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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이름

‘진짜 이름’이란 무엇인가? 진짜 이름이 있다면 그 반대의 가짜 이름도 존재하는가? 이 또한 질문이라면, 그렇다. 우리가 서로를 부르는 그 이름들은 가짜 이름이다. 스스로의 명명됨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 생각해보라. 당신을 호명하는 이들은 당신의 부모, 친구, 연인이다. 그들은 당신이 태어나기 전부터 당신의 이름을 생각해왔거나, 당신의 생김새나 버릇으로부터, 또는 마음에서부터 우러나오는 진심을 담아 당신을 부른다. 그것은 석자의 이름이나, 우스운 별명, 들을 때마다 설레이는 애칭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이름들은 오로지 관계속에서 탄생했다. 그 이름들은 당신을 타인과 구별짓긴 하지만, 유일하지는 않다. 어딘가에선 똑같은 이름, 똑같은 의미로 당신이 불리듯 또 다른 누군가가 불려지고 있을 것이다. 진짜 이름은 그런 거짓된 이름과는 다르다. 진짜 이름은 유일하다. 진짜 이름이 있다는 것은 당신, 그리고 모든 존재가 유일하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다. 당신은 유일하다는 성질에 대해서 의문을 가지는가? 당신은 세계를 구성하는 물질이 단일할 수 있다는 사실을 언급할 수 있다. 그것은 유일성이 있다는 것에 대한 좋은 반론이다. 모든 물질은 단 하나의 ─ 소립자, 11차원의 끈, 아니면 또 다른 무언가로 이루어져있다면, 그리고 그것이 구성과 결합의 차이로 다른 무언가가 되는 것이라면, 유일한 것은 없다. 하지만 이런 관점은 물리학을 간과하고 있다. 물리적으로 볼 때, 그 어떤 물질도 똑같은 시공간에 존재하고 있는지 아닌지는 알 수 없다. 그 크기의 입자들이란 언제나 확률로서 존재하기 때문이다. 나아가 물리학에 대한 가설을 보다 폭 넓게 받아들인다면, 평행우주에 대해서 이야기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오로지 하나의 쿼크만이 달라 분기된 하나 우주와 둘 우주가 존재한다면, 결국 그 두 우주는 처음부터 다른 것이다. 사실 이런 이야기는 중요하지 않다. 나는 모든 물질, 또는 비물질적이라고 알려진 것들에게 진짜 이름이 있다고 주장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어떤 마음 또는 감정의 상태에, 전승을 위한 개념이나 수학적 정의들에 대해서, 진짜 이름이 있다고 부를 수는 없다. 어휘는 시대와 그것을 사용하는 시대와 장소에 따라 다르게 받아들여지고 쓰이며, 그 뉘앙스와 의미가 계속해서 바뀌어 왔고 바뀌어 갈 것이기 때문이다. 진짜 이름은 변하지 않는다. 그것은 개체에게 처음부터 주어진 뒤엔 오로지 그 개체의 것이다. 그럼 누가 진짜 이름을 부여받는가? 그것은 앞서 밝힌 바와 같이 유일한 이에게, 그리고 변하지 않는 이에게 주어진다. 불변이란 무엇인가? 시간이 흐름에 따라 모든 세포는 늙고, 유전자는 그 결합이 느슨해진다. 그렇다면 모든 생물에겐 진짜 이름이 없는가? 생물뿐인가. 수 천 미터 바위산도 닳아 평원이 되며, 불변의 상징인 황금조차 그 내부에선 방사선 동위원소가 붕괴되고 있다. 하지만 이런 시각은 좁다고 밖에 볼 수 없다. 모든 것이 쇠락할 것을 이미 알고 있다면, 그 개체는 변화한다고 할 수 없다. 변화하는 것들은 사라지지 않는다. 바위는 자갈이 되고 모래가 되고 흙이 되고 먼지가 된다. 하지만 먼지는 사라지지 않는다. 모든 별들은 먼지로부터 비롯되었음을 생각하라. 오히려 사라지고 잊혀지는 것들은 변화할 수 없다. 그 생은 단 하나 뿐이기에 시작과 끝이 있고, 그 앞뒤를 관통하는 간결함이 존재한다. 불변이란 곧 필멸이다. 필멸을 보장하는 이들, 살아있는 이들에게 진짜 이름이 주어진다. 그럼 누가 진짜 이름을 지어내는가? 아니다. 아무도 진짜 이름을 지어내지 않는다. 그 누구도 지어내지 않으므로 단 한 번도 호명되지 않고, 단 한 번도 호명되지 않으므로 누구도 자신의 진짜 이름을 알 수 없다. 진짜 이름은 그저 주어질 뿐이다. 진짜 이름을 가진 이들은 그것이 정말로 자신에게 주어졌는지 조차 알 수 없다. 진짜 이름이란 그런 것이다. 어떠한 근거도 없이 자신에게 무언가 주어져 있을 거라고 믿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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