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능한 소년
등장인물
소년 : 전능全能자.
누나 : 소년의 누나.
친구 : 소년의 친구이자, 엘프ELF 행동요원.
후배 : 영화감상부의 후배이자, 엘프 정보수집요원.
가면 : 오크ORC 행동요원.
소녀 : 인형사.
prologue
토마스 에디슨은 어렸을 때 계란을 품었고, 발명왕이 되었다.
내 동생은 어렸을 때 계란을 품었지만, 무엇이 될지 몰랐다.
내 나이 11세. 내 동생은 일곱 살 때 있었던 일이다.
동생은 책을 참 좋아했다. 개중에 좋아한 것은 위인전집이었다. 아마 글의 내용보다는 위인전집의 삽화를 마음에 들어한 것 같은데, 적당한 번짐이라던가, 오밀조밀한 묘사는 지금 봐도 썩 괜찮다고 생각한다. 몇몇 장면은 오려내서 책갈피로 쓰기도 했다.
동생이 가장 좋아했던 것은 그 책들 중 ‘에디슨’ 이었다. 특히 좋아하는 그림은 짚더미 위에서 계란을 품고 있는 어린 에디슨. 그 장면만 놓고 본다면 퍽 낭만스러웠다. 어린 독자층을 고려한 것인지 그 다음 장면엔 ‘날계란에 옷이 젖은 에디슨’이나 ‘계란 깨먹은 것에 벌을 받는 토마스’ 따위는 그려져 있지 않았다. 동생이 좋아할만한 그림이었다.
하루는 동생이 그 에디슨을 들고와 문제의 페이지를 펼쳐보았다.
“누나누나!”
그 때 나는 텔레비젼에 빠져 있는 상태였기 때문에, 친절한 누나가 될 수 없었다.
“왜에?”
그래서 동생이 조금 성가시게 느껴졌다. 마침 주인공들이 마지막 공격을 하기 위해 준비를 하고 있는데, 동생이 절묘하게 가린 것이다.
“누나누나! 이거이거!”
“왜에.”
동생은 비켜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동생은 엉거주춤한 자세로 책을 한 손으로 잡고, 그림이 그려진 곳을 손으로 탁탁 쳤다.
“누나 이거.”
“왜.”
“해도되?”
“뭐?”
“해보고 싶어.”
동생의 눈은 초롱초롱 빛났다. 어쩐지 골려주고 싶은 눈빛이었다. 게다가 TV 화면 속의 주인공은 이미 악당을 무찌르고 승리의 포즈를 취하고 있었다.
‘아아, 발칸포. 못봤잖아.’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당시의 나는 지금 처럼 착한 누나가 아니었다.
동생은 손으로 그 그림. 어린 토마스가 짚 위에서 닭 처럼 편안히 계란을 품으려는 그 장면을 자꾸 가리켰다. 아마 저걸 따라하면 계란을 다 깨버리겠지. 아마 부모님께 혼이 나겠지만, 동생은 어리니까 크게 혼내진 않을거고. 적당히 말을 애두르면 나한테도 피해는 없을거야. ……나는 머리속으로 계산을 해보고 있었다.
동생은 냉장고의 계란이 무정란이라는 것도, 유정란이라도 냉장고의 저온 속에 있던 계란은 부화할 수 없다는 사실을, 그리고 계란은 여간 조심하지 않으면 깨져버린다는걸 모르고 있겠지. 에디슨의 다음 페이지의 그림은 토마스가 학교를 걸어나오는 그림이니까. 깨진 계란 때문에 당혹스러워하는 에디슨은 없으니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음…… 냉장고에 계란 있을걸.”
동생은 기뻐하며 책을 고이 접어두곤 냉장고로 가져가 계란을 꺼냈다. 나는 TV를 보며 힐끔, 비디오테이프를 갈며 힐끔, 오프닝 송을 들으며 다시 힐끔 봤다. 그 때 마다 동생은 안 닿는 팔을 뻗고, 의자를 가져오고, 환한 얼굴로 의자 위에서 계란을 하나씩 꺼냈다. 다섯 개 쯤 꺼낼때는 조금 걱정이 되었지만 어차피 갯수는 중요하지 않으니까, 하고 생각했다. 나는 다시 TV에 집중했다. 중간중간에 동생이, “진짜로 해도되?”, “얼마나 걸려?”, “우와, 깨트렸다!” 해버렸을 때도 건성건성 대답해버렸다.
