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도둑
내가 그를 만나게 된건 단순히 친구의 부탁 때문이였다. 사실 그 친구라는게 그다지 친한것도 아니고, 그냥 어쩌다가 만나서 서로의 시간을 낭비하게 되는. 그런 사이였다. 아시다시피 그런 친구의 부탁이 더 거절하기 힘들다는걸 다들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어쨌든 나는 그 친구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하고 한줌의 시간을 소비하면서 그 남자를 만나게 되었다. 그 남자는 친구의 은인이였는데, 어떤 연유로 친구가 도움을 받았는지는 알 수 없었다. 사실 별로 중요하지도 않았고.
아. 자꾸 옆으로 이야기가 새는것같다. 어쨌든 교도소 면회실에서 그남자의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나는 사형수요.”
나는 일단 안됬다는 표정을 지어보였다. 그렇지만 그는 내 표정에는 관심이 없는것 같았다.
“이미 내 시간은 빼앗겨서 시간이 집행되고 있고, 아마 아흐레가 지나면 나의 시간은 사라지고 말거요. 사실 내 생에 미련은 별로 없소. 뭐, 살만큼 살기도 했고 해볼건 다 해봤으니까.”
남자는 대부호였고, 권력가와도 연이 닿아 못해본건 없는 사내였다.
“……그렇지만. 나는 아직 이승을 떠날 수 없소.”
이번에는 한쪽 눈꼬리만 슬쩍 올렸다. 방금 해볼건 다해봐서 이 세상엔 미련이 없다고 해놓곤.
“왜 그렇지요?”
그는 나를 힐끗보곤 말을 이었다.
“사실 지금 책을 한권 쓰고 있소. 그런데 이 책을 다 쓰려면 어림잡아 한달은 걸릴것 같단 말이오. 나는 아흐레뒤면 죽는데 책은 한달뒤에나 완성될거란 말이오. 정말 이 책을 쓰는걸 미루고, 미루다가 감옥에 들어와서야 쓰기 시작했는데……. 어젯밤 내 사형이 시작됬다는걸 알았단 말이오.
나는 이책을 반드시 완성하고 싶소.”
“어, 그럼. 그 하고싶다고 하셨던 부탁이……”
“그렇소. 시간을 훔쳐주시오.”
역시 그 일이였나. 나는 자세를 고쳐잡으며 말했다. 이번에는 진지한 표정.
“몇일의 시간을 원하시죠?”
그는 잠시 고민하던 기색을 보이다가, 어렵게 결정한듯 말했다.
“한달. 그정도면 충분할것같소.”
“좋습니다. 지금 당장 드리죠.”
내 말에 그는 놀란듯 눈을 동그랗게 뜨곤 말했다.
“시간을 훔쳐야 하는것 아니요?”
나는 웃었다. 사람들은 보통 나를 ‘시간 도둑’으로 알고 있었다. 흔히하는 착각이였다.
“물론 드리는 시간은 훔친 시간입니다. 정확하게는 훔쳤던 시간이지요. 부탁받은뒤에 시간을 훔치는건 불가능하지 않습니까? 잘 생각해보세요. 한달의 시간을 훔치기 위해서는 한달 이상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사이에 시간을 원하는 사람의 시간은 계속 없어지고 있겠지요. 그러니 저는 평소에도 계속해서 시간을 훔치고, 만약 시간을 원하는 사람이 있다면 훔쳤던 시간을 파는거지요.”
그는 내 말을 이해한듯 고개를 끄덕거렸다. 저거 거짓말인데.
“좋소. 시간을 사겠소. 얼마면 되겠소?”
나는 적절한 가격을 제시했고 그는 꽤 큰 액수임에도 불구하고 별다른 흥정없이 합의했다. 나는 얼마뒤 내 계좌에 내가 제시했던 액수의 돈을 확인했다.
나는 사실 시간을 훔치지 않는다. 시간을 훔치다니. 바본가? 내가 말한 그대로라면 나는 멍청하게 내 시간을 소비해가면서 그만큼의 시간을 훔치고, 다른사람에게 팔게 된다는 소리다. 즉, 내 시간을 고스란히 남에게 파는거나 다름없는 것이다.
나는 시간을 훔치지 않는다.
나는 시간을 싸게 사서 비싸게 되판다.
시간을 파는 사람들은 시간이 남아도는 사람들-백수, 늙은 노인-뿐이고 그런 사람들은 시간을 팔았다고 소문을 내지 않는다. 그저 목돈좀 생겼다고 좋아하겠지.
반대로 시간을 사는 사람들은 그 만큼 간절한 사람들이다. 그리고 ‘시간을 훔치는 도둑’ 이라고 낭만적으로 슬쩍 떠주면 거금을 요구해도 열성적으로 달려든다. 게다가 그런 사람들은 샀던 시간의 일부를 내 이야기를 하는데에 쓸것이다. 아마 그 남자도 내 친구에게 이야기를 들었겠지. 친구도 내게서 시간을 사갔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