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진 생태계
처음에 걱정했던 것은 벌레가 아니라 지금 당장이라도 무너질 듯한 집의 외관이었다. 골목에서 보이는 담부터 금이 가 있었다. 시멘트로 대충 때운 티가 났는데 그게 더 불안해보였다. 시간차를 두고 서너 번은 때운 것 같았다.
녹슨 대문을 들어서면 그 정도가 더 심했다. 마당이랍시고 있는데, 잡초가 잔뜩 자라 내 허벅지까지 왔다. 정글에 와 있는 기분이었다. 이름 모를 벌레는 찌르르찌르르 노래를 해댔다. 흙에 반 쯤 파묻힌 벽돌 길을 밟으며 정면을 바라보면 집은 반 쯤 기울어져 보였다.
‘그래도 겉보기에 비해 집 안은 아늑했다.’ 같은 것도 아니었다. 집 안이 더 나빴다. 누른 벽지는 가구에 눌러 붙었다 뜯겨져서 벽면 곳곳은 회색 속살을 드러내고 있었다. 드러나는 시멘트 벽면의 실금이 간지러웠다. 가구를 들어내면 시퍼런 곰팡이가 날 반겼고(난 반갑지 않았다), 화장실엔 멀쩡한 타일 보다 부서진 타일이 더 많았다. ‘보기보다 상태가 심각하군요.’
무슨 이런 집에서 사람이 살 수 있냐고 중얼거릴 때, 이 집의 본질적인 문제가 내 눈 앞에 나타났다.
바퀴였다.
바퀴는 알맞게 살찌어 오동통해 내 새끼손톱 정도의 크기였다. 거무스름하지만 잘 보면 등딱지는 고동색에 가까웠다. 더듬이가 쉴 새 없이 까딱였다. 바퀴는 책상 위에 있었다. 큰 문제처럼 보이진 않았다. ‘벌레가 많다더니 정말 많은가보네. 오자마자 마주치다니.’
도망갔다면 딱히 잡을 생각도 안 했을 텐데 바퀴는 나를 보고도 도망가지 않았다. 나는 놈을 어떻게 처리해야 좋을까 고민하다가 휴지를 뜯어 잡았다. 그리고 화장실로 가 변기에 던져두고 물을 내렸다. 놈은 휴지 사이를 겨우 빠져나왔으나 변기 물과 직면했고, 열심히 헤엄치며 노력했지만 결과적으로 미끄러운 변기 내벽을 오를 순 없었다. 물을 내리자 놈은 빙글빙글 도는 소용돌이 속으로 모습을 감추었다. 시작부터 통쾌한 승리로군. 나는 손을 탁탁 털면서 방으로 들어갔고, 바퀴 두 마리를 더 만났다.
외종이 온 시각은 저녁 열 시 십 분 쯤 이었다. 외종은 현관 바닥에서 바퀴를 잡고 있는 나를 놀란 눈으로 보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아, 오빠 오늘 온댔지. 짐 다 풀었어?”
나는 흐르는 땀을 손등으로 닦으며 대답했다.
“아니. 짐이 문제가 아니라……. 집에 벌레가 뭐 이렇게 많아? 잡아도잡아도 계속 나오잖아.”
“오빠 몇 시에 왔는데?”
“오후 네 시.”
외종이 시계를 힐끔 보더니 말했다.
“여섯 시간 동안 짐도 안 풀고 그러고 있었어?”
“벌레가 계속 나오잖아.”
“난 안 잡는데. 아빠도 안 잡고.”
“그럼 어떻게 살아?”
“그냥 사는 거지 뭐. 벌레 많이 싫어하나보네. 아빠가 이야기 안 했어?”
“그, 듣기는 했는데.”
“이렇게 많을지는 몰랐다고?”
“응.”
“안 되는데 그러면. 여기 뒤에 야산 있잖아. 거기서도 계속 넘어오는 것 같고. 뒤쪽에 음식점 있잖아. 거기서도 넘어오는 것 같고. 이야기 들어보면 이 동네가 음기가 쌔서 원래 벌레가 많기도 했다고도 하고. 그리고 이 집 오래됐잖아. 이야기 들어보면 금간 틈새에도 벌레가 들어가 살 수 있다네. 그래서 벌레가 많아. 잡아도잡아도 계속 나오고. 그냥 같이 사는 수밖에 없지.”
