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계란 레시피 ①에디슨
어린 동생이 가장 좋아했던 것은 ‘에디슨’이었다. 특히 좋아했던 것은 짚더미 위에서 계란(정확히는 오리알이지만)을 품고 있는 어린 에디슨을 그린 삽화였다.
장면만 놓고 본다면 퍽 낭만스러웠다. 어린 독자층을 고려한 것인지 그 다음 장면엔 ‘날계란에 옷이 젖은 에디슨’이나 ‘계란 깨먹은 것에 벌을 받는 토마스’ 따위는 그려져 있지 않았다.
하루는 동생이 그 에디슨을 들고와 그 삽화를 펼쳐보았다.
“누나누나!”
그 때 나는 소파에 누워 텔레비전에 빠져 있는 상태였기 때문에, 동생이 바라는 친절한 누나가 될 수 없었다.
“왜에?”
그래서 동생이 조금 성가시게 느껴졌다. 마침 파워레인저들이 마지막 공격을 하기 위해 합체공격을 준비하고 있는데, 동생이 절묘하게 가린 것이다.
“누나누나! 이거이거!”
“왜에.”
동생은 비켜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동생은 엉거주춤한 자세로 책을 한 손으로 잡고, 그림이 그려진 곳을 손으로 탁탁 쳤다.
“누나 이거.”
“왜.”
“해도돼?”
“뭐?”
“해보고 싶어.”
동생의 눈은 초롱초롱 빛났다. 어쩐지 골려주고 싶은 눈빛이었다. 게다가 TV 화면 속의 주인공은 이미 악당을 무찌르고 승리의 포즈를 취하고 있었다. 아아, 발칸포. 클라이막스. 지나가버렸구나.
…아마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당시의 나는 지금처럼 착한 누나가 아니었다.
동생은 손으로 그 그림. 어린 토마스가 짚 위에서 닭 처럼 편안히 계란을 품으려는 그 장면을 자꾸 가리켰다. 아마 저걸 따라하면 계란을 다 깨버리겠지. 아마 부모님께 혼이 나겠지만, 동생은 어리니까 크게 혼내진 않을거고. 적당히 말을 애두르면 나한테도 피해는 없을거야. …나는 머리속으로 계산을 해보고 있었다.
동생은 냉장고의 계란이 무정란이라는 것도, 유정란이라한들 냉장고의 저온 속에 있던 계란이 부화할리없다는 사실을, 그리고 계란은 여간 조심하지 않으면 깨져버린다는걸 모르겠지. 에디슨의 다음 페이지의 그림은 토마스가 학교를 걸어나오는 그림이니까. 깨진 계란 때문에 당혹스러워하는 에디슨은 없으니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음… 냉장고에 계란 있을걸.”
동생은 기뻐하며 책을 고이 접어두곤 냉장고로 가져가 계란을 꺼냈다. 나는 TV를 보며 힐끔, 비디오테이프를 갈며 힐끔, 오프닝 송을 들으며 다시 힐끔 봤다. 그 때 마다 동생은 안 닿는 팔을 뻗고, 의자를 가져오고, 환한 얼굴로 의자 위에서 계란을 하나씩 꺼냈다. 다섯 개 쯤 꺼낼때는 조금 걱정이 되었지만 어차피 갯수는 중요하지 않으니까, 하고 생각했다. 나는 다시 TV에 집중했다. 중간중간에 동생이, “누나! 진짜로 해도돼?” “누나! 얼마나 걸릴까?” “우와, 깨졌다!” 해버렸을 때도 건성건성 대답해버렸다. “응.” “손 접었다 폈다 열번.” “조심해야지.”
나는 한동안 TV에 집중했다.
그리고 방에서 삐약삐약 소리가 났다. TV 소리를 줄이자 소리는 더 선명해졌고, TV 전원을 마치 양계장에라도 와 있는 듯한 기분이들었다. 삐약삐약. 이게 뭐야? 삐약삐약. 나는 동생에게 달려갔다. 크게 놀라거나 심각하게 생각했다기 보다는 묘한 위화감 때문이었다. 보나마나 이따금 반짝이곤하는 영악함으로 누나를 골려주기 위해 병아리 울음을 흉내내고 있으리라. ‘그런데 누구한테 배운거지? 진짜 같잖아?’
그러나 날 맞이한건 내 동생과 눈도 뜨지 못하고 축축하게 젖은 병아리 다섯 마리였다.
‘어디서 가져온거야?’ 말을 내려다 말았다. 갓 태어난 병아리 다섯 마리를 도대체 어디서 난단 말인가. 한마리는 아직도 달걀껍질을 반쯤 두르고 있는데. 볼을 꼬집었다. 아팠다. 냉장고에서 꺼낸 무정란이 부화하다니. 어떻게? 분명 그때의 나는 어렸지만, 무지하지는 않았다. 적어도 어떤 일이 있을 수 있고─없는지에 대한 분별력은 있었다. 일찍 철이 들었다는 아이들이 대개 그렇듯이.
동생은 그 여린것들을 어찌해야될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있다가, 내 모습을 확인하고서야 환하게 웃었다.
“누나! 누나말대로야!”
나는 진득하게 말려오는 긴장감속에서도 태연하게 대꾸했다.
“…당연하지. 누나가 누군데.”
이따금 돌아보길. 그것은 올바르게 꿴 단추였을까, 돌이킬 수 없는 물잔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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