“응”, “10분”, “조심해야지.”
나는 한동안 TV에 집중했다.
그리고 방에서 삐약삐약 소리가 났다. TV 소리를 줄이자 소리는 더 선명해졌고, TV 전원을 마치 양계장에라도 와 있는 듯한 기분이들었다. 삐약삐약. 이게 뭐야? 삐약삐약. 나는 동생에게 달려갔다.
동생이 입으로 소리를 내고 있을거라 생각했다. ‘진짜 같잖아?’ 하지만 갓 태어난 병아리들이 침대위에서 아장거리는 걸 보곤 동생이 어디서 병아리를 주워왔구나 싶었다. ‘저건 어디서 가져온거야?’ 그리고 그 병아리들이 젖은 몸으로 달걀 껍데기를 조금씩 두르고 있는 것을 알아채곤 내가 꿈을 꾸는구나 싶었다. ‘뭐?’
볼을 꼬집었다. 아팠다.
동생은 배시시 웃으며 갓 태어난 병아리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①냉장고에서 꺼낸 ②무정란이 ③동생의 품에서 ④10분만에 태어났다. 머리가 멍했다. 머리는 혼란스러워 하면서도 ‘적어도 에디슨 보다는 더 뛰어난 사람이 되려나?’ 생각했다.
1.
‘넌 무엇이든 할 수 있어.’
머릿속에서 울려퍼지는 목소리였다. 확연한 이질감 때문에 내 목소리가 아니라는 것 정도는 알 수 있었다.
목소리가 다시 울려퍼졌다.
‘넌 무엇이든 할 수 있어.’
대꾸했다.
‘나는 하늘을 못날아.’
‘할 수 있어.’
‘나는 입에서 불도 못뿜어.’
‘할 수 있어.’
‘그럴리가 있나.’
‘넌 무엇이든 할 수 있어.’
한결 같은 소리였다.
잠에서 깼다.
머리가 어지러웠다. 시계를 봤다. 자명종은 아직 울리지 않았다. 잠을 더 자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자명종을 껐다.
창문을 드르륵 하고 열었다. 확연한 봄이었다. 아파트 사이의 간간히 꽂힌 가로수들은 초록 이파리들을 흔들었다. 선선한 바람이 불었다. 사실 이제 좀 덥다. 간 밤에도 땀을 조금 흘린 것 같다. 바람이 시원하게 느껴졌다.
묘하게 머리가 무거웠다. 공기를 한 껏 마쉬었다가 내뱉었다. 도시 공기는 탁하다던데, 생각했지만 매일 마시는 공기인데 또 어떨까 싶었다. 머리가 맑아진 느낌이 들었다. 침대에서 내려와 방문을 열었다. 오래된 경첩 때문에 문은 삐걱거리는 소리를 냈다. 거실은 한결 탁트인 느낌이다. 식탁을 봤다. 어머니가 해두신 아침이 있었다. 어머니는 새벽에 나가신다. 밥그릇이 둘이다. 오늘 누나가 학교에 가던가? 누나 방으로 향했다. 벌컥 열려다가 노크를 하기로했다. 똑똑. 문 너머에선 말이 없다. 그리고 손잡이를 돌려잡고 밀려는데, 너머에서 말 소리가 들려온다. 작다. 두런두런. 대화소리였다. 통화중인 것 같았다. 어떻게 할까, 하다가 아침에 깨어나 화장실에 가지 않았다는 걸 깨달았다. 화장실로 갔다.
“아, 누님. 그러시면 안된다니까요.”
“얌마. 내가 왜 니 누님이야?”
“사내놈인 제가 누님을 언니라고 부를 수는 없잖습니까.” 답이 궁하다. 녀석이 재차말했다. “오늘 만큼은 위험하다니까요.”
나는 숨을 들이키고 말했다.