가방을 맨 외종이 나를 빤히 보다가 말했다.
“오빠 네 시부터 그러고 있었으면 밥도 안 먹었겠네.”
“응.”
“같이 밥이나 먹자.”
하지만 외종이 말한 것처럼 ‘그냥 사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외가의 바퀴들은 내 다리 위에서 뭘 찾는 건지 매일매일 내 다리를 올랐다.
바퀴벌레가 벽을 타는 모습은 약간의 혐오감만 감내하면 된다. 그 정도는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바퀴벌레가 벽이 아닌 내 다리를 타는 모습을 보는 건 끔찍한 경험이다. 감내할 수가 없다. 지저분하고 불쾌한 촉감의 바퀴가 옷 안으로 들어가는 상상까지 하게 되면 등골이 오싹해져 몸서리를 쳐대며 바퀴를 떨쳐내는 것이다.
그런 내 모습을 본 외종은 천 슬리퍼 하나를 사왔다.
“이걸 신으면 좀 나아.”
나는 격렬한 포옹으로 감사를 전하고자 했으나 외종은 사양했다.
“그런데 주의할 점.”
“뭔데?”
“신을 때 마다 슬리퍼 안을 잘 봐야해.”
“왜?”
“따뜻해서 바퀴벌레가 가끔 들어가 있거든.”
물론 집안 벌레의 문제가 바퀴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소파에 앉아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을 때였다. 과자봉지 하나를 뜯어 반쯤 먹다가 잠들었다. 누가 몸을 흔들기에 깼다. 외종이었다.
“오빠. 자려면 방에 들어가서 자야지.”
“아, 고마워.”
“근데 과자봉지 저거 버려야겠다.”
“음. 덜 먹었는데.”
잠에 덜 깨서 어지러웠기 때문에 소파에 좀 더 누워있었다. 몸을 뒤척이나 자리에서 일어나니 외종은 방에 들어가고 없었다.
입이 심심해져 무심코 과자를 하나 집어 들었는데, 과자봉지를 버리라는 이종의 말이 생각났다. 덜 먹었는데 왜? 눅눅해져서?
집어든 과자를 이리저리 돌려가며 잘 살폈다. 뭔가 묻어 있지는 않았다. 단지 위쪽 부분이 갉아 먹히기라도 한 듯 둥그렇게 깎여있는 게 이상했다. 제공 과정에서 생길 수 있는 문제…… 같은걸 생각하다가 과자봉지 안을 들여다봤다. 개미 몇 마리가 더듬이를 탁탁 두드리며 움직이고 있었다.
나는 집은 과자를 조용히 봉지 안에 넣고 봉지 입구를 접은 뒤, 쓰레기통에 던져 넣었다.
이런 일도 있었다. 소파에 누워 있다 무심코 시선을 던지니 외종의 다리가 보였다. 처음엔 별 생각이 없었는데, 외종이 걸어가는 진로 앞에 무당벌레 한 마리가 앉아 있어 눈여겨보게 되었다. 이럴 때는 외종에게 말을 해주는 것이 올바른 행동이겠지만, 나는 그다지 올바른 사람이 아니었다.
한 발자국, 두 발자국. 외종은 무당벌레를 밟았다. 그렇지만 무당벌레는 워낙 작다보니 지저분하거나 불쾌한 기분이 들지는 않았다. 되려 불쌍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혹시 바닥에 자국이 남을까 싶어 외종이 발 때는 것을 기다렸는데, 외종은 그러지 않고 우뚝 멈춰 섰다.
고개를 드니 외종이 날 바라보고 있었다.
“오빠. 나 뭐 밟았어?”
“어, 음.”
“그냥 말해.”
“무당벌레.”
외종은 슬리퍼를 벗어서 바닥을 바라봤다. 그리곤 휴지로 꼼꼼하게 닦아냈다. 나는 괜히 멋쩍어져 말했다.
“무당벌레를 밟았는데도 느낌이 나?”
“계속 신다보면 이것저것 많이 밟거든. 나중에 보면 막 슬리퍼 바닥이 엄청나진단 말이야.”
“엄청나진다고?”
“벌레 시체 같은 걸로.”
