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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루에게

엄마가 말했어.

“나가! 다시는 돌아오지 마!”

그리고 문이 닫혔어.

나는 울고 싶었지만 그러지 않았어. 그건 엄마가 바라는 일이기 때문이야. 엄마는 내 울음소리를 듣기 위해서 나를 내쫓은 거야.

엄마는 내가 울다 지쳐 문을 열어달라고 하기를 기다리고 있는 거지.

그러면 엄마는 현관문을 열고 나와서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안아줄 거야. 그리고 미안하다며 간식을 주거나, 용돈을 주겠지.

나는 다 알고 있었어.

이제는 엄마의 계획대로 되지 않을 거야.

나는 우선 골목길로 나왔어.

혼자서 밤 늦게 나온 건 처음이라 무서웠어. 하지만 집의 창문으로 형광등 불빛이 보이니 용기가 났어. 엄마는 소파에 앉아 드라마를 보면서 내가 언제 울음이 터트리나 기다리고 있겠지. 그런 생각을 하니까 힘이 났어.

어디로 가야할지 몰라서 익숙한 길을 걸었어. 학교로 가는 길이었지.

주변의 풍경은 낮에 보는 것과는 달라서 신기했어.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가로등들이 벌 받는 것처럼 고개를 숙이고 바닥만 보고 있었어. 가로등 불빛이 없으면 어두워져서, 나는 가로등불 아래에서는 천천히 걷고 그림자 아래에서는 빠르게 걸었지.

뒤를 돌아보니 더이상 집이 보이지 않았어. 바닥에는 그림자가 나뉘어져서 희미했어. 아마 가로등 불빛이 나를 여러곳에서 비추고 있기 때문일거야. 문득 그림자가 나뉘어지는 게 무서워서 가로등 아래에서도 빨리 걸었어.

빠르게 걷는 걸로는 모자라서 달리기 시작했는데, 얼마 못가서 숨이 차서 멈춰야했지.

눈 앞에 낯선 건물이 보였어.

아니, 아직 건물은 아니었어. ‘건무’ 라고 할까. 짓다만 빌딩이었지. 다른 건물들은 모두 간판에서 빛이 나지만, 이 짓다만 빌딩은 캄캄했어. 학교 가는 길에 매번 보는 건물이지만, 어두워서 처음 보는 것처럼 느껴졌던 거야.

나는 공사장 안으로 들어가기로 했어. 엄마의 계획대로 하지 않기로 마음먹었거든. 그리고 공사장이라고 하면 어른들은 늘

“위험하니까 근처에 가면 안 돼!”

하고 소리 지르잖아? 나는 늘 궁금했어. 그렇게 위험한데 왜 어른들은 이런 곳에서 일을 하는걸까? 엄마는 내가 청개구리라고 말했지만, 어른들도 모두 거짓말쟁이야.

공사장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쇠로 만든 판자 사이를 파고 들었어. 안쪽이 컴컴했지만 많이 무섭지는 않았어. 무서운 느낌도 들지만 만화에서 나오는 동굴에 들어온 것 같았어.

바닥에 쓰레기가 수북했어. 생각해보니까 나도 공사 버린적 있는 것 같아. 문구점에서 사먹은 콜라캔을 휙 하고….

아무튼 만화에서 나오는 주인공들은 꼭 무서운 곳을 탐험하고 나면 보물을 얻잖아. 나도 이 공사장을 탐험하면 보물을 얻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어.

하지만 내가 다른 종류의 모험을 하게 될줄은 몰랐지.

“너 누구야?”

1층을 둘러보고 2층으로 올라가려는데 등 뒤에서 목소리가 들렸어. 너무 무서워서 꼼짝도 못했는데, 다시 생각해보니 목소리가 너무 귀여웠어.

돌아보니 갈색털을 한 닥스훈트 한 마리가 있었어. 닥스훈트는 몸이 길고 다리가 짧은 개를 말하는 거야. 하지만 내가 놀란 건 개가 말을 했다는 사실이 아니었어.

“마루야!”

닥스훈트는 1년 전에 잃어버린 우리 집 개 마루였어. 나는 마루를 들고 끌어안았어. 마루는 답답한지 나를 밀어내면서 말했어.

“성준아, 너였어?”