“안돼. 그리고 넌 막무가내로 위험하다고만 하지, 왜 위험한지는 말을 안 해주잖아?”
“아유. 그거야, 뭐. ‘엘프ELF’ 기밀이니까요.”
“뭔 말을 하면 나오는게 기밀이래. 너네나 ‘오크ORC’나 내가 보기엔 다 거기서 거기로 보여.”
“우와, 오크 따위와 저흴 비교하시다뇨.”
네이밍 센스가 똑같잖냐…… 이건 속으로만 중얼거렸다. 이상한 곳에서 민감한 녀석이었기 때문에 자중할 필요가 있었다.
잠깐 생각했다. 분명 녀석의 태도는 평소보다 조급해 보이는 데가있었다.
“아아, 그래. 좋아. 일단 이야길 들어보고 생각해주지.”
“으음. 곤란한데.”
“그럼 말던가.”
“아, 누님 왜 그렇게 급하세요. 저도 제 나름의 사정이란게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가르쳐줄거야, 말거야?”
“흠흠. 전화 한 통화만 하겠습니다. 잠깐만 기다려주세요.”
나는 그러라 하고 통화를 끊었다. 화장실 물 내리는 소리가 들렸다. 동생이 깼나?
귀를 기울였다. 통화는 끝난 듯 했다. 문을 두드렸다. 똑똑. “어, 왜에?” 늘어지는 답변이 문너머로 왔다. 문을 열까 망설여봤다. 나이를 점점 먹으면서 아무 생각하던 행동들을 생각하고 하게된다. 나는 그냥 문을 열지 않기로 했다. “밥 같이 안 먹을거야?” “응.” “나 혼자 먹어?” “그래.” “오늘 학교 안가?” “가.” “언제?” “오후에.” “그럼 나 혼자 먹는다.” “그래.”
나는 방 문에서 물러섰다. 어머니는 기억력이 좋은 편이었다. 그래서 대학생인 누나의 수업 시간 정도는 꿰차고 있었고, 오전에 수업이 있다면 내 아침과 더불어 누나의 아침도 챙겨주셨다. 오늘 아침. 밥그릇은 두 공기. 누나는 거짓말을 했다. TV에 눈을 돌리며 오늘의 날씨를 볼 쯤에, 누나의 방에서 다시 대화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기도 했다.
“왜 이렇게 늦어?”
“허락 좀 받느라 그랬죠.”
“어떻게 됬는데?”
“가르쳐드리겠습니다.”
그래야지.
“무슨 일이야 도대체?”
“음.” 녀석은 뜸을 들였다. 한번 더 재촉하자 녀석이 입을 열었다. “오크 요원 하나가 누님 동생을 노려요.”
“뭐?” 절로 미간이 찌푸려졌다.
“아, 이건 독단적인 행동이라네요. 오크들 말로는. 근데 또 모르죠. 뻥인지 구라인지 어떻게 알겠습니까요.”
“아나아니. 그건 아무래도 좋아. 그보다, 너희들은 내 동생 주변에 초능력자든 괴물이든 ‘이상한 것들’을 이 주변에 끌고 오지 않기로 했잖아? 근데 뭐? 오크? 솔직히 너만 해도 마음에 안들어.”
“흠흠. 그건 저희 불찰이 크죠. 저희도 지금 노력해서 찾고 있고, 아마 오늘 내로 잡아낼 수 있을 겁니다. 에, 그리고 저야 뭐……”
“아 몰라. 됐어. ……근데 그녀석 쎄?”
“아뇨. 그다지.”
“뭐 쓰는데?”
“신체강화! 같은 느낌이죠. 몸 속의 아드레날린이라던가 증가시켜서 뭐 어쩌고저쩌고. 약해요.”
“너 이길 수 있어?”
“그럼요. 절 뭘로 보시고.” 자신감이 가득했다.
흐음. 하고 신음 소리가 새어나갔다. 그 녀석이 물어왔다.
“그럼 허락은?”
“마음대로 해..”
“네?”
“방과후에 마음대로 하란 말이야. 동생한테 무슨 일 생기면 죽는다 진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끊어.”
나는 녀석이 대답하기전에 통화를 끊었다.