나는 소파에서 몸을 일으켜 내 슬리퍼를 바라봤다. 평범한 체크무늬 슬리퍼다.
“어쨌든 그런 거 보면 속이 안 좋아지니까, 밟을 때 마다 닦아내버리는 게 좋거든. 그걸 자꾸 신경쓰다보면 익숙해지고. 쬐끄만 걸 밟아도 알 수 있는 거지.”
“그렇구나.”
“오빠는 지금까지 슬리퍼 바닥 본 적 있어?”
“아니.”
“안 보는 게 좋을걸.”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문득 외종이 농담을 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역시 보고 싶은 용기는 생기지 않았다.
사실 이야기를 꺼내자면 끝이 없다. 사람이 멀쩡히 살고 있는 집 모서리에서 집을 치고 있는 거미, 형광등을 갈다 발견한 날벌레 시체들, 모기를 잡으려다가 파리를 잡아버린 일 등등.
외가에 왜 그렇게 벌레가 많은지는 알 수가 없었다. 외종의 말대로 바로 집 뒤에 야산이 있는 것과 식당이 가까운 것, 옛날부터 동네에 벌레가 많았다는 이야기나 집이 낡은 것도 그럴 듯 했지만 내 생각엔 집에 사람이 있는 시간보다 비어있는 시간이 더 많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되었다.
외종은 고등학생이었고, 외숙은 사업으로 역시 늦었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직장을 구했기 때문에 외가로 온 것이었고, 수습사원에게 칼퇴근은 먼 이야기였다. 그러니 스물 네 시간 중 집에 사람이 있는 시간은 여덟 시간 정도가 전부였고, 나머지 삼분지 이는 비어 있었다. 정확하게 하자면 벌레들이 차지하고 있었다. 이쯤 되면 사람 집이 아니라 벌레 집이라 해도 큰 문제가 아닌 듯싶다.
그렇다고 집주인 자리를 벌레에게 준다는 것은 아니다.
외가의 낡은 밥솥은 외숙이 열 번째 결혼기념일 날 샀다고 했다. 오래쓸 것을 염두하고 샀다곤 했지만 십여 년 가까이 쓰는 것은 역시 무리였다. 수명이 다 되면서 밥이 잘 지어지지 않은 건 물론이고, 내가 온 뒤 전보다 많은 밥을 짓던 밥솥은 뿍뿍 김을 내더니 뻥 하고 터져버렸다. 밥솥을 살펴본 외숙은 “그래도 밥은 되겠다.” 말했다.
밥솥 뚜껑 닫기가 힘들어지고 밥알이 좀 꼬들꼬들해졌지만, 확실히 밥은 되었다. 외종의 경우엔 라면에 밥 말아먹기엔 꼬들밥이 더 좋으니까 밥솥은 잘 고장 났다고 까지 말했다. 나도 불만은 없었다. 밥솥을 사게 된다면 얹혀사는 내 쪽에서도 아무래도 부담을 하게 될 것이고, 헌 밥솥도 밥이 잘 되는데 굳이 새 밥솥을 고집을 필요가 없었다.
밥을 하는 당번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니지만 보통 가장 일찍 일어나는 것은 외종이었기 때문에 열흘 중 일고여덟 번은 외종이 지은 밥을 먹었다. 그렇지만 그날은 어쩐지 잠을 설치다 새벽녘에 깨었고 내가 밥을 짓게 되었다. 혹시나 쌀통에 다른 벌레가 있을지 유념했고 쌀을 씻을 때도 자세히 살폈다. 분명 밥솥을 닫을 때 까지 만해도 벌레는 없었다.
해가 더 높이 뜨고 외종과 외숙이 일어났다. 밥솥은 삑삑삑 소리를 내며 밥이 다되었음을 알렸다. 간만에 지어본 밥이 잘되었을지 기대했던 나는 밥솥 뚜껑을 열었을 때 몸이 굳고 말았다. 하얀 쌀밥 위로 시커먼 바퀴벌레가 죽어 있었다. 밥솥 안의 열기로 푹 쪄버린 바퀴는 껍질의 연결이 헐겁게 되어 있었고 갈색 빛 진물이 밥알에 물들어 있었다.
