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멸자들 1부 2장 부활하는 자
루바리는 붉은 웅덩이에서 걸어나왔다. 장식 없는 검은색 법의를 입은 사제들이 루바리의 몸에 수건을 둘렀다. 웅덩이 주위로 놓인 십 여개의 화로가 공동을 온기로 채우고 있었지만, 루바리는 추위를 느꼈다. 붉은 웅덩이에 비해 공기는 너무 차가웠다. 마음 같아서는 붉은 웅덩이 속으로 다시 들어가고 싶었다.
루바리는 화로 가까이서 몸을 말리며 붉은 웅덩이와, 그 뒤로 세워진 거대하고 복잡한 기계를 보았다. 화로의 빛이 약해 그림자로 덮힌 기계는 일부만이 보였는데, 누른 놋쇠와 녹슨 강철, 구리 같은 쇠붙이 몸뚱이에서 솟아나온 십여 개의 관들이 붉은 웅덩이 속으로 늘어뜨리고 있다. 어떤 관은 새끼손가락만큼 가늘었고, 어떤 관은 팔뚝만큼 굵었다. 과거에는 저 관들이 각각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루바리는 몸을 돌려 공동을 살폈다. 과거 벽면을 수 놓았던 모자이크 타일들은 흉물이 되었다. 용은 머리가 떨어져나갔고, 황토색으로 그려졌던 거인은 이미 색이 바랬다. 그림의 중심에 그려진 여덟 마법사는 그 특징을 구분할 수 없었다.
시간의 흐름을 느낄 수 있는 것은 그 뿐만이 아니었다. 루바리가 주위를 둘러보고 말했다.
“신도가 많이 줄었다.”
가장 가까이 서 있던, 허리에 붉은 술을 매고 있던 사제가 허리를 숙였다 말했다.
“불존께서 떠나계신 동안 많은 일이 있었습니다.”
“가장 큰 일은 무엇이었나.”
“회국의 비로부치가 불사왕을 자처하고 있습니다.”
“그 다음은.”
“때문에 많은 신도들이 본교에 대한 믿음이 흔들리고 있습니다.”
“그 다음은.”
“기계에 문제가 있었습니다.”
루바리는 기계 쪽으로 잠깐 시선을 던졌다가 말했다.
“그 다음은.”
“자신을 한 마법사가 불존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기계를 수개하는데 도움을 준 마법사로 그 대가로 루바리 님을 만나길 청해왔습니다. 하지만 그는 사특한 외관을 하고 있고 행동거지가 불경합니다. 혹 그를 만나시려거든……”
“안내해라.”
루바리가 앞장 서자 붉은 술의 사제가 한 발 물러서서 루바리를 안내했고, 남은 사제들이 뒤를 따랐다. 긴 복도를 지나고 계단을 오래 올라간 다음에야 마법사가 기다리는 방에 도착할 수 있었다. 탁자와 의자만 놓인 간촐한 방이었다. 루바리는 신도들을 물리고 마법사와 대면했다.
마법사가 녹슨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번 여행은 너무 길었군.”
“꼭 그렇지도 않아.”
루바리는 대꾸하며 마법사의 앞에 앉았다. 마법사는 눈과 코가 있어야 할 자리가 퀭하게 비어 있었고, 바지런한 두 줄의 이가 드러나보였다. 마법사에겐 피부와 근육이 없었다. 닳은 백골이었다.
그는 경추 몇 개를 마찰시키며 고개를 기울였다.
“뭔가 수확이 있었나?”
“만났어.”
“만났다고?”
루바리는 몸을 감싼 수건을 여미며 말했다.
“오로국에서 죽지 않는 괴물에 대한 이야기가 나돌았지. 마침 가까이 있었기에 확인할 수 있었어. 운이 좋았지.”
“이야기 해봤나?”
“아니.”
“만났다고 했잖나.”
“이야기까지 할 기회가 없었어. 곡예단에 있을 때 확인했지.”
“그것 뿐인가? 그건 만났다고 하기도 힘든데.”
“아니. 나중에 오로국이 봉로국에게 넘기려했지. 시황당이 먼저 요구했을 수도 있고, 전쟁중인 오로국이 봉로국에 잘 보이려 했을 수도 있고. 어쨌든 오로국에서 봉로국으로 보내지는 와중에, 용병으로 위장해서 가까이 접근할 수 있었지.”
“그런데 말도 안 붙여보고 돌아왔다고?”
