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rae.me

리모컨을 찾아줘

케이가 말했다.

“젠장. 제이!”

분노와 허탈함이 반절씩 묻어나는 목소리였다. 나는 부엌에서 아침을 준비하고 있었다.

내가 말했다.

“왜? 무슨 일이야?”

“리모컨이 또 없어졌어.”

“잘 찾아봐. 쇼파 바닥에 없어?”

“없어.”

“탁자 위에는?”

“없어.”

“또 니가 깔고 앉은거 아냐?”

“아냐. 제이제이제이제에이이! 와서 같이 찾아줘.”

잠시 한숨을 쉬고 말했다.

“나 요리하고 있는거 안보여?”

“거실에선 안보여.”

“어쨌든 나 요리하고 있으니까. 텔레비젼이 보고 싶으면 텔레비전 앞으로 가서 전원 버튼을 눌러.”

“멀어. 이미터는 넘을거 같아.”

나는 가스렌지를 약불로 낮추고, 슬리퍼를 끌면서 거실로 들어가, 텔레비전을 켜고, “됐지?” 하곤 다시 부엌으로 돌아왔다.

가스렌지 앞에서 뒤집개를 잡으려는데 다시 케이가 말했다.

“잠깐. 제이!”

“또 무슨 일이야?”

“리모컨이 없잖아.”

“텔레비전은 켜졌잖아?”

“채널을 돌려야지.”

나는 다시 거실로 나왔다.

“좋아. 내가 돌려줄께. 뭐가 보고 싶어?”

“뉴스.”

“그래.”

나는 채널 버튼 몇 번 눌렀고 아나운서가 나오는걸 확인하곤 다시 부엌으로 돌아왔다.

가스렌지의 화력을 다시 올리는데 또 케이가 말했다.

“제이!”

“케이! 나는 아침을 준비하고 있는데 니가 이렇게 자꾸 부르면 오늘 아침은 엉망진창이……” 하고 말하다가, 그냥 가스렌지 불을 끄고 거실로 나왔다.

“좋아. 그래. 또 무슨 일이야? 다른 채널이 보고 싶어? 다큐? 영화? 쇼?”

케이가 심드렁한 눈길로 나를 올려다봤다.

“모두 아니야. 리모컨을 찾아줘.”

나는 주위를 빙 둘러봤다. 리모컨은 보이지 않는다.

“그냥 보고 싶은 채널을 말해. 그럼 돌려줄께. 어디 박혀있는지도 모를 리모컨을 찾는 것 보다는 그게 낫지 않겠어?”

“아니. 아냐.”

“왜?”

“왜냐고? 니가 리모컨에 대해서 뭔가 잘 모르는 모양인데. 리모컨은 단순히 텔레비전을 끄고 켜거나 채널을 돌리거나 음량의 고저를 조절하는 도구가 아니야. 잘 생각해보라고. 텔레비전에는 모든게 들어있어. 당장의 도로 교통 상황부터, 사자가 사냥하는 모습과, 키마 마타르 만드는 법, 얼마전 개봉된 영화의 줄거리와, 그 영화에 나온 연기자의 연애사까지! 알겠어? 텔레비전은 모든 것이라고. 그리고 리모컨은 수 십개로 갈려진 그런 채널을 마음대로 오갈 수 있는 만능도구야. 신의 지팡이지.”

긴 말이 나왔기 때문에, 잠시 뜸을 들였다.

내가 말했다.

“그럼 내가 리모컨이 되면 되잖아.”

“뭐?”

“내가 니 리모컨이 된다고. 내가 대신 채널을 돌리고 소리를 올리고 줄이고 텔레비전을 켜고 끄고. 그럼 되는거잖아?”

“안 돼.”

“왜?”

“느려. 느리잖아. 너 빛보다 빨라? 리모컨은 레이저를 쏜다고.”

“그건 이해해주라. 사람이 빛 보다 빠를 수는 없잖아. 그만큼 빨라지도록 노력은 해볼게.”

“아냐. 난 인정못해. 그리고 노력해서 빨라져봤자 얼마나 빨라질까. 그냥 리모컨을 찾아줘. 이 근처에 있을거야. 리모컨이 발달려서 도망갔을리도 없을테니까 어딘가에 있을꺼야. 텔레비전 위에는 없어?”

나는 힐끗 봤다. 아무 것도 없다.

“없어. 아침을 먹고나면 니가 질릴때까지 채널 돌려줄께. 그때까지라도 참아.”

“내가 필요한건 니가 아니라 리모컨이라니까.”

“그래. 알았어. 그럼 아침 먹고나서 리모컨 찾아줄게. 일단 뭐라도 먹고하자고. 그정돈 기다려줘. 알겠지?”

케이는 묵묵부답. 내 얼굴만 빤히 바라봤다. 나는 그 얼굴을 내려다보다가 걸음을 옮겼다.

“잠깐.”

돌아봤다.

“왜?”

“가젤이 보고 싶은데.”

“좋아. 다큐 채널이지?”

“응.”

나는 채널을 돌리고나서 부엌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느긋한 마음으로 아침을 준비했다.

요리를 그릇에 모두 담아내었을때, 다시 거실로 돌아갔다.

“케이. 아침 다 됐어. 목발 줄까?”

“아냐. 그보다는, 안아줄 수 있지?”

“어렵지않지.”

실로 어려운 일이 아니다. 케이는 다른 사람 보다 가볍다. 나는 케이를 번쩍들어 식탁으로 데려가 앉혔다. 나는 케이의 맞은편에 앉았다.

케이가 음식을 맛보더니 말했다.

“와, 엉망진창이 될지도 모른다고 한 것 치곤 훌륭한 아침 아냐?”

“그거야 내 능력이 좋아서 그런거지.”

케이가 살짝 웃었다. 나도 웃었다. 웃으면서 주머니 속에 있는 리모컨을 만지작거렸다.


← 분실물  까마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