한 숨이 나왔다. 밥 생각은 없었다. 오전 강의는 빼먹자. 그대로 침대위로 쓰러졌다. 멀리 동생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다녀오겠습니다.” 목청을 높여 말했다. “응. 다녀와.”
오늘은 그냥 쉴까?
슬슬 하복을 입어야 하지 않을까 싶은 날씨였다. 춘추복을 입기엔 후덥지근했다. 하늘을 봤다. 오전엔 구름이 잔뜩 끼고, 국지적으로 비가 올 수 있으나, 오후에는 화창함. 우산은 들고 나오지 않았다. 일기예보는 신용이 가지 않는다. 멀리 학교가 보였다. 아직 이른 시간이다. 등교생은 몇 없었다. 심심하던 차에, 멀리 낯익은 뒤통수가 보였다. 빠른 걸음으로 뒤를 밟았다. 통화중이었다.
“여보세요.”
“여, 잘 있었나.”
“네. 그럭저럭. 그보다 어제도 만났는데 무슨 안부인사를……”
무시하고 말했다.
“잘 되가?”
“아니 별로. 꼬투리도 못잡았어요.”
“그 정도 능력밖에 안되는데? 몸만 좀 좋은 정도 아냐?”
“머리도 좀 좋죠.”
“그래? 큰일났네. 누님 한테 큰소리 뻥뻥 쳤는데 그놈 나타나버리면 어떻게하지?”
“큰일나겠죠.”
“걱정 좀 해줘.”
“걱정한건데요.”
한숨이 나왔다. 냉랭하군. 화제를 바꾸었다.
“오크놈들은 뭐한데?”
“나름대로 열심히 찾아다니고 있을걸요.”
“그래? 다른 문제는 없어?”
“인형사.”
“앙?”
“인형사가 등장했어요. 오크 애들은 그걸로도 바쁠걸요. 저희도 그렇고. 그래서 가면 찾는게 좀 늦어요.”
“인형사라니. 능력자?”
“비슷해요. 사람을 꼭두각시 처럼 다루죠.”
“그래? 나 처음듣는데.”
“전능全能자 이야기가 퍼졌나봐요. 멀리서 왔데요.”
“음? 외국?”
“글쎄요……”
글쎄라니. 그렇다는거야? 아니라는거야?
어쩐지 떨떠름해서 걸음이 느려졌다. 그 때, 뒤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여.”
“여?”
“여어?”
뒤돌아봤다. 친구였다. 그리고 누님의 동생이기도 하고. 발견된 능력 중 가히 최강이라 불리는 전능全能자. 나는 급하게 통화를 끊었다. 반갑게 친구를 맞이했다. “오! 프렌드!”
“통화중이었나보네? 방해한건가?”
“아냐. 막 끊으려고 했어.”
친구는 시치미를 뚝땠다. 얼핏 들었을 때 너머에서 들려온건 여자 목소리였다. 내가 알기로서니, 친구에겐 여자 형제가 없는데…… 뭐라 추궁하려다가 말기로 했다. 친구와 함께 걷기 시작했다.
친구가 말했다.
“오늘 영화보러 안 갈래?”
“영화?”
“그래. 이번에 새로 나온 거 있잖아.”
“그렇게 말해도 나는 모르는데.”
친구가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TV채널을 돌리다 광고를 본 기억이 났다. 늘 그렇듯 예고편은 재미있어 보였다. 친구는 영화에 대한 줄거리까지 간략하게 설명했다. 흥미가 생겼다.
“글쎄. 보러가고 싶긴한데……”
“보러가자. 최근엔 영화관 근처에도 못가봤잖냐. 영화감상부가 이래도 되냐?”
“으음.”
언제 영화감상부를 챙겼데. 그래도 보러가고 싶긴했다. 잠시 생각했다. 몇가지 에러사항이 있다. 나는 하나씩 내뱉었다.
“오늘 야자는 어쩔건데.”
“빼먹는게 예사냐. 문화활동좀 즐기겠다는데.”
“나 돈 없어.”
“집에 갔다오면 되잖아.”
“집에가도 돈 없어.”