내가 그러고 있자 외숙이 와서 슥 밥솥 안을 보았다. 외숙은 혀를 차더니 “밥솥이 고장 나더니 틈이 생겼나보다.” 하고 말했다. 그리곤 바퀴가 있는 주위를 크게 떠서 음식물 쓰레기통에 갖다버렸다. 그리곤 밥그릇에 밥을 떴다.
“드시게요?”
“밥 아깝잖아.”
나는 밥을 먹지 않고 집에서 나왔다. 아침을 굶고 회사에 가니 일이 잘 되지 않았다. 상사에게 꾸지람을 받았다. 점심 먹을 시간도 없이 일하다 결국 점심도 놓쳤고, 일은 더 힘들어졌고, 상사에게 더 꾸지람을 받았다. 하루 종일 면박만 받던 나는 모든 문제를 벌레로 귀결시켰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밥솥과 더불어 갖가지 해충약를 사왔다. 외종은 한 꾸러미 가득 물건을 사들고 들어오는 나를 보고 말했다.
“오빠 뭐야 그거?”
“밥솥.”
“그거 말고.”
“해충약. 벌레 싹 다 잡을 거야.”
“안 될 텐데…….”
“야. 해보지도 않고 사람이 어떻게 알아?”
외종이 뭐라 더 말하려고 하자 나는 단호하게 귀를 막으며 방 안으로 걸어가 사온 것들을 풀어놓았다. 마침 다음 날 부터 주말이었다. 들러붙는 것, 먹으면 죽이는 것, 닿으면 죽이는 것, 놓으면 죽이는 것…… 등등 많았고 나는 주말을 깨끗하게 반납한 뒤 그것들을 뿌리고 붙이고 설치했다.
벌레는 일주일간 종적을 감춘 듯 찾을 수 없었다.
그리고 일주일이 지나자 벌레들이 다시 바글거렸다. 허탈감에 뭐라 할 말이 없었다.
외종이 말했다.
“내가 말했잖아. 소용없다고. 아빠랑 나도 이런 거 안 해본 줄 알아? 회사에서 사람도 불러보고 그랬는데, 그 사람들도 여기 집 말고 옆집뒷집 다 정리하지 않는 이상은 안 된다고 그랬어. 집 자체도 너무 낡았고. 그냥 포기하는 수밖에 없다니까.”
외종이 위로하는 투로 계속 말했다.
“오빠. 이런 건 마음가짐이 중요한 거야. 이렇게 생각해봐. 집은 하나의 생태계인거지. 오빠도 배웠지? 생산자. 소비자. 분해자. 생산자에는 초목 등이 있고, 소비자에는 초식동물이랑 육식동물. 분해자에는 균류나 미생물 같은 것. 생산자는 외부 환경으로 부터 에너지를 얻고, 소비자는 그런 생산자 혹은 같은 소비자에게서 에너지를 얻고, 분해자는 생산자와 소비자의 부산물인 유기물에서 에너지를 얻지. 그리고 우리 집에 생태계를 그대로 대입시킬 수 있어.”
“어떻게?”
“일단 사람부터. 사람은 외부 환경이야. 일종의 닫힌계인 집에서 외부로부터 에너지를 들고 오는 요소지. 실제 생태계에선 이 역할을 하는 건 태양이야. 우리 집에선 오빠하고 나, 아빠지.”
“나는 빛이 안 나는데?”
“아니지. 오빠 맨날 과자 사들고 오잖아.”
“그게 왜?”
“계속 들어봐. 오빠가 과자를 사왔잖아.”
“응.”
“그럼 오빠가 먹지?”
“응.”
“근데 흘릴 때도 있지?”
“그렇지.”
“흘린 건 누가 먹어?”
“개미?”
외종이 손뼉을 짝 쳤다.
“바로 그거야. 외부 환경에서 비롯된 생산물(과자한테 생산자라고 할 수는 없으니까)이 바로 과자인거지. 이런 생산물은 과자뿐만이 아니야. 음식 찌꺼기나 과일 껍질은 거의 바퀴나 개미, 모기 등등 거의 모든 벌레가 먹고, 화장실을 사용할 때 생기는 물때 같은 것도 초파리가 먹어. 그리고 암컷 모기는 피를 빨고, 피부 각질이나 머리카락도 진드기 같은 벌레가 먹어. 벌레들은 생산물에 대한 소비자인 셈이지.”
