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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디렉션

나는 친구를 따라 공연장으로 갔다.

아파트 사이 주차장에 급조된 공연장 앞으로 플라스틱 의자가 300개 정도 깔려 있었다. 그 중 100여석 정도는 사람이 앉아 있었다. 앞자리는 스피커 앞 뿐이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공연장이 너무 작아서 뒤에 앉으면 별로 의미가 없을 것 같았다.

공연을 기다리고 있자 밖에 오래 있을 것을 각오한 사람들이 때이른 패딩과 파카를 입고 몰려들고 있었다. 노인과 어린이가 많았다. 노인과 어린아이들을 위해 가장 앞줄 앞에 의자 한 줄이 더 깔리자 공연이 시작되었다.

삼십대 초반의 여성 진행자가 나왔는데, 목소리가 깔끔하고 말투에 사투리가 없었다. 추운 날씨와 야외음악회를 간략히 소개하고 다리가 드러나는 연미복 비슷한 옷을 입은 여자 마술사가 나와 공연을 했다. 카드를 숨기거나 마술도구를 사용하는 초보적인 마술이었다. 가끔 미스디렉션에 실패해서 키 카드가 눈에 띄기도 했다. 긴 다리 말고는 달리 볼 것이 없었다. 그러다 페어로 보이는 남자 마술사가 나와 본 공연을 시작했는데 역시 프로다운 구석은 없었다. 날개 끝이 잘렸을 비둘기가 새장 안에서 퍼득거렸다. 점점 몸이 추워졌으므로 집으로 돌아갈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마술 공연이 끝나자 본 공연이 시작되었다. 공연의 이름이 ‘야외 음악회’였으므로 음악이 괜찮으면 듣고 아니면 말 생각으로 기다렸다. 의자에 놓여있던 팜플렛에 따르면, 이번 공연의 기획자인 성악과 교수가 먼저 나왔다. 하지만 순서와는 달랐고 부르겠다는 노래도 세 곡에서 두 곡으로 줄었다. 그마저도 한 곡은 민소매 드레스를 입은 여자 성악가가 불렀다. 서른 중반으로 보이는 여자 성악가는 얼굴이 희었다. 화장과 조명탓도 있겠지만 추워서 그런 것 같았다. 저런 옷을 입을 날씨는 아니었다.

친구가 말했다.

“추워서 먼저 들어가겠다는건가.”

“나도 추운데.”

“노래도 그냥 그렇네. 저 아저씬 목소리가 왜 저렇게 커.”

“여자가 더 잘하는 거 같은데.”

“나이를 무시할 수는 없지.”

“하긴, 음악하는 사람들은 서열 관계가 확실하다더라.”

다음 공연은 보다 젊은 성악가들이었다. 혼자서 부르거나 둘이서 부르거나 했다. 부르는 노래는 번안곡이 대부분이었는데 트로트와 대중음악도 있었다. 기대한 것보다 좋았기 때문에 우리는 조금 더 앉아 있기로 했다. 마지막 공연이 합주였기 때문에 기다릴만한 가치가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었다.

다음 공연이 시작되기 전에 다시 진행자가 무대로 올라왔다. 겸연쩍은 허례를 차리고 마이크를 아파트 주민들에게 돌렸다. 어떤 할머니가 자신도 노래를 부르고 싶다는 소요를 제외하면 별 일이 없었는데, 슬슬 다시 시작하라고 보채고픈 마음이 들 때쯤 진행자가 말했다.

“아! 저기 익숙한 얼굴이 보이는데요.” 진행자는 낯선 얼굴에게 다가갔다. “혹시 제가 아는 그 분이 맞으신가요?”

마이크를 가져다대자 그 얼굴이 말했다.

“예. 국회의원인 조원진입니다. 여러분 만나서 반갑습니다.”

수행원들이 먼저 박수를 치자 주민들 사이에서도 박수가 나왔다.

가끔 자기가 뭐하고 사는지 문자로 알려주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 주기가 격월인데, 그걸로 괜찮은가? 아무튼 조원진씨 말에 따르면 자기는 구민들과 함께 하고 싶어서 왔다는데, 척 봐도 달서구청 들렸다가 얼굴 비추고 한 잔할 생각인 것 같았다. 공연장에서 달서구청까지는 멀리 잡아도 300미터였다. 내 생각이 맞는지 구의원들이 차례차례 자리에서 일어나 우리에게 인사를 했다.

내가 말했다.

“뭣도 없는 주공 아파트 단지에서 이런 게 열리는 이유가 있었군.”

“다 저분들 덕이지.”

“고위 공직자 비서는 다른가 봐. 스케줄이 아주 효율적이야.”

“집에 갈까?”

하지만 우리는 좀 더 앉아 있었다. 대학생 한 무리가 공연장을 뛰어다니며 현대무용 비슷한 것을 하는 것을 보았고, 취소된 합주 대신으로 색소폰 독주를 이어 앞서 공연을 했던 성악가들이 다시 무대로 올라와 노래를 불렀다. 팜플렛이랑 다른데도 준비된 것처럼 노래를 잘 했다. 개중 한 명은 뮤지컬 배우인듯 뮤지컬 제목과 음악은 몰라도 익숙한 것을 불렀다. 우리는 주머니에서 손을 꺼내 박수를 쳤다.

“아주 기가 막힌 공연이군.”

누가 말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앵콜 소리에 우리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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