눈이 동글동글한게 마루도 나를 만나서 깜짝 놀란 거 같았어.

하지만 나를 만나서 크게 기뻐하는 거 같지는 않았어. 계속 내려달라고 칭얼거리는 바람에 나는 마루를 내려줬어. 생각해보면 알 것 같기도 해. 마루는 같이 산책을 갔다가 잠깐 한 눈을 판 사이에 다른 곳으로 가버렸거든. 마루는 나를 만난게 그렇게 반갑지 않을지도 몰랐어.

나는 조금 섭섭했지만, 마루가 말하는 게 신기했어.

“이건 꿈일까? 어떻게 마루 네가 말을 하는 거야?”

마루는 흥 하고 콧김을 내뿜고는 말했어.

“원래 동물들도 모두 말을 할 줄 알아.”

“거짓말. 내앞에서 한 번도 말한적 없잖아.”

“같이 이야기한적 있어. 네가 기억을 못하는 거지.”

마루는 계단을 올라가기 시작했어. 하지만 다리가 짧아서 올라가기가 힘들어보였어.

나는 마루를 들고 2층으로 올라가면서 말했어.

“다른 동물들은 나한테 말을 걸지는 않는걸.”

“그건 네가 동물과 말하는 법을 잊어버려서 그런 거야.”

“그럼 지금은 어떻게 너랑 이야기하는 거야?”

마루는 대답하지 않았어. 나는 마루가 말문이 막힌 거라고 생각했지. 하지만 그게 아니었어.

2층에는 온갖 물건과 동물들이 있었어.

스물네가지 색의 몽당 크레파스, 칠이 벗겨진 의자, 작은 아기 신발, 팔이 떨어진 로보트 장난감, 짝이 안 맞는 레고. 분홍색 병아리….

그리고 그 물건과 동물들은 모두 내가 잃어버렸던 것들이었어. 하나하나 볼 때마다 기억이 나서 오랜만이라고 인사했어. 물건들은 말은 못했지만 내가 손을 흔들면 폴짝폴짝 뛰면서 몸으로 인사를 받아줬어.

옆에서 마루가 말했어.

“여긴 잃어버린 것들이 오는 장소야. 잃어버린 것에는 저런 물건이나 동물 친구들도 있지만, 보이지 않는 것도 있어.”

“아, 나는 동물이랑 말할 줄 아는 방법을 잃어버렸다가 방금 되찾은 거구나.”

병아리와 거북이가 나한테 와서 인사를 했어.

“안녕, 성준아!”

하지만 병아리는 이름을 붙여주지 전에 잃어버려서 이름이 없었어. 나는 병아리에게 뭐라고 인사를 해줘야할지 몰랐어.

“성준아 기억하니?”

“응? 뭐가?”

“네가 내 이름을 지어주기로 했었는데….”

“아, 그러면 지금 지어줄게!”

나는 병아리에게 ‘분홍이’라고 이름을 지어줬어. 분홍이는 내가 초등학교 앞에서 오백원을 주고 샀던 병아리였어. 병아리 장수 아저씨는 분홍색은 귀한 거라고 했거든.

분홍이는 고마워하며 다른 물건들에게 자기 이름을 자랑하러 갔어. 몽당크레파스들이 찢어진 도화지 위에 분홍이의 이름을 쓸 때마다 다른 물건들이 데구르르 굴렀어.

하지만 나는 마음 어딘가가 찝찝했어.

“이상하게 분홍이를 어떻게 잃어버렸는지 기억이 안 나.”

마루가 내 발목에 대고 킁킁거렸어. 그러고보니 마루 목에 있던 목걸이가 보이지 않았어. 마루도 목걸이를 잃어버린걸까.

마루가 말했어.

“잃어버린 걸 한 번에 다 찾지는 못해. 밥을 많이 먹으면 배탈이 나는 것처럼 조금씩 찾아가는 거야.”

“그럼 어떻게 찾아야하는데?”

“3층으로 올라가야 해. 높이 올라갈수록 더 중요한 걸 찾을 수 있어.”

“그럼 지금 올라갈래.”

내가 계단을 올라가려하니 마루가 내 바짓가랑이를 앙하고 물었어.

“왜 그래?”

“성준아. 잃어버린 걸 찾는 게 꼭 좋은 건 아니야.”