나는 어쩐지 불쾌해지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그럼 분해자는?”
“정확히 하자면 청소자야. 집안 생태계에선 분해자가 필요 없거든. 어차피 에너지는 사람이 무한히 가져오니까. 집안의 청소자는 청소기와 휴지통이라고 볼 수 있지. 동떨어져 보이기도 하지만 청소로 환경을 깨끗하게 만드는 건, 주위 환경, 그러니까 인간의 건강을 지키는 일이니 충분히 생태계의 한 요소라 볼 수 있지.”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외종이 말했다.
“결국 집안의 벌레들이 자꾸만 나타나는 건 집에 사람이 살기 때문이고, 사람이 집에 사는 이상 벌레들이 집안에 꼬이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인거야. 오빠도 너무 상심하지 말고 그냥 받아들여. 뭐든 마음가짐이 중요하다니까.”
외종은 내 어깨를 탁탁 두드리곤 방으로 들어갔다.
외종의 집안 생태계론은 그럴듯해보였다. 아마 외종의 말대로 마음먹기에 따라 이 집에서 잘 살아갈 수 있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마음 한쪽에서 돋아나는 불편함을 지워버릴 수가 없었다. 잘은 몰라도 이 나라엔 벌레 때문에 고생하며 사는 집 보다 그렇지 않은 집이 더 많을 텐데, 뭐하러 사서 고생을 해야 한단 말인가. 뭣보다 나는 외종과 외숙이 시도하지 않았던 가장 원론적인 마지막 방법이 있음을 알고 있었다.
나는 외숙에게 말을 꺼냈다.
“집 보수 공사 하죠.”
신문을 보던 외숙은 나를 슥 쳐다봤다.
내가 말했다.
“제가 알아봤거든요. 보니까 이런 낡은 집은 돈 몇 백 줘야한다고 하긴 하는데, 일단 공사만 끝나면 완전 새 집이 된다는 겁니다. 벌레가 기어 나올 틈새 같은 것도 전혀 없어지고요. 일단 제가 먼저 이야기를 꺼낸 거니까, 제가 절반을 내겠습니다. 회사도 찾아보실 필요 없고, 제가 다 알아서 하고요. 보수 기간 동안엔 잠깐 월세 방에 살던지 해야 될 것 같은데, 그것도 제가 알아보고 부담하겠습니다. 사실 제가 얹혀살면서 따로 도와드렸던 것도 없잖아요. 이번에 보수 공사하면서 도와드릴 수 있을 것 같은데.”
외숙은 크흠 목을 가다듬으며 다시 신문으로 고개를 돌렸다.
외숙이 말했다.
“됐다. 필요 없다.”
좀 더 기다려봤지만 다른 이유나 설명도 없었다. 이후에 몇 번 더 이야기를 꺼냈지만 외숙의 반응은 썰렁할 뿐이었다. 사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정말 이 집 사람도 아니고, 정말 불편한 것은 외숙 자신일 텐데도 보수 공사에는 부정적 태도를 보였다.
이에 대해 외종이 말했다.
“엄마 때문에 그래.”
“외숙모?”
“응. 엄마랑 결혼하고 돈 같이 모아서 샀던 집이래. 나는 잘 기억이 안 나는데 엄마가 그렇게 좋아했었다네. 그래서 그럴 거야. 밥솥도 그랬잖아. 결혼기념일 날 샀다고 십 년 동안 쓰고.”
나 또한 어머니에게서 외숙과 외숙모가 그렇게 금술이 좋았었단 이야기를 들었었다. 외숙모가 돌아가시고 외숙이 그렇게 쓸쓸했었다고. 외종이 있어도 채워주지 못하는 부분이 있다고. 외가로 올라가면 외숙 좀 잘 챙겨드리라고.
내가 말했다.
“그럼 이 집 사고 손을 한 번도 안 댄 거야?”
“그럴걸. 우리 집 담벼락 있잖아. 거기 보면 막 시멘트 아무렇게나 발려져있고 그렇잖아. 그것도 우리 집이 바른 거 아냐. 옆집에서 위험해 보인다고 발라준거지.”
“그래?”
그럼 포기를 해야 하나.