“끝까지 들어. 나도 하려고 했지. 해로국 쪽으로 정보를 흘려두니까 오로국 부대를 쳤어. 그래서 기회가 났단 말이야. 해로국 쪽에선 그 괴물에 대해 알지 못했으니까, 죽은 척 하면서 전투가 끝날 때 까지 기다리기만 하면 됬거든. 그런데 실수를 했어.”
“무슨 실수?”
“죽었어.”
마법사는 손가락으로 나무 탁자를 두드렸다.
루바리가 으쓱하며 말했다.
“이상한 놈이 있었어. 전투가 다 끝났는데 시체 위로 창질을 해대더라고.”
“아니, 그건 변명도 안돼. 거기까지 가서 다시 돌아왔다고? 수 백 년이 지나서 겨우 다른 한 명을 발견했는데? 우리들 중 누구였는지 확인도 못하고? 최악의 상황까지 예측했어야 했어.”
“비난인가?”
루바리는 마법사를 빤히 바라보았다. 마법사의 빈 안와는 그 시선을 마주하다가 설레설레 고개를 저었다.
“그만큼 아쉽다는 이야기지. 그래도 수확은 있었군. 적어도 하동에 있는 건 확인했으니.”
“그렇지만 곧장 움직일 수는 없어.”
“그래. 교세가 많이 기울었지.”
“비로부치가 누구지? 불사왕이 자칭하고 있으니 우리들 중 하나일지도 모르잖나?”
“아니. 그냥 사기꾼이다. 말로는 그렇게 떠들면서 세계 각지로 불사의 영약을 찾는다고 사신들을 보내고 있지. 그렇지만 무시할 수는 없어.”
“왜?”
“회국은 지금 하서 통일을 노릴 정도로 큰 나라거든. 불사왕이라 자처하는 것도 정치적 목적이 있는거지. 하서에서 가장 큰 종교인 만생교를 흡수하기 위해서 똑같이 불사를 미끼로 삼은거야. 때 마침 만생교 불존도 십 수년 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으니 좋은 기회지.”
루바리는 고개를 끄덕였다가 팔짱을 꼈다. 몸은 화로 앞에서 모두 말렸고 사제에게서 두꺼운 수건으로 몸을 덮고 있었다. 그런데도 오한이 들었다.
루바리가 문득 생각난듯 말했다.
“그런데 기계에 문제가 있었다고?”
“부품 몇 개가 녹슬었지. 교체했으니 괜찮을 거야.”
“그 뿐이었나?”
“그 뿐이었는데. 왜?”
루바리는 팔짱을 풀고 오른손을 들었다. 왼손으로 오른쪽 엄지손톱을 건들자 눈에 띄게 흔들렸다. 살짝 힘을 주어 당기자 손톱이 뽑혔다. 루바리는 뽑힌 손톱을 탁자 위로 떨어트렸다.
마법사가 말했다.
“이상하군. 부활 직후라 몸이 약해졌나?”
“아니. 이런 일은 지금까지 없었어.”
“기계 정비는 완벽했다. 몇 번이나 확인했어. 혹시 날 의심하나?”
“아니.”
루바리는 숨을 들이켰다 말했다.
“확인하고 싶었어. 이렇게 될 걸 예상하고 있었으니까. 기계엔 제작 단계에서 대체 불가능한 기초 재료가 들어갔었지. 생물은 저마다 고유한 패턴을 가지고 있고, 생물의 핵이 되는 부분에 그 패턴의 기초적인 정보가 기록되어 있지. 기계는 이 발견을 골자로 만들어진거야.”
“처음 듣는 이야기군.”
“피차 마찬가지 아냐? 아무튼 문제는 기초 패턴이 완벽한 상태로 보관된다 하더라도 시간의 흐름에 따라 붕괴될 가능성이 있었다는 거지.”
“손톱이 빠지는 건 그 전조라는 건가?”
“아니. 붕괴는 시작됐어.”
마법사는 검지, 중지, 약지, 소지를 차례대로 다다닥 탁상 위로 두드렸다가 말했다.
“그럼 쿠실르다를 포기하겠다는 말인가?”
“아니. 붕괴는 그렇게 빠르게 일어나지 않아. 시간이 흐름에 따라 서서히 일어나지. 기계는 최악의 경우라 해도 내가 쿠실르다에 도달할 때 까지는 견디도록 설계했어. 시간엔 여유가 있지.”
“그럼 내게 왜 이야기를 하는 거지? 우리는 경쟁자 아닌가?”
“경쟁자이기도 하지만 협력자이기도 하잖나.”
마법사는 “그것도 그렇지.” 하며 의자 등받이 깊숙하게 앉았다. 둘은 그대로 상념에 빠져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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