“그럼 이번엔 내가 쏘지. 나 이거 되게 보고싶은데, 혼자 보긴 좀 그렇잖냐.”
“둘이라고?”
친구는 눈을 껌뻑였다. 그리고 헛기침을 했다.
“아니아니. 너랑 가면 셋이야.”
“누구?”
“영화감상부 후배.”
“어?”
“알잖냐. 키 쬐끄맣고, 안경쓰고, 머리땋고.”
반사적으로 내뱉었다.
“사귀냐?”
친구는 쿨럭거리며 기침을 하기 시작했다. 다소의 기침이 멈출 생각을 않는다. 물어보지말라는건가. 친구는 헛기침을 어흠, 크게 하더니 내게 말했다.
“여튼 좀 그래. 어쨌건, 같이 가는거지?”
“으음.”
나머지 문제는 그럭저럭 해결이 되는 것 같았지만, 마지막 문제가 마음에 걸렸다.
친구가 말했다.
“누나 때문에 그래?”
“으으음.” 대답은 하지 않았다.
“야. 너희 누나는 왜그러냐. 동생 어디 놀러보내지도 못하고. 초등학생도 아니고 고등학생인데.”
“흐으음.”
“야. 이번이 반항의 기회야. 여자도 아니고 남자가 통금이라니! 그렇다고 부모님이냐! 아니지. 누나란 말이야. 고작 네 살 차이! 안그래?”
“흐으으음.”
“전화 한번 걸어봐. 밑져야 본전아냐.”
주머니에서 휴대전화를 꺼내들었다. 조용히 휴대전화를 내려다봤다. ……반항이라. 문득 누나에게 대든다/반항한다/따진다 같은걸 생각해본적이 없다는 걸 깨닫곤 놀랐다. 누나는 늘 바른 소리만했다. 고등학생이 밤 늦게 돌아다녀서 되겠냐는 둥 했는데, 실제로 내 생각도 그랬다. 그리고 둘 사이에 끼였다가 모양새만 이상해지면 어떻게한담. 나는 주저했다. 한가로운 여름날 아침, 등교길에서 이런 고민을 하게될 줄이야.
역시 그만두는게 낫지않을까? 할 때, 목소리가 들려왔다.
‘전화해.’
귀로 들리지 않는 소리였다.
‘전화해.’
“어?”
친구가 어리둥절, 쳐다봤다.
“왜?”
“아, 아냐.”
‘전화해.’
목소리는 내 머리 가운데서 울리고 있었다. 내가 먼저 말했다. 말했다? 생각했다? 아무래도 좋다. 내가 먼저 말했다.
‘누구야?’
‘전화해.’
‘누구냐니까?’
‘전화해.’
한숨을 쉬었다. 목소리는 계속해서 들려왔다. 울려왔다. 친구는 내 얼굴을 빤히 보고 있었고, 망설인다고 하기엔 시간을 너무 오래 끌었다. 나는 전화를 걸었다.
“어, 누나?”
“응? 왜? 무슨일 있어?”
“음. 그게……” 나는 조심조심하며 말을 했다. 사실 별로 기대는 하지 않았다. 누나는 이런 일에 대해 허락한 적이 없다. 게다가 방금전의 ‘목소리’ 때문에 심란한 상태였다. 그래서 이야기를 모두 했을 때 쯤에는, ‘안되.’ 하는 목소리가 들려올거라 생각했다.
“그럼 그렇게해.”
“어?”
“친구랑 놀다오라고. 그 대신 장소나, 몇 시까지 있다올건지 정도는 이야기 해주고.”
“아, 응. 그건 친구랑 이야기해보고.”
간단히 인사를 하고 통화를 끊었다. 친구가 말했다.
“어때? 된다지?”
“응.”
“거봐. 된다니까.” 친구는 피식 웃었다.
“그렇네.”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그리고 몇 발자국 더 떼었을 때, 목소리가 사라져버렸다는 것을 깨달았다. 뭐였지?
친구와 헤어지고 화장실로 가 다시 통화를 걸었다.
“야. 지금 학교지?”
“네? 그런데요?”
“만나자.”
“왜요?”
“나 친구랑 영화보기로 했거든.”