파리가 낮게 날며 맴돌고, 해가 지기도 전에 나타난 모기들이 귓가에 앵앵거렸다. 바퀴 한 마리가 내 존재를 무시하며 소파 앞으로 지나갔다. 나른한 몸을 뒤척이다 스르르 눈이 감겼다.
잠을 깨운 것은 뭔가 깨지는 날카로운 소리였다. 몸을 곧장 일으켜 부엌을 바라봤다. 인기척은 없었다. 잠에 취해 몽롱했고, 잠을 잘 때 귀가 눌려 좀 먹먹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런데 무슨 소리지? 바람이 불어서 뭔가 떨어졌나?
슬리퍼도 없이 무심코 부엌으로 걸어가다 뭔가를 밟았다. 발바닥이 화끈했다. 조각난 사기그릇이 부엌에 넓게 퍼져 있었다. 창문을 보니 닫혀 있었다.
전화벨이 울렸다. 깨진 그릇을 놔두고 어기적어기적 걸어가 전화를 받았다. 외종이었다.
“아, 오빠 괜찮아?”
잠긴 목소리로 대답했다.
“어? 뭐가?”
“방금 지진 있었잖아. 꽤 많이 흔들렸는데. 자고 있었어?”
“아, 응. 그래서 그릇이 깨졌구나.”
“그릇이 깨져? 괜찮아?”
“살짝 베였는데 멀쩡해.”
“그럼 작은 방에 구급상자 있으니까 약 바르고. 지금 티비 보고 있어?”
“아니. 왜?”
“여진이 있을 수 있으니까 되도록이면 집 밖에 나와 있으래.”
“그래. 그러지 뭐.”
“응. 그리고 또 우리 집은” 바스락. “하잖아.”
“뭐라고?”
바스락. 바스락.
전화기에서 들리는 소리가 아니라 귀 안쪽에서 들리는 소리였다. 소름이 돋았다. 귀에 벌레가 들어갔나? 무심결에 귀를 탁탁 쳤다. 벌레는 나오지 않았다. 외종이 무언가 계속 말했지만 계속 들리는 바스락 소리에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나는 나중에 다시 전화하겠다고 말하곤 전화를 끊었다. 벌레가 들어간 귀를 아래로 하고 손바닥으로 탁탁 쳤다.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버스럭거리는 소리로 커졌다. 벌레는 나오지 않았다.
전화벨이 다시 울렸다. 받지 않고 계속 두드렸다. 버스럭버스럭. 귀가 아팠다. 벌레는 나 조차 귀이개로 한번 긁어보지 못한 귀 깊숙한 곳에서 다리를 긁어댔다. 벌레가 들어가면 어떻게 하더라? 불빛을 쪼이던가?
계속 때려 뜨거워진 귀를 소파의 인조가죽에 대고 식히며 생각했다. 일단은 강제로 빼내려고 하지 말고 가만히 있는 게 좋다고 들은 것 같다. 귀 안의 버스럭 소리를 생각하면 몸이 저절로 움찔 거렸지만 안간 힘을 쓰며 귀를 소파에 붙였다. 일단 귀에 들어간 벌레에겐 불빛으로 어떻게 했던 것 같다.
전화벨이 계속 울렸다. 날벌레들은 불빛을 좋아한다. 그래서 불빛을 보면 빛을 따라서 나오게 되어 있다. 생각을 마치자 손전등을 찾기 위해 일어났다가, 다시 앉았다. 날벌레들은 빛을 좋아하지만 바퀴는 빛을 싫어하기 때문에 빛을 쪼이면 더 깊숙이 들어간다. 귀에 들어간 벌레가 뭐지? 물론 버스럭거리는 소리로 알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어떻게 할까 생각하다 벌레가 들어간 귀에 식용유를 조금 부으면 된다고 한 것이 떠올랐다. 가장 확실한 방법이었다. 식용유를 흘려 넣으면 귀 안의 벌레는 죽게 되고, 기름이기 때문에 매끄럽게 흘러나온다. 귀 속에서 벌레를 죽이는 것이 꺼림칙했지만 벌레가 귀 속에서 살아있는 것 보다는 나았다. 버스럭버스럭.
