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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마등

이제서야 이해가 가기 시작했다. 세상이 멈춰선 게 아니었다. 트럭이 멈춰선 게 아니었다. 내가 멈춰선 게 아니었다. 그 애가 멈춰선 게 아니었다. 아무 것도 멈춰서지 않았다. 세상이 느리게, 느리게나마 움직이고 있었음에도, 내가 멈춰섰다고 착각했을 뿐이었다. 세상은 분침이 돌아가고 구름이 움직이듯 인지하기 어려울 정도로 느렸다. 기적일까? 아니. 기적은 아니었다. 나는 거북이처럼 달려오는 트럭을 달팽이처럼 피하고 있었다. 트럭은 피할 수 없다. 그건 기정된 사실이었다. 위기의 순간 발한다는 괴력도 이 순간엔 소용이 없겠지. 트럭에 치이기 직전의 그 아이를 밀쳐내면서 넘어지진 않았지만, 기울어진 몸이 할 수 있는 건 곧게 서는 것 밖에 없으니까. 이대로 넘어져 굴러서 피할 수 있지 않을까, 미련을 가져보았지만 역시 무리였다. 넘어져 트럭 바퀴에 몸이 말려들어가지나 않으면 다행이겠지. 그래. 나는 이미 내 죽은 모습을 그리고 있었다. 기왕이면 곱게라도 죽어야 부모님이 덜 슬퍼하시겠지. 슬퍼한다라. 힐끗 느껴지는 버스의 거리감은 이제 상당히 가까워졌고, 숙여졌던 내 고개는 이제 그 아이를 향해 있었다. 그 아이가 날 보고있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내 바람과는 달리 그 아이는 놀란 눈으로 넘어진 채 날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저 바보가. 고개를 돌리라고 윽박지르고 싶었지만, 세상은 내 사고의 속도를 제외하면 모두 굼뱅이가 되어 있었다. 신경의 정보 전달 속도도 마찬가지란 말이다. 결국 최후의 순간 내가 하고 있는 일이라곤, 좋아했던 그 아이에게 평생의 멍에를 짊어주는 것 뿐이었다. 찰나의 순간 마주한 시선이 영원히 그 아이를 트라우마로 밀어넣을지도. 그럴려고 이 아일 밀쳐냈던 게 아닌데. 눈물이 솟아나올 것 같았고, 그 눈물을 훔쳐내고 싶었지만, 너무 느렸다. 나에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리고, 이제서야 이해가 가기 시작했다. 내가 곧장 죽지 않았다는 걸 이해한 것도, 세상이 멈춰서지 않았단 걸 이해한 것도 아니다. 내가 이해한 것은 지금 이 순간이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이제서야 이해할 수 있었다. 한가하게 내 기억을 되짚어보라 마련된 시간은 아니겠지. 이제 그 아이와 나는 완전히 마주하고 있었고, 트럭의 그림자가 내 왼쪽 얼굴을 덮쳐오고 있었다. 짧은 시간이다. 나는 남은 생의 전력을 다했다. 만약 이 아이를 구해내지 않았으면 살아갔을 수 십년을, 이 순간에 걸었다.

나는 입가에 미소를 띄우며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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