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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의 일

운동을 해야겠다고 말하자, 듣는 이들이 모두 깜짝 놀랐다.

입대를 하기 전에 모니터 앞 의자에 눌러앉아 있을 때였다. 당시 내 몰골은 가히 좋지 않았다. 당시 나는 입대하기 전에 무언가를 이루고야 말겠다는 마음으로 키보드를 열심히 두드리고 있었다. 물론 결과적으로 아무 것도 이룬 것 없이 떠나고야 말았지만, 지금 이야기하려는 것은 내 자괴감이 아니니 넘어가겠다. 자괴, 포기, 낙담에 대한 이야기야 민들레처럼 흔한 것이니.

내가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당시의 내 몸 상태다. 키보드 앞에서 떠날 줄 모르니 몸의 밸런스가 날이 다르게 무너져가고 있었다. 재채기가 시도 때도 없이 나오고, 입안엔 허연 염증이 두셋 씩 생겨나고, 살자고 먹으니 뱃속에 허한 느낌이 가시질 않고, 쓰러지듯 잠들었다 깨면 눈을 뜨기 힘들 정도로 눈곱이 끼고, 대변을 보고 휴지로 닦으면 피가 꼭 묻어 나왔다. 너무 지저분한 이야긴가. 하지만 사람은 그렇게 지저분하게 살아갈 수도 있었다.

입대를 하고 환경이 바뀌자 몸은 곧장 정상으로 돌아왔다. 햇볕을 받고, 몸을 움직이고, 밥을 규칙적으로 먹으니, 3일도 되지 않아서 몸이 가벼워졌다. 젊은 몸인 것이다. 내가 하고 있던 일은 좋은 물건을 방구석에서 일부러 썩히는 일과 다름없었다. 그 물건이 김치나 된장이나 취두부가 아니었으니, 미련한 짓이었다.

특별히 어떤 운동을 열심히 하겠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김훈은 자전거 타기를 좋아하고, 무라카미 하루키는 마라톤을 좋아한단다. 하지만 나는 살면서 내가 몸의 근육을 무리하게 움직이면서 좋았던 적이 없었다. 운동신경이 나빠서 손발의 상호호환이 윈도Me급이다. 대단한 운동을 할 생각은 없다. 김훈과 무라카미에 비교하면 나야 포복, 정도가 아니라 뒤로 달리기를 해야 할 판이니.

‘엉덩이로 소설을 쓴다’는 이야기가 있다. 이는 소설쓰기에 필요한 집중력을 이야기한다. 소설을 쓰기 위해선 의자에 궁둥이를 붙이고 다사한 일들일랑 신경을 끄고 모니터(또는 원고지)를 붙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옳은 말인바, 나는 그 이야기를 곧이곧대로 믿었다.

하지만 몸은 각 부분의 올바른 협조가 있을 때야 똑바로 동작을 한다. 의자 위에 앉아 있는 것이 전부가 아닌 것이다. 그 이야기대로라면 내 엉덩이 밑에 깔린 방석이 소설일랑 나보다 더 잘 써야 할 테니까. 물론 방석에게 팔이라도 붙여주면 꼭 그렇지 않을 것이라 장담할 수는 없지만. 몸의 잔병들이 가져오는 불협화음이 집중을 방해했었음을 간과할 수는 없는 일이다.

이제 자리에서 일어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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