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림길
난 합평이 재미있는 놀이라고 생각했다. 누가 먼저 작품의 결점을 이야기하는가 승부하는 것처럼. 그래서 나는 학회 활동이 재미있었다. 나는 이런 태도가 문제가 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작품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 작품과 관련이 되지 않는 것들(대인 관계라던가)을 한쪽으로 미뤄두는 일이 더 공정하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문제는 내 작품을 합평하는 시간이었다. 나는 합평을 하기 전에도 내 작품에 많은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고, 그 문제들 위에 새롭게 발견되는 문제들을 쌓아올리는 일이 즐겁게 생각되지 않았다.
본래 내가 글쓰기를 그다지 즐기지 않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나는 글쓰기를 다른 일 보다 특별히 더 좋아하지 않는다. 글을 쓰기 시작하는 이유는 대체로 필요하기 때문이다. 생각을 정리하거나, 어떤 책의 감상을 기록하거나, 과제를 해야하거나. 심지어 글쓰기는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좋아하지도 않고 어렵고 힘든 일을 왜 해야하는가.
언젠가부터 그런 생각을 해왔던 것 같다. 이런 질문 앞에 내 대답은 빈궁하다. 나는 특별히 뭘 하고 싶지 않다. 다만 글을 쓰는 일이 다른 누군가와 함께 하는 일이 아니기에, 그다지 사람과 이야기하는 것을 즐기지 않는 성격과 맞아떨어졌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할 수 밖에 없다. 그리고 글 쓰는 일은 혼자 할 수 있는 일 중에서도 유난히 돈이 적게 드는 일이니까.
하지만 곤궁한 인생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지는 않다. 그런 이야기가 뭐가 재미있겠나. 곤궁한 인생, 위로받는 청춘, 불우한 가족사. 재미없다. 그보다는 프로스트에 대해서 생각해줬으면 한다.
예전에 내가 문예창작학과에 가겠다고 했을 때 누군가 이렇게 말했다. “사람이 하고 싶은 일만 하고 살수는 없지 않느냐.” 그는 내가 글쓰는 일이 ‘하고 싶기 때문에’ 간다고 본 것이다. 하지만 내가 갈림길을 지나친적이나 있단 말인가. 나는 수 많은 갈림길에서 이 길을 ‘선택’한 것이 아니었다.
인생의 중요한 기로들은 마치 갈림길처럼 느껴지기도 한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오늘의 정오에 일어난 것은 어제 늦게 잤기 때문이고, 어제 늦게 잔 것은 친구들과 술을 마셨기 때문이고, 친구들과 술을 마신 것은 신년이 왔기 때문이다. 내가 문예창작학과를 선택하고, 학회에 들고, 합평을 한 기원에는 내가 이런 환경에서, 이런 꼴로 태어났기 때문이다.
그렇다. 나는 인간의 자유의지를 신봉하지 않는다. 나는 내가 그러한 것처럼 다른 이들도 똑같다고 생각한다. 모두가 외길을 걷는 사람이다. 이따금 서로 마주치고 ‘교차’하며, 다른 이들이 걸어가는 길을 흘겨보기도 한다. 그러다보면 자신이 걸어온 길도 돌아보게 되고 자신이 하지 못한 선택을 후회하는 것이다.
과거로부터 이어져온 무언가가 자꾸만 나를 글쓰게 만들고 있다. 그만둬야할 때가 온다면 그만두게 될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계속 글을 쓰게 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