신의 가슴판을 열었다.

없어야할 마인드의 자리는 차있었다.

아진이었다.

키위는 깜짝 놀랐다.

“마인드 해체 이동 기술은 교도관들 밖에 못 해!”

“내가 그 교도관 출신일 거라고 생각해본 적은 없나?”

“교도관이 도대체 왜 유폐 행성에…?”

“죄를 지었으니까.”

아진은 간략하게 말했다.

사실 아진은 키위가 적당히 맞춰주기만 한다면, 오래 사귈 생각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 유폐 행성에서 처음 만난 친구가 생각보다 성격이 많이 고약했고, 앞으로 잘 지내보기에는 곤란하다는 걸 알았다. 그에게는 이 행성에서 오랜 시간 해야 할 일이 있었다. 시시껄렁한 왈패 기분을 언제까지고 맞춰줄 수는 없었다.

‘그래도 기다리길 잘했어. 이런 호기가 찾아오다니. 멍청하긴.’

아진은 틱택토의 몸으로 키위가 충분히 버틸만하다는 걸 알았다.

“걱정할 것 없어. 그리 오래 걸리진 않을테니까.”

“오래 걸리지 않다니?”

아진은 틱택토의 팔을 조작해 키위의 뚜껑을 땄다.

오랜시간 관찰했으니 마인드가 어디있는지는 잘 알고 있다.

─

“혹시 연락 기다리고 있었나?”

“기다리다마다! 잡동사니 카코가 기다리고 있어.”

“카코가? 왜.”

“틱택토가 우리 구역에서 승천했단 소문이 있어.”

“아, 그건이군. 마침 잘 됐군.”

“잘 됐다고?”

“방금 내 따까리 하나가 틱택토를 빼돌리려는 걸 잡았거든.”

“뭐야, 그런 일이 있었나. 그럼 우선 내가 카코에게 말해두지. 그래도 직접 보고 말은 해야 할 거야.”

“물론. 나도 기대하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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