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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 림보

우주의 끝엔 거대한 구조물이 있다.

이 구조물은 극도로 복잡한 태엽장치처럼 보이며, 매끈하게 회전하는 황금 반구와 그 내부를 드러내는 나머지 반구로 나뉘어 볼 수 있다.드러나는 반구 안으로 보이는 수 억 개의 톱니바퀴들은 반복되는 프랙탈 구조를 따르고 있으며, 끝 없이 뿜어내는 빛과 열 때문에 일정 해상도 이상의 관측이 불가능했다. 우주의 끝에 도달하기 위해, 저 먼 과거에서 온 이들은 톱니바퀴와 톱니바퀴 사이로 구조물이 숨기고 있는 내밀한 무언가가 존재하리란 확신이 있었지만, 끝내 그것이 무엇인지 확인하지 못했다.

그 누구도 이 구조물보다 더 멀리가진 못했다.

일반적으로, 우주의 끝으로 가고 싶어하는 이들이 보고싶어 하는 것은 열죽음의 세계다.

완벽한 평형과 절대영도.

세상에 자신만이 남았다는 고독.

이유는 저마다 다르겠지만 우주는 끝나고 자신만이 남았다는 도취를 느끼기 위해서인 것이다.

아무도 저 스스로 회전하는 빛과 열을 내는 구조물을 바라보는 것만으로 만족하지는 못한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구조물을 박살내기 위해 달려든다.

제로가 말했다.

“제일 멍청한 놈들이지.”

그 말대로다.

그 구조물을 제대로 관측 할 수 있는가 없는가의 문제가 아니다.

연역적인 논리로 따져봤을 때, 구조물이 그 자리에 여전히 남아 있다면, 그 구조물은 직접적인 도전의 대상이 아니라는 걸 알 것이다.

구조물은 파괴되지 않는다.

초광속항행자들이 그네들이 응당 겪어야 하는 생략된 시간을, 구조물은 모두 인내하고 있었다.

그리고 여간 머리가 미련한 것이 아니라면 며칠만 기다려도 구조물을 공전하고 있는 데브리띠와 인공 행성들, 그리고 가끔은 부나방처럼 그대로 화난 듯 들이박는 인내심을 잃은 초광속항행자들의 우주선이 구조물에게 들이박히는 걸 볼 수 있다.

구조물은 단단하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구조물과 시합을 한다.

사실 그 결과는 이 시점에선 알 수 없다.

하지만 계산을 잘 할 줄 안다면, 불가능하다는 걸 알 수 있다.

알포가 말했다.

“두 번째로 멍청한 놈들이죠.”

이미 구조물이 등장하는 ‘우주의 끝’에 도달한다면 얻을 수 있는 자원은 한정적이다. 이 우주의 끝에 도달하는 초광속항행자들은 큰 변수 없이 일정하며, 그들과 그들이 가져온 우주선 잔해로부터 얻을 수 있는 자원으로 갈 수 있는 우주의 끝도 제한적이다. 자신들이 살아온 우주 가득히 빛나는 별들과 끝 없이 탐사 할 수 있을 것 같은 행성계는 더는 없는 것이다.

호텔 림보의 유명한 골드보드에도 그 수식이 적혀 있다. 복잡한 수학기호지만 해석하자면 이렇다.

‘미련한 놈들아, 여기가 끝이다.’

그리고 번역자에 따라서 횟수가 다르긴 하지만 그 옆에는 해당 골드보드가 몇 번이나 반감기가 지나 방사선 붕괴로 흩어졌다가 다시 옮겨 적혔는지도 조각되어 있다.

구조물은 부술 수 없다.

구조물을 넘을 수 없다.

그렇다면 남은 방법은 하나 뿐이다.

포기하는 것.

한계를 인정한 이들은 우주의 끝에 도달해 구조물의 안정적인 공전 궤도를 돌면서 여생을 어떻게 할지 가름하게 된다. 어떤 이들은 자신의 실패를 인정하고 어떤 방식으로든 생을 마감한다. 이들은 고운 이들이다. 적어도 남한테 폐를 끼치진 않으니까.

하지만 어떤 이들은 우주의 끝에서 돌아가지도, 더 가지도 못한 채 갈팡질팡한다.

화가 쌓인다.

답답하다.

유흥을 즐기고 싶다.

젠장, 그런데 여긴 우주의 끝이다!

아무것도 없다!

아니, 사실 그렇지는 않다.

그런 놈들이 모여서 미적대는 곳이 우주의 끝에는 있었다.

호텔 림보였다.

거의 완벽하게 구성된 약인공지능, 그러니까 마인드가 존재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기계일 뿐인, 하지만 세계의 끝에서 가질 수 있는 저위차원 기술 과학에서는 마인드가 존재하는지 아닌지도 알 수 없는 지배인이 운영하는 호텔이 있었다.