“친구 누구요?”
“전능자.”
“보러가세요.”
“근데 너랑 같이 가기로했어.”
“미쳤어요?”
일말의 망설임도 없군 그래.
“몰라. 너 안가면 안갈걸. 나랑 둘이 가야되니까.”
“서로 사이 좋지 않아요?”
“남자 둘이서 가고 싶겠냐.”
녀석은 주저했다.
“안되는데. 저 오늘 바쁜데.”
“뭐하는데?”
“가면 찾아야죠.”
“어차피 전능자랑 엮인 일이니까 비슷하지 뭐.”
“그런가…….”
“그럼 어디서 만날래? 영화표 부터 예매해야되나. 오늘 비번 누구지?”
문제집을 훑으며 자습시간을 보냈다. 숙제도 모두 끝냈고, 예습도 했다. 아이들은 서로 숙제를 배끼기에 바빴다. 내 공책 하나도 저 중에 뒹굴고 있었다. 다른 아이들은 거리낌 없었지만, 나는 주저했었다. 머리가 굵어지면서 내가 다른 아이들과는 조금 다르다는걸 알게된다.
아이들 끼리 모여 누군가의 뒷 이야기를 하는건 예사였다. 나로선 조금도 즐겁지 않은 이야기로 웃음꽃을 피웠다. 그 꽃은 칙칙한 냄새가 났다. 그 중엔 선생님이나 부모님, 형제에 대해 이야기 하는 아이들도 있었다. 그게 그렇게 화낼만한 일인가? 스스로에게 몇 번이나 되물었지만 알 수 없었다.
모두가 모인자리에서 뭔가 훔쳐본 경험이 있는지 묻기도 했다. 훔친다고? 자기걸 쓰면되잖아? 어째서? 하지만 나도 분위기 정도는 파악할 줄 알았다. 나는 대게 그런 이야기가 나오면 웃는채 하고 넘어갔다. 그러면서도 속이 쓰렸다.
그렇다고 다른 아이들이 나쁘다거나 생각하지는 않았다. 그러한 부분은 일부분이다. 그 정도는 나도 안다. 어느 정도의 타협점만 찾아내고, 그정도 까지 양보한다면 내가 화를 내거나 할일은 없었다. 그러니까, 그런 것들은 아무 문제도 없었다. 문제는 내가 상당히, 다른 아이들에 비해 이질적이라는 것이다.
‘누나 때문일까?’
살짝 중얼거렸다.
‘그렇담 그게 나쁠까?’
시선은 이미 문제지의 여백을 향하고 있었다. 들고 있던 샤프는 이미 낙서를 시작하고 있었다. 긋고, 누르고, 돌고. 글씨가 완성되었다. 깜짝 놀랐다.
‘나빠.’
‘뭐?’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누나 마음대로 움직이는거야.’
‘뭐라고?’
숨을 죽였다.
‘나는 누나의 꼭두각시야.’
목소리는 ‘나’라고 했다.
‘나는 누나의 꼭두각시야.’
‘잠깐만. 넌 도대체 누구야?’
‘나는 꼭두각시야.’
뭐가 뭔지 알 수 없었다.
‘잘 생각해보란 말이야.’
그리고 목소리는 들려오지 않았다.
목소리를 까맣게 잊고 있었다는게 놀라웠다. 잠깐. 목소리라는 표현은 어울리지 않는다. 머리속에서 울리는 듯한…… 목소리였다. 적당한 말이 떠오르지 않는다. 꼭두각시. 꼭두각시라고 부르자. 꼭두각시는 스스로를 꼭두각시라고 불렀다. 하지만 마치, 꼭 내가 된듯 말했다. 이게 무슨 의미일까? 내가 꼭두각시라고? 아니아니. 목소리는 내가 아니다. 아니, 꼭두각시는 내가 아니다. 그러니까 내가 아니고 꼭두각시가 꼭두각시…… 머리가 혼란스러웠다.
녀석들은 바보임이 틀림없다.
나는 오크의 상급 요원이었고, 어지간한 정보수집계 능력은 꿰차고 있었다. 물론 시간이 흐를 수록 내 긴장은 흩어질 수 있고, 녀석들은 나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하루 정도는 충분히 도망다닐 수 있다.