다시 불편한 걸음으로 부엌으로 걸어가 식용유를 찾았다. 깨진 그릇은 아까와 변함없는 그대로였다. 버스럭거리는 소리가 더 커졌다. 벌레가 더 깊숙이 들어가 고막을 찢는 이미지가 떠올랐다. 서둘러 식용유 뚜껑을 열어 귀 속에 부어넣었다. 귀 속이 꾸룩거렸다. 흘린 식용유가 옷과 바닥을 적셨다.
이걸로 된 건가?
안도하는 순간 다시 버스럭버스럭 소리가 들렸다. 아. 실수였다. 당황해서 벌레가 들어간 귀가 아니라 반대편 귀에 식용유를 들이부은 것이다. 나는 다시 식용유 뚜껑을 열어서, 이번에는 정말 벌레가 들어간 귀에 식용유를 들이부었다. 아니. 들이부으려고 했다. 하지만 기름에 적셔진 손은 식용유 통을 떨어트리고 말았다. 식용유가 깨진 그릇 사이로 콸콸 흘렀다. 나는 당황해서 식용유통을 주우려다 넘어졌다. 바닥을 짚은 손바닥이 쓰렸다. 깨진 그릇 파편이 있었다.
식탁을 짚고 일어나려했다. 쿠궁쿠궁 소리가 들렸다. 귀 안에서 들리는 소리가 아니었다. 집 전체가 떨리는 소리였다. 그제야 떠올랐다. 외종이 말했다. 여진이 있을 수 있으니까 되도록이면 집 밖으로 나와 있으래. 흔들림에 몸을 가눌 수 없었다. 기름바닥 위에서 허우적거리며 식탁 아래로 들어갔다. 세상이 떨리고 있었다. 세상이 무너졌다.
눈을 떴다.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혹시 죽은 게 아닌가 싶어 어둠 속에서 발가락과 손가락을 까딱거려봤다. 다행히 몸은 건사한 것 같았다.
다만 몇 가지 문제점이 있었다. 하나는 외가의 집이 아무리 낡고 허름했다한들 작은 지진이 있다고 무너질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외가는 단층 주택이었다. 단층 주택 보다 다층 주택이 지진의 위험에 더 크게 노출되어 있는 건 당연하다. 그렇게 생각한다면 집이 무너진 것은 외가뿐만이 아닐 것이다.
다음 문제점은 만약 외가뿐만 아니라 많은 건물이 무너진 것이 사실이라면 구조대는 누굴 먼저 구하겠느냐, 하는 것이다. 수백 명이 살고 있는 아파트와 한 명이 살고 있는 주택을 비교하면 우선순위는 당연히 더 많은 사람의 목숨이 걸린 아파트다. 생명의 가치를 똑같이 두고 더 가까이의 구조하기 쉬운 사람부터 구조를 한다고 해도 문제가 된다. 외가의 집은 시 외곽에 위치하고 있었고 결코 구조작업을 시작하기 좋은 위치가 아니었다.
게다가 외종은 내가 집 안에 없을 거라 생각할 확률이 더 높았다. 외종은 나를 여진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전화까지 해줬는데, 집 안에서 귀에 들어간 벌레를 뺄 인간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터였다. 무엇보다도 집 안에 있으면서 전화도 받지 않았으니까. 내가 보이지 않는다면 집 안에 있기 보다는 다른 건물 잔해에 깔려버렸을 거라 생각하겠지.
상기의 문제점들은 단 하나의 결과를 도출했다. 나의 구조가 생각보다 늦어질지도 모른다는 것. 몸이 으슬으슬해졌다. 그러나.
버스럭. 버스럭.
내 귀 안엔 아직까지 벌레가 들어 있었다. 하지만 멀어지는 소리였다. 이내 버스럭이 바스락이 되고, 긁는 소리가 귀를 울리지 않게 되고, 귓바퀴로 아찔한 감각이 느껴졌다. 무심코 손을 뻗어 벌레를 잡았다. 통통한 것이 직감으로 알 수 있었다. 바퀴벌레였다.
그리고 바퀴는 하나의 증명처럼 느껴졌다.
바퀴는 같은 분량의 닭고기 보다 세배가 많은 단백질을 함유하고 있다.
어둠 속에서. 귀 밖에서. 바스락거리는 소리들이 들리기 시작했다.
─
고쳐야 할 곳이 많지만 성실하게 쓴 소설이라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