내가 말한다.

“세 번째로 멍청한 놈들이지.”

“아니, 우린 멍청하지 않아.” 제로가 반박한다. “우린 몸을 던져 터지지도 않고, 자만에 빠져 목숨을 건 항행을 하지도 않지. 우린 살아남았어.”

“그게 목표는 아니었을텐데.”

“어, 난 여기까지 온 걸로 충분해. 저건 ‘시계’니까.”

“그렇게 생각하나?”

“물론.”

관점의 차이였다.

이야기를 듣자하니 제로는 범죄자였는데, 그가 범한 범죄는 그 사회에서는 결코 해서는 안되는 일이며, 그는 그 일을 너무 많이 저질렀다.

그에게는 글자 그대로 천문학적인 단위의 수감 형벌이 내려졌다.

문제가 있다면 그 사회는 문명이 꽤 발달 되어 있었으면서 다소 고지식했다는 점이다.

제로는 강제로 초광속항행선을 타고 그가 받아야할 형벌만큼 쏘아졌다. 과거의 원시 우주로 쏘아져 대은하단의 회전을 우습게 보일 거대한 고리를 그린 뒤에야, 그는 이곳에 왔다.

구조물은 제로에게 자유의 근거였다.

“당신 같은 사람에겐 그렇겠죠.” 알포가 재반박했다. “그 사람들은 세상의 끝을 보라고 보냈는데, 환대해줄 호텔 지배인과 술친구들이 있을 줄이야.”

“저게 시계가 아니면, 넌 뭐라고 생각하지?”

“그냥 보면 알 수 있잖아요? 저건 ‘영구기관’이라고요.”

제로는 콧김을 뿜었다.

저위차원에서 초광속항해는 가능하지만 영구기관은 불가능하다.

그렇게 알려져 있다.

“호텔의 골드보드 안 보여?”

“골드보드에도 관측하지 못한 내적 ‘신비’가 존재한다고 적혀 있죠.”

“친구, 봤어? 얘 방금 ‘신비’라고 했다. 과학자 어디갔나.”

“모르는 걸 모른다고 하는 게 과학입니다.”

“아니지. 모르면 무식한 거지.”

나는 실소했다.

그리고 알포의 표정을 보고 실수라는 걸 깨달았다.

알포는 학자였고, 자신의 연구 논문을 완성시킬 목적으로 우주의 끝을 보러 왔다. 그런 인간이다. 조심해야한다.

다행히 알포는 크게 화난 것 같지는 않았다.

“그럼, 탐정 씨는 어떻게 생각하죠?”

“뭐?”

“구조물이요.”

“글쎄. 음… 그 뭐랄까… 난 영구기관이라고 까지 생각하진 않는데 시계처럼 단순한 목적은 아닌 것 같고… 난 사실 별 관심 없어. 나는 우주의 끝을 보러 온 게 아니라 그냥 사람 찾으러 온 거라고.”

“그 직업 정신은 칭찬드립니다마는.”

“칭찬 받고 싶진 않은데.”

내가 투덜거리자 바텐더이자 지배인이자 호텔 림보 그 자체가 입을 열었다.

“등대.”

“등대?”

“저것은 등대다. 등대를 모르나?”

“아니, 알아. 뭐, 빛을 내니까 그렇게 볼 수 있긴 하겠군.”

“그렇다. 빛은 인도한다. 마른 곳으로.”

나와 알포는 잠깐 눈빛을 맞춘다.

알포가 말한다.

“흥미로운 시각이군요. 그러니까 저건 누군가 단순한 호의로 세계의 끝으로 가는 사람들을 위해서 만들어둔 거란 말이군요?”

“호의? 의도는 모른다. 하지만 마른 곳으로 유인하기 위한 장치는 맞다.”

“그렇지. 공허하고 아무 것도 없는, 얼어붙은 우주는 진 곳이지. 우주의 끝으로 저 이정표를 꽂아놓아서 사람들을 이쪽으로 끌어당겼군. 이유는 모르지만.”

“그런가? ‘너’라면 알 거라고 생각하는데.”

아리송한 말에 다들 마땅한 답을 찾지 못하고 침묵한다. 제로가 제 술잔을 몇 번 더 홀짝인다.

우리는 잠시 호텔 림보의 바 전면창 밖으로 보이는 구조물을 바라보았다. 구조물은 구름(이제는 기억 속에서도 희미한)이 흐르는 속도로 움직인다. 스쳐가듯 보면 정지한 것 같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움직이고 있다.

바텐더가 말했다.

“누군가 왔군.”

고개를 돌리자 전면창 구석 도킹 시스템에 우주선 하나가 다가온다.

어딘가 낯익은 우주선이다.

제로가 술잔을 올리며 말했다.

“기다리던 그 사람이길 바라지.”

나는 잔을 마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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