하루면 충분하다. 전능자를 죽이기엔.
전능자는 죽어야한다.
나는 전능자가 얼마나 전능한지 안다.
2.
“아, 누나?”
“응? 또 전화걸었네. 왜?”
“아까, 그거 영화 본다고 했잖아. 저녁에.”
“아아. 그랬지. 어디서 보기로했는데?”
점심시간에 친구와 말을 맞춰둔 장소와 시간을 말했다. 자연스럽게 덧붙였다.
“근데 이런 것 까지 이야기 해야되? 누나가 보러올 건 아니잖아.”
그리고 나 혼자 깜짝 놀랐다. 지금 내가 뭘한거지? 누나한테 따졌어?
내가 뭐라하기도 전에 누나가 말했다.
“아, 뭐. 그거야…… 그냥 걱정되서 그러지.”
누나도 당황한 것 같았다.
나는 서둘러 말을 마쳤다.
“으음. 그럼 저녁에봐.”
“그래.”
한동안 휴대전화를 떨떠름하게 바라봤다. 새하얀 동체는 말이 없다. 검은 액정엔 내 모습이 비쳐보였다.
동생의 말에 깜짝 놀랐다. 이때까지 이런적이 있었던가?
단순한 물음이었고 딱히 기분이 나쁜건 아니었다. 하지만 갑작스러운 변화처럼 느껴졌다. 다시 동생이 처음 능력을 썼을 때가 떠올랐다. 동생은 여섯마리 병아리를 알에서 깨어나게 만들었다. 알을 품으면 계란이 깨어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나는 얼른 동생의 생각을 수정해줘야했다. 보통은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고, 이건 아주 우연찮게 일어난 일이라고. 동생은 뭐가 뭔지도 이해하지 못하면서 그렇구나,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여섯마리 병아리는 부모님에게 어디서 주워왔다고 둘러댈 수 밖에 없었다. 마침 초등학교 앞에서 병아리 장사꾼이 유행하고 있었기 때문에 다행이었다.
여튼 그 사건 이후, 나는 동생의 기행을 몇 번인가 더 볼 수 있었다. 나는 귀신을 보고도 귀신은 없다고 말해야했다. 외계인을 보고도 외계인을 없다고 해야했다. 혼란스러웠다. 만에 하나, 만약에 그것들이 진짜로 있었던 것이라면? 어린 동생은 나를 잘 믿었다. 부모님은 늘 바빴다. 동생이 의지하는건 나였다. 나는 몇 번이나 없다고 말했고, 나중엔 고민해야했다. ‘그것들’이 원래 있었던 것이라면? 동생의 믿음으로 탄생했던 것이 아니라 본래부터 있었다면?
고민은 그것 뿐만이 아니었다.
동생은 착해야했다. 그리고 자신을 무능하다고 믿을 필요까진 없지만, 적어도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믿어서야 곤란했다. 동생이 나쁜 마음을 먹는다면, 이 세상은 끝장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동생이 나쁘지 않더라도, 자신이 전능하다는 사실을 안다면? 과연 자신의 마음대로 세상을 뜯어고치는건 바람직한가?
많은 의문은 끝나지 않았다.
동생을 미행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들고 있던 계란을 톡톡 찍어 프라이팬에 펼쳤다. 치이익 소리와 함께 계란이 익기 시작했다.
“누나 한테 전화했어?”
“응.”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셋은 나란히 버스 정류장에 앉아 있었다. 목소리 이야기를 꺼내 볼까 하다가, 아무래도 꺼림칙해 그러지 않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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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버전으로 짧은 것 하나 더 썼지만,
내용을 자르고 전지적 작가시점으로 옮긴 것 뿐이라 올릴 필요 없을 듯.
결론적으로 완성을 못함.
쓰느라고 쓰던 것도 못 썼는데.
즐겁고 신난다.
그보다 오늘 여섯시간 잔게 조금 큰 듯
낮잠을 여섯시간 잘 줄 누가 알았겠어요.
여튼 시라노 씨께 죄송할 따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