“왜? 너도 용기같은 걸 잃어버린 거야?”

나는 마루를 안아들고 3층으로 갔어.

마루는 하는 수 없다는 듯 한숨을 쉬었어.

3층은 더이상 공사장 같지 않았어. 노란 꽃무늬 벽지 때문에 나는 여기가 옛날에 살았던 집이라는 걸 알 수 있었어. 나는 과거로 와버린 거야!

내가 있는 곳은 엄마방이었는데 아무도 없었어. 하지만 방문 밖에서 누가 걸어오는 소리가 들려서 마루랑 옷장 속으로 숨었어. 아직 엄마와 마주칠 수는 없었거든.

옷장 문을 살짝 열고 엄마가 방 안으로 들어오는 걸 봤어. 들키면 어쩌지? 하지만 엄마는 손에 들고 있는 것만 내려다보느라 내가 숨어있는줄은 상상도 못하는 것 같았어.

엄마는 손에 들고 있던걸 조심스럽게 화장대 위에 올려두고는 서랍을 뒤지기 시작했어.

그건 분홍이였어. 분홍이는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어.

엄마는 서랍에서 예쁜 손수건을 꺼내고는 분홍이를 감싸서 다시 방을 나갔어. 답답한 옷장을 나오니 문 밖에서 누가 엉엉 울고 있는 소리가 들렸어.

마루가 말했어.

“성준아. 저건 성준이 네가 우는 소리야.”

“알고 있어.”

엄마는 분홍이를 데려가면서, 다시는 병아리를 사오지 말라고 말했어. 병아리 장수들은 모두 거짓말쟁이라고. 건강한 병아리 같은 건 없다고.

“돌아갈래?”

마루가 말하자 옷장 안에 내려가는 계단이 생겼어.

나는 조금 겁이 났지만 내려가고 싶지 않았어. 나는 청개구리니까.

나는 방문을 열고 나갔어. 방을 나갔는데 공원이 나왔어. 돌아봤지만 문도, 마루도 사라지고 없었어.

“마루야?”

공원은 해가 뜨고 구름이 없어서 밝은데도 아무도 없었어. 길을 따라가다보니 누가 벤치에 앉아 화를 내며 싸우고 있었어. 그건 어릴 때 나와 마루였어. 나는 벤치 뒤에서 나와 마루를 조용히 지켜봤어.

키가 작은 내가 마루의 목걸이를 풀더니 자리에서 일어나서 마루에게 말했어.

“가버려! 다시는 돌아오지 마!”

그리고 나는 마루를 떠나서 가버리고 있었어.

이제 모두 다 기억이 났어. 사실 가버린 건 마루가 아니라 나였던 거야. 말싸움을 하다가 화가 나서 마루에게 가버리라고 한 거야.

나는 키 작은 내가 멀리 가버리고 나서 마루에게 갔어.

내가 말했어.

“미안해.”

“괜찮아.”

나는 키 작은 내가 두고 간 마루의 목걸이를 다시 마루에게 걸어줬어.

마루가 말했어.

“이제 내가 했던 말뜻을 알겠어?”

“응.”

나는 눈물이 날 것 같았지만 꾹 참았어.

좋은 생각이 났기 때문이야.

“이제 집에 가고 싶어. 같이 가자.”

“나는 못 가.”

“왜?”

“넌 우리를 찾기 위해서 여기로 온 게 아니니까. 그게 규칙이야.”

“하지만 나는 여기 있잖아.”

그때 누가 내 이름을 불렀어.

“성준아!”

엄마 목소리야. 골목길을 걸어오며 나를 부르는 엄마가 보였어. 나는 이제 정말 가야한다는 걸 알았어.

“같이 가자. 응?”

“네가 여기 있을 수 있는 건, 엄마가 널 잃어버렸기 때문이야. 성준아, 어서 가.”

나는 공사장을 나가기 전에 마루에게 말했어.

“꼭 다시 올게. 마루야. 다음엔 널 찾으러 올게.”

하지만 나는 여기를 나가면 이 기억을 모두 잃어버릴 거라는 걸 알았어. 마루를 만난 것도, 분홍이를 만난 것도, 몽당 크레파스도. 모두와 인사를 했던 것도 잊어버릴 거야.

그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눈물이 흐르는걸 참을 수가 없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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