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걸음
“우리는 늘 이별하고 있는거야.”
뭔 헛소리인가 싶어 돌아봤지만 그녀는 내 시선엔 아랑곳않고 열심히 떠들었다.
“왜, 옷깃만 닿아도 인연이라며? 시내 돌아다니다 보면 옷깃만 닿는게 아니라 어깨도 부닿고, 하잖아. 하지만 딱 그런 만남 뒤에 인사도 없이 홱홱 지나가니 늘 이별하는 셈이지.”
나는 잠자코 들었다.
“또 이런것도 있어. ……우주는 매번 팽창한다고 하잖아? 겉보기로서니 아무렇지도 않아 보일지 모르고, 수치로 따져도 상상도 못할만큼 작은 수치일지 모르지만 우리 사이는 멀어지고 있다는거야.”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래서?”
그녀는 나를 홱 돌아봤다. 어쩐지 굳은 표정에 매서운 눈빛. 하지만 나는 무심하게 시선을 받아넘겼다.
“우리 헤어져.”
“그래.”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묘한 공기가 우리를 맴돌았다. 나는 찬찬히 그녀의 표정을 살폈다. 뭐라 말하려고 하는지 입이 움찔했지만 말은 나오지 않았다. 좀 더 기다리고, 좀 더 기다렸다. 이쯤 하면 됬겠지 하고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는 내가 있던 자리에 시선을 고정시키고 있었다. 나는 발걸음을 옮겼다.
화창한 날씨였다. 기분좋은 바람이 볼을 간질였다. 발걸음은 박자에 맞추기라도 하는듯 유쾌했다.
그리고 우뚝. 멈춰섰다.
이정도 위치라면 그녀가 뒤돌아 본다해도 날 보지 못하리라.
그렇게 생각하고는 거기에 서서 생각에 잠겼다.
만남은 단순했었다. 친구들끼리 만난 모임에서 그녀와 만났고, 번호를 받았고, 만났고, 내가 그녀에게 호감을 느낀다고 생각했고, 또 만났고, 내가 사랑에 빠졌다고 확신했으며, 고백했고, 사귀고, 사랑했다.
그랬다. 하지만 어디에서 보든 사랑이 늘 한결같지는 않았다. 이리저리 시간을 보내다보니 시들해졌다. 이런 부분은 그녀나 나나 피차일반이리라 생각했다. 그러니 내가 미처 말을 꺼내기도 전에 그녀가 먼저 입을 연것이리라.
그런데 뭔가가 문제라고 생각되었다. 그래서 멈춰섰다. 뭐가 문제인지도 모르고 그냥 멈춰섰다. 사랑했고, 헤어졌다. 근데 뭐가 문제지? 오래묵은 때라도 민듯 후련한데.
나는 힐끗 뒤를 돌아봤다. 그녀는 건물에 가려 보이지 않는다. 이미 자리를 떴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그냥 그녀가 있을법한 그곳을 바라봤다.
나는 다시 걷기 시작했다.
착각이다. 잘못된 것은 없다. 나는 잘못이 없다. 사귀다 헤어지는건 누구다 하는데. 그녀조차 우리는 언제나 헤어지고, 언제나 멀어진다 하지 않았나.
나는 계속해서 걸었다. 어쩐지 입안이 말랐다. 어쩐지 걸음이 느려졌다. 자의로 멈춰섰던 아까와는 다르게, 내 발은 누군가 붙잡기라도 한것 같았다. 결국 나는 더 이상 움직이지 못했다.
비유가 아니라 실제로 그랬다. 상당히 어이가 없었다. 발을 들려고 했지만 그렇게 되지 않았다. 문득 당혹감을 느껴 뒷걸음질쳤다. 뒤로는 잘만 갔다. 잠시 착각인가 싶어 다시 앞으로 걸어가려고 했는데, 역시나 발은 띄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다시금 뒷걸음질 치자 잘만 그렇게 되었다.
나는 한숨을 쉬었다. 어떻게 된거람.
나는 다시 뒤돌아가기 시작했다. 뒤로 걸을 수록 발걸음은 가벼워만졌다. 중간중간 다시 되돌아가려고 해봤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왔던 길을 그대로 걸어갔다. 결국 아까전 내가 멈춰섰던 곳까지 걸어오게 되었다. 이쯤에서 좀 더 끙끙 거렸지만 역시나 실패.
결국엔 그녀에게 되돌아가고 말았다.
그녀는 아직 그자리에 있었다.
내가 그녀의 어깨에 손을 얹자 그녀는 화들짝 놀랐다. 말은 못하고 눈으로만 무어냐는듯 물어왔다.
“도저히 발걸음이 안떨어져서……”
말해놓고 보니 영 그랬다. 나는 정말로 발걸음이 안떨어진건데. 이래서야 네랑 헤어질 수 없어 되돌아왔다는 것 처럼 보이잖아.
속으로 궁시렁 거렸지만, 입으로는 벌써 미안하다 말하고 있었다. 결국 그녀와 다시 사귀게 되었다. 진짜 발걸음이 안떨어졌었단 말이야. 나는 또 속으로 궁시렁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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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주제 받고(이번엔 이별) 한시간 동안 글을 쓰는건 꽤 하드한거 같다.
어째서인지 수